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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람이 지나가네” 마지막말 남기고 뛰어내려

등록 2009-05-23 21:09수정 2009-05-23 23:48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 지지자들이 매달아 놓은 노란 리본이 줄지어 걸려 있다. 사저 뒤편으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봉화산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김해/연합뉴스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 지지자들이 매달아 놓은 노란 리본이 줄지어 걸려 있다. 사저 뒤편으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봉화산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김해/연합뉴스
새벽 5시10분께 컴퓨터에 유서 남기고 봉화산으로
부엉이바위 오른뒤 “담배 있느냐” 경호과장과 대화
6시40분 투신…의식잃은채 병원 이송…9시30분 숨져

마지막 행적 재구성

노무현 전 대통령은 23일 새벽, 유서를 작성한 뒤 산에 올랐다. 이미 목숨을 끊기로 결심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봉하마을의 길을 걷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누구지? 기자인가?”였다고 한다. 경찰 발표와 봉하마을 비서진, 병원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날을 재구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경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경과

비가 곧 내릴 것처럼 잔뜩 흐린 23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난해 2월 임기를 마치고 낙향한 뒤 세상을 향해 이야기할 때 사용하던 컴퓨터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노 전 대통령은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마지막 부탁이 담긴 열네 문장짜리 유서의 마침표가 찍힌 시각은 5시21분.

노 전 대통령은 컴퓨터를 끄지 않았다. 누군가 볼 수 있도록, 화면에 마지막 글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산화를 신고 5시45분께 집을 나와, 봉화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해 12월 형 노건평씨가 구속된 뒤부터 그는 낮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관광객이나 취재진의 눈에 띄지 않는 새벽에 가끔 봉화산을 올랐을 뿐이다.

근접 경호를 맡은 이병춘 경호관만 뒤를 따랐다. 부인 권양숙씨나 비서진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등산로를 따라 ‘부엉이바위’ 쪽으로 길을 잡았다. 부엉이바위는 봉수대로 쓰였다는 사자바위와 사찰인 정토원의 가운데쯤에 서 있다. 부엉이가 자주 앉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해발 100m가량에 있고, 바위벽의 높이는 30m 남짓이다. 새벽에는 인적이 드물다. 부엉이바위에 올라서면 봉하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 올라 20분 가까이 머물렀다. “여기가 부엉이바위인데 요즘도 부엉이가 사는가?”라고 이 경호관한테 말을 건네기도 했다. 마을을 내려다보던 그는 이 경호관에게 “담배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 경호관이 “없습니다. 가져올까요?”라고 답하자, 노 전 대통령은 “됐다”고 짧게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마을 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가는 것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누구지? 기자인가?”라고 말했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 순간, 바위에 앉아 있던 노 전 대통령은 몸을 일으켜 아래로 몸을 던졌다. 6시40분께였다. 불과 1~2m 떨어져 있던 이 경호관조차 손쓸 틈이 없었다. 이 경호관이 쫓아 내려갔을 때, 노 전 대통령은 머리 등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을 업고 산을 뛰어 내려왔다.

경호원들은 경호차량을 이용해 7시께 봉하마을에서 5㎞쯤 떨어진 진영읍의 세영병원으로 노 전 대통령을 옮겼다. 손창배 세영병원 내과과장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의식을 잃고 위독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30분 남짓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7시35분께 노 전 대통령을 태운 응급차량은 50㎞가량 떨어진 양산시 부산대병원으로 향했다. 8시13분 부산대병원 응급센터에 도착했다. 미리 대기하던 의료진은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은 깨어나지 못했다.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은 “인공호흡을 하면서 응급센터로 이송돼 왔으며, 도착 당시 의식은 없었고 자발적 호흡 역시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오전 9시30분이었다.

노 전대통령 투신 위치
노 전대통령 투신 위치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은 부산대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가, 이날 오후 6시30분께 다시 봉하마을로 옮겨졌다. 창원/최상원 기자, 황상철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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