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밤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을 하려는 시민들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길게 줄을 지어 서 있다. (서울=연합뉴스)
덕수궁 대한문 ‘시민 분향소’ 4시간 이상 기다려 조문
29일 영결식 휴가 낸 사람도…서울광장 분향소 아쉬워
29일 영결식 휴가 낸 사람도…서울광장 분향소 아쉬워
[하니뉴스] 노무현,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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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고즈넉해야 할 덕수궁 돌담길은, 25일 밤이 깊어지면서 늘어선 촛불들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조문행렬 주위, 수없이 매달려 있는 노란 리본에는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지막 마음이 새겨져있었다. 한쪽에서 누군가 기타를 치면서 느리지만 힘주어 노래를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떠나는 길을 보살피겠다는 시민들은 4시간 이상 조문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예원 학교까지 길게 늘어선 줄은 밤 12시가 넘어서도 줄어들지 않았다. 같은 시각 정부의 공식 분향소로 정부 고위 인사들이 주로 찾았던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가 밤을 맞아 ‘휴식’에 들어간 것과 또렷히 대조됐다.
홀로 기다리는 이들은 초를 들고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추모글이나 신문기사를 읽었고, 삼삼오오 모여 온 이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소곤거렸다.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재배하기 위해 기다리는 4시간은 이들에겐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직장 동료와 함께, 친구와 함께 사람들은 계속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 분향소’로 모여들었다.
“2시간 기다렸는데, 어차피 3시간 예상하고 나왔어요.” 직장 동료와 함께 나온 한아무개(30)씨는 여느 문상객처럼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냥요, 밝은 옷 입기가 왠지 꺼려지더라고요.” 내일 출근도 해야 하지만 “이렇게라도 오지 않으면 평생 빚진 마음일 것 같아 왔다”고 한다. 한씨와 동료들은 오는 29일 영결식에 참여하려고 단체로 휴가도 냈다. “이곳은 사람이 많으니까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았지만, 시민들이 만든 곳에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서울역 대신 대한문으로 왔습니다.” 한씨는 비좁은 대한문보다 좀 더 넓은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세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서울시 의회까지 늘어선 반대편 행렬도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았다. 의회 앞에서부턴 경찰이 막아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다시 올라가야 했다. 시청역 2, 3번 출구 쪽 지하철 출입구에는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마지막 편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겠습니다’, ‘사람향기가 진했던 당신을 진정 사랑합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 생에서는 원하는바 이루시길’, ‘당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 감사했습니다’ ‘노짱’한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는 한숨과 눈물, 그리움과 다짐이 교차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미안해 하지 말라”고 했지만, 많은 시민들은 편지에 ‘지켜드리지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담았다. 저녁 7시에 와서 11시30분이 돼서야 조문을 마친 윤경섭(65)씨는 “하루종일 자원봉사 하는 사람도 있는데 4시간 기다리는 게 대수냐”고 말했다. 지난 탄핵 때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윤씨는 “‘바보 노무현’은 우리에게 정의를 남기고 갔다. 노 전 대통령을 우리가 믿고 지지했어야 했는데…”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윤씨처럼 4~5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조문을 하고 간 사람이 경찰 추산만으로도 이날 하루 2만명이 넘었다. [하니뉴스]서울역 광장 조문행렬…눈물과 회환 [%%TAGSTORY1%%]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도 줄을 이었다. 이날 하루만 300여 명의 사람들이 짧게는 한두 시간에서 길게는 하루종일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시청 별관 쪽 길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물을 나눠주던 유상수(25)씨는 조문하러 왔다가 일손이 부족하단 소릴 듣고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전 단지 남들보다 시간이 좀 더 많았을 뿐이죠.” 유씨의 바람은 사람들이 오래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잠깐 끓어올랐다가 금세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이 마음을 묵묵히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합니다. 저도 더 오래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시청 별관 앞에는 노 전 대통령의 살아있을 때 한 인터뷰를 담은 영상이 계속해서 틀어져 나왔다. “변호사 개업하겠다고 하니까 집에서 장인 때문에 연좌제 걸린 거냐고 다그쳐서, 그게 아니란 걸 증명하려고 판사 발령을 받았어요. 