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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A급전범을 예수에 빗땐 ‘군국의 후예들’ / 정경모

등록 2009-05-14 21:17수정 2009-05-14 21:19

1941년 6월 이탈리아와 함께 삼국동맹국인 독일을 방문한 일본 외상 마쓰오카 요스케(왼쪽)가 베를린 총통 대본영에서 아돌프 히틀러(가운데)와 괴링(오른쪽)을 만나 선물을 전하고 있다. 마쓰오카는 줄곧 확전과 강경론을 고집한 에이(A)급 전범으로 일제 패망 뒤 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소에서 심리를 받던 중 옥사했다.
1941년 6월 이탈리아와 함께 삼국동맹국인 독일을 방문한 일본 외상 마쓰오카 요스케(왼쪽)가 베를린 총통 대본영에서 아돌프 히틀러(가운데)와 괴링(오른쪽)을 만나 선물을 전하고 있다. 마쓰오카는 줄곧 확전과 강경론을 고집한 에이(A)급 전범으로 일제 패망 뒤 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소에서 심리를 받던 중 옥사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9
“일본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전세계의 숭앙의 대상이 될 것이다.”(마쓰오카 요스케)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 겨울 무렵부터 완전 무장한 일본군을 가득 실은 경부선 열차가 영등포역에 서면 ‘애국부인회’라고 쓴 멜빵을 걸치고 마중 나온 일본 아주머니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며 군인들에게 차 대접을 하고 그럽디다.

우리 조선 아이들도 선생님의 인솔로 일장기를 손에 들고 정거장에 늘어서면, 그때 일본 아이들, 즉 심상소학교 학동들이나 마중 나온 일본인 어른들이나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군가를 부릅디다. 그때 나는 보통학교 1학년이니 그 군가가 무슨 뜻인지 알 까닭이 없었으나, 기차가 삐~ 하고 기적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면 시키는 대로 ‘만세’를 불렀소이다. 약간 일본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뒤부터, 하도 지겹게 그 군가를 불렀던 까닭에 그 긴 노래를 지금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부를 수가 있사외다.

‘적들이 몇 십만 있다고 해도/ 그것들은 오합지졸뿐이로세/ 설사 오합지졸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올바른 정의가 있네/ 사(邪)는 정(正)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며/ 직(直)은 곡(曲)을 반드시 쳐부실 것이니/ 굳게 먹은 맘으로 쏜 화살은/ 돌이라도 꿰뚫을 수 있는 것이니/ 돌이라도 꿰뚫을 수 있는 것이니 (반복)/ 어찌 두려움을 품을쏘냐/ 어-찌 마음이 흔들릴쏘냐.’

그해 만주사변이 터지더니 37년 7월 노구교사건이 일어나고, 계속해서 12월 난징학살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계기로 중국에서의 전선이 무한정으로 확대됨에 따라 일본은 전쟁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자, 급기야 자포자기로 41년 12월 미국을 상대로 진주만 공격을 강행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 세례를 받고 항복을 전하는 ‘천황’의 이른바 ‘옥음방송’으로 전쟁은 끝나는 것인데, 이 처참한 전쟁을 일본 사람들은 ‘15년 전쟁’이라 부르고 있소이다.

그래서 아까 내가 우리말로 번역해서 보인 일본 군가를 다시한번 훑어봐 주었으면 하는데, 이 15년 전쟁 동안-그 이전 사건들은 여기서는 불문에 부친다고 하더라도-일본은 남의 나라 땅을 도둑질하여 거기에다 괴뢰국가를 세우지 않았나, 난징으로 쳐들어가 30만이라는 인명을 해치지 않았나, 장제스가 피란 가 있는 충칭에서 무차별 폭격으로 일반시민들한테 폭탄을 퍼붓지 않았나-온갖 악독한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모두 다 정의를 위한 당연한 행동이었을 뿐이라는 거외다. 일본 군가에는 ‘하늘을 대신해서 불의를 친다’라는 것도 있는데 옳고(正) 바른(直) 것은 일본이었고, 일본은 사악(邪)하고 옳지 않은(曲) 세력을 하늘을 대신하여 친 것뿐이라는 거외다.

아, 그건 옛날 얘기고, 설마 그들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나, 의아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더러 있을지 모르겠는데, 해마다 우리가 ‘해방기념일’이라고 부르는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가 참배를 끝내고는 기자들에게 으레 하는 얘기를 들어보소. “일본의 오늘날 번영과 평화는 싸움터에서 목숨을 바친 군인들의 고귀한 희생 위에 있는 것이며, 그들의 희생을 감사하는 뜻에서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가 아닌가.”

일본 군인들은 어디까지나 정의를 위해 싸운 것이며, 항복한 것은 원폭과 같은 불가항력적 힘에 눌렸기 때문일 뿐이다-고이즈미의 발언을 뒤집어 말하면, 이런 뜻이 되지 않겠소이까?

만주사변 얘기로 돌아가겠는데, 33년 3월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회의에서 일본이 세운 ‘만주국’을 괴뢰로 보고 그 정통성을 부정하자 일본 대표였던 마쓰오카 요스케는 즉각 탈퇴를 선언하고 퇴장해버렸는데, 퇴장하면서 그가 한 발언이 이렇소이다. “지금 일본은 침략자로 지탄을 받고 있으나, 언젠가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전세계의 숭앙의 대상이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마쓰오카는 그 후 남만주철도의 총재가 되었는데, 거의 같은 시절 소련을 염두에 둔 ‘국방국가’의 건설을 위해 만주에 파견되었던 기시 노부스케와는 숙질간의 인척관계였고, 2006년 총리가 된 아베 신조는 기시의 외손주인 것이외다. 혈연을 따져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은 전세계의 숭앙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마쓰오카에 가 닿게 되는데, 참 이상스러워요. 아베가 총리가 되면서 자기의 정치목표로 내세운 슬로건이 ‘아름다운 일본’이었소이다.

실로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그가 꿈꾸고 있는 ‘아름다운 일본’이란, 결국은 전세계가 우러러보는 마쓰오카식의 일본이 아니오이까. 말할 나위도 없이 아베는 야스쿠니에 대한 참배를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지지하는 사람이오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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