1950년 6월17일 미 국무부 고문 자격으로 한국에 온 덜레스(가운데)가 18일 임병직 당시 외무부장관, 신성모 국방부장관(덜레스의 오른쪽), 채병덕 총참모장, 유재흥 장군 등의 안내를 받으며 38선 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그는 이튿날 국회에서 ‘한국은 혼자가 아니다’는 연설을 한 뒤 21일 일본으로 건너가 맥아더를 만났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6
이왕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된 미·일 강화조약과 안보조약이 화제가 된 김에, 당시 트루먼 정부의 외교 고문이라는 자리에 앉아 미·일 관계의 재정립을 위해 활약하고 있던 덜레스(John Foster Dulles)가 우리에게도 직접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 무슨 소리를 했는가 한마디 하고 다음 화제로 옮기기로 하겠소이다. 덜레스는 원래 공화당 출신이나 민주당 트루먼 정권의 대일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영입되었던 사람인데, 이듬해 52년 선거로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되자 곧 그 밑의 국무장관이 되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나, 그때 한창 미-소 간의 냉전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을 무렵 덜레스는 강경 일변도의 이른바 롤백(Roll back) 정책으로 밀고 나갔기 때문에, 그런 정책을 위험시하고 덜레스를 혐오하는 사람들로부터 ‘덜 애쓰’(Dull ass·멍텅구리 당나귀)라는 별호로 불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마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믿소이다. 그런데 이 외교고문 ‘덜 애쓰’는 일본을 드나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어요. “미국은 일본인이 중국인이나 조선 사람들에게 품고 있는 민족적 우월감을 십분 이용할 필요가 있다. 공산진영을 압도하고 있는 서방쪽 일원으로서 자기들이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일본인들에게 주어야 된다.” 아무리 그렇기로, 미국은 그래도 우리의 우방인데 일본인들의 그 천박한 민족적 우월감을 오히려 부추겼다니, 의아스럽게 느낄 수도 있겠으나, 이는 허튼 말이 아니라 기록에 남아 있는 말이외다. 지금 나는, 늙은이가 사랑방에 앉아 장죽을 물고 담배를 피우면서-나는 일생동안 담배를 피어 본 일은 없소이다만-옛날 얘기를 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을 뿐, 꽉 짜인 역사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지만, ‘덜 애쓰’가 한 이 발언만은 그 출처를 밝혀둬야 하겠소이다. 내가 오랫동안 친구로 사귀어온 미국 학자 프랭크 볼드윈이 쓴 책 중에 <위드아웃 패럴렐>(Without Parallel·Pantheon·1973년)이라는 것이 있어요. 번역하면 <만일 38선이 없었더라면>쯤이 되겠는데, 이 책 179쪽을 보면 그 얘기가 나옵니다. 전후 일본이 독일에 비해 식민지 침략의 죄과를 참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심정이 희박하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 온 바인데, 그 이유가 그때 미국이 의도적으로 부추긴 일본의 민족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이 들어요. 21세기인 요즘까지도 독일이 2차대전 때 체코나 폴란드 등의 동유럽에서 노예노동판으로 강제연행당했던 사람들을 위해 100억 마르크의 기금을 설치하고, 2001년 당시 생존해 있는 노인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은 <한겨레>도 보도했을 법한 사실인데, 아무튼 그 기금의 명칭이 ‘기억·책임·미래’로 되어 있어요. 가해자인 자신들이 옛날 일을 잊지 않고 거기에 대해 책임을 지며, 인간다운 미래를 구축하자, 그런 뜻이 아니겠소이까?
지금 내가 여기서 일본을 탓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외다. 기억도 안하고 책임질 생각이 없는 일본을 향해 오히려 한국 쪽에서 대통령이 갈릴 때마다 미래지향으로 나가자고 떠들어대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는데, 도대체 청와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에요. 덜레스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그가 50년 6월19일 남한의 국회에서 “당신들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라는 열변을 토해 특히 반공사상에 불타던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 연설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나의 저서 <찢겨진 산하>(한겨레출판·2002년)에 나와 있어요.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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