나쁜 판사는 아닌데, 좋은 판사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뭔가를 찾아서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까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내가 찾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했어요.” 화면 앞에 모여앉은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들었다. 담배를 피우며 멍하니 영상을 지켜보던 박지훈(38)씨는 “노 전 대통령 돌아가신 이후에 인터넷으로 생전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고 말했다. “맘 같아선 밤이라도 새고 싶고, 매일매일 오고 싶은데….” 박씨는 오랫동안 영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밤 12시를 넘어 노 전 대통령 서거 네째날이 됐지만, 덕수궁 돌담길의 촛불은 계속 타올랐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5일 밤 시민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2시간 기다렸는데, 어차피 3시간 예상하고 나왔어요.” 직장 동료와 함께 나온 한아무개(30)씨는 여느 문상객처럼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냥요, 밝은 옷 입기가 왠지 꺼려지더라고요.” 내일 출근도 해야 하지만 “이렇게라도 오지 않으면 평생 빚진 마음일 것 같아 왔다”고 한다. 한씨와 동료들은 오는 29일 영결식에 참여하려고 단체로 휴가도 냈다. “이곳은 사람이 많으니까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았지만, 시민들이 만든 곳에서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서울역 대신 대한문으로 왔습니다.” 한씨는 비좁은 대한문보다 좀 더 넓은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세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서울시 의회까지 늘어선 반대편 행렬도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았다. 의회 앞에서부턴 경찰이 막아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다시 올라가야 했다. 시청역 2, 3번 출구 쪽 지하철 출입구에는 노 전 대통령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마지막 편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겠습니다’, ‘사람향기가 진했던 당신을 진정 사랑합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 생에서는 원하는바 이루시길’, ‘당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 감사했습니다’ ‘노짱’한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는 한숨과 눈물, 그리움과 다짐이 교차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미안해 하지 말라”고 했지만, 많은 시민들은 편지에 ‘지켜드리지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담았다. 저녁 7시에 와서 11시30분이 돼서야 조문을 마친 윤경섭(65)씨는 “하루종일 자원봉사 하는 사람도 있는데 4시간 기다리는 게 대수냐”고 말했다. 지난 탄핵 때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윤씨는 “‘바보 노무현’은 우리에게 정의를 남기고 갔다. 노 전 대통령을 우리가 믿고 지지했어야 했는데…”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윤씨처럼 4~5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조문을 하고 간 사람이 경찰 추산만으로도 이날 하루 2만명이 넘었다. [하니뉴스]서울역 광장 조문행렬…눈물과 회환 [%%TAGSTORY1%%]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도 줄을 이었다. 이날 하루만 300여 명의 사람들이 짧게는 한두 시간에서 길게는 하루종일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시청 별관 쪽 길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물을 나눠주던 유상수(25)씨는 조문하러 왔다가 일손이 부족하단 소릴 듣고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전 단지 남들보다 시간이 좀 더 많았을 뿐이죠.” 유씨의 바람은 사람들이 오래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잠깐 끓어올랐다가 금세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이 마음을 묵묵히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합니다. 저도 더 오래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어요.” 시청 별관 앞에는 노 전 대통령의 살아있을 때 한 인터뷰를 담은 영상이 계속해서 틀어져 나왔다. “변호사 개업하겠다고 하니까 집에서 장인 때문에 연좌제 걸린 거냐고 다그쳐서, 그게 아니란 걸 증명하려고 판사 발령을 받았어요. 나쁜 판사는 아닌데, 좋은 판사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뭔가를 찾아서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까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내가 찾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했어요.” 화면 앞에 모여앉은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들었다. 담배를 피우며 멍하니 영상을 지켜보던 박지훈(38)씨는 “노 전 대통령 돌아가신 이후에 인터넷으로 생전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고 말했다. “맘 같아선 밤이라도 새고 싶고, 매일매일 오고 싶은데….” 박씨는 오랫동안 영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밤 12시를 넘어 노 전 대통령 서거 네째날이 됐지만, 덕수궁 돌담길의 촛불은 계속 타올랐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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