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3월 미 군정사령관 하지(왼쪽) 중장이 소련 쪽 대표 스티코프(오른쪽) 소장과 덕수궁에서 미-소 공동위원회 회담을 하고 있다. 그는 45년 10월 10일 이른바 ‘아널드 성명’을 통해 한달 전 여운형 선생이 창건한 ‘인공’(조선인민공화국)을 불법 조직으로 묵살해 와해시켰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22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근로인민당 사무실이 있던 안국동 근처에서 내가 먼발치로나마 꽤 자주 모습을 뵐 수 있었던 47년 무렵 몽양 선생은 도모하시는 일마다 허사로 돌아가고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실 때가 아니었나 하는 바이외다. 이미 일제 치하에서 지하조직인 건국동맹을 만드시고, 45년 8월 해방의 그날 지체없이 건준(건국준비위)을 조직하셨으며, 미군의 인천 상륙에 앞서 9월 6일 전격적으로 인공(조선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선포하셨으나, 이것이 10월 10일 군정장관 아널드의 야비한 성명문의 일격으로 어이없이 와해돼 버렸고, 이에 11월 12일 궁여지책으로 인민당을 조직하셨으나 내부 분열로 이마저 유명무실하게 되자, 이듬해 10월 16일 간판을 올리신 것이 근로인민당이었던 것이외다. 몽양께서는 이를 발판 삼아 좌우합작 내지 남북통일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으나, 이를 시기하는 세력에 의해 47년 7월 암살을 당하시게 된 것이었소이다. 경제학에 그레셤의 법칙, 즉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이 있지 않소이까. 누가 양화이고 누가 악화였는지는 보는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해방 직후 그 복잡다단했던 시대를 돌이켜보면, 나는 마치 그림을 보는 듯 그레셤 법칙이 작동했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오릅니다. 몽양께서 창건하신 ‘인공’만 하더라도, 감히 군정과 맞서다니 그것은 몰상식한 단견이었다느니, 자신의 위치를 과대평가 한 오만의 결과였다느니 하면서 몽양을 폄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몽양의 결단은 단견도, 오만의 결과도 아니었다고 나는 단언하는 바이외다. 오스트리아는 38년 자진해서 히틀러의 나치스 독일과 합방(안슐루스)을 결정하지 않았소이까. 그러나 히틀러의 자살로 독일이 패망하자 이번에는 재빨