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 분향소’를 찾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진 26일 오후, 경찰이 수십대의 버스를 동원해 서울광장과 덕수궁 돌담 앞 차도를 봉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부 왜 서울광장 못 여나
‘분향소논쟁’ 벌이며 시민·유족 요구에 귀막아
‘산 권력’이 ‘죽은 권력‘과 싸우는 모습 눈살
‘분향소논쟁’ 벌이며 시민·유족 요구에 귀막아
‘산 권력’이 ‘죽은 권력‘과 싸우는 모습 눈살
[하니뉴스]정부 왜 서울광장 못 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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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서울광장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공간으로 열어 달라는 시민과 유족의 간절한 외침에 귀를 닫고 있다.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라며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참모에게 지시했다는 이 대통령은 정작 노 전 대통령 서거 나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죽은 이’를 상대로 신경전을 계속하는 모습이다.
노 전 대통령 쪽은 이 대통령의 조의에 담긴 진정성을 공공연히 의심하고 있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26일 “이제는 성을 내고 악을 지를 힘도 남아 있지 않다”며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 시민들에게 서울광장을 개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도 “시민들이 만든 분향소를 틀어막고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개방하지 못하는 정부라면 그 정부에 무엇을 기대하겠냐”고 비판했다. 국가기록물 유출 논란, ‘먼지털기식 모욕 주기 수사’ 등으로 낙향한 전임자를 견제해온 이 대통령이 이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분향소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은 “건호씨 등 가족이 이명박 정부가 관여된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말자고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인 용서와 화합의 유지를 받들어 유족들에게 국민장 수용을 설득했는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욕되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죽은 노무현’과 싸운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광장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른바 ‘촛불 트라우마’로 불리는 촛불집회 공포증과 노 전 대통령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한나라당 한 의원은 “조문을 이유로 광장을 열어 달라고 하지만, 쇠고기 반대 촛불도 그런 식으로 조금씩 열리다 통제불능 상태로 갔고, 두달 동안 국정은 마비됐다”고 말했다.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도 “서울에 다른 분향소들도 많은데 꼭 시청 앞 광장에서 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뜻”이라며 제2의 촛불 사태를 경계했다.
주류 세력에 끝없이 도전해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노 전 대통령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견제심리가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역사평론가 이덕일씨는 “서울광장 분향소 설치는 마치 효종이 죽은 뒤 집권 서인들이 효종 10년 치세를 부정할 대의명분이 없어 국상을 치르면서도 차자라는 이유로 3년 상복 관행을 부정하고 1년 상복을 주장한 예송논쟁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참여정부를 ‘좌파 정부’로 규정한 집권 세력이 흔쾌히 노 전 대통령을 인정치 않겠다는 뜻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전임자를 진심으로 예우한다면 견제심리를 벗고 광장을 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덕일씨는 “이 대통령이 상당히 부담스럽겠지만 국민장을 치르는 만큼 정치적 계산을 떠나 국민적 요구와 갈등 해소를 위해 광장을 열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나라당 한 최고위원도 “촛불에 데고 난 이 대통령이 불상사를 이유로 시청 광장을 막았지만, 전적 대통령 조문은 전혀 다른 문제로 국민이 판단할 일”이라며 “과감하게 시청 앞 광장을 열어 국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승근 황준범 기자 skshin@hani.co.kr
신승근 황준범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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