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규(85) 정토원장
[노 전 대통령 떠나는 날]
“호미 든 관음상, 사춘기에 영향 줬을 것
올초 책 선물하자 세심하게 ‘각주’ 조언”
“호미 든 관음상, 사춘기에 영향 줬을 것
올초 책 선물하자 세심하게 ‘각주’ 조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과 위패가 봉안될 예정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 정토원의 선진규(85·사진) 원장은 노 전 대통령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선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후배인데다, 내 막내동생 또래여서 어려서부터 나를 무척 따랐다”고 회고했다.
선 원장이 50년 전인 1959년 ‘불교의 사회적 구실’을 내세우며 봉화산 정상에 개혁의 상징으로 ‘호미를 든 관음성상’을 봉안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은 진영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그때 그 관음성상을 본 노 전 대통령이 “부처님이 절 밖으로 나와 호미를 들고 민생구제에 나섰는데 난 봉화산 봉수대에서 횃불을 들고 개혁의 선봉이 되겠다”고 말했다는 것을 노 전 대통령의 친구들에게서 들었다고 그는 전했다. 선 원장이 기억하는 당시 ‘소년 노무현’은 ‘저항적이면서 사고력과 기획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서거 직전에 경호관이 그를 찾아왔던 일을 떠올리며 “마지막 가는 길에 법당에 봉안돼 있는 부모 위패에 절을 올리고 내 안부도 확인하려 했구나 하고 생각했다”며 “‘그때 왜 밖으로 뛰어나가 말리지 못했나’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족들이 49재를 어느 절에서 올리기로 결정하든 애초부터 개인적 정리를 생각해서라도 노 전 대통령의 49재는 별도로 우리 절에서 올리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토원이 노 전 대통령의 49재를 맡게 된 데 대해 ‘대통령이 주신 마지막 선물’ 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호미를 든 관음성상’ 봉안 50돌을 기념해 <부처님의 삼대 선언>이란 소책자를 만들어 노 전 대통령에게 선물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이 “‘범천’이란 용어를 풀이해주는 각주를 넣으면 좋겠네요”라는 지적을 해준 것을 기억했다. 그는 “보통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책 잘 썼네요’라는 인사말로 그쳤을 텐데 대통령은 어디에 각주가 필요한지까지 살필 만큼 세심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조언대로 각주를 달아 책을 다시 펴냈다.
하지만 그는 “지난 4일 생가 복원공사 상량식날 사저를 찾아갔을 때는 대통령이 별 말씀을 하지 않았다”며 “평소 말 잘하시던 분이 얼마나 심적 고통이 컸으면 저럴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 대통령을 본 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해/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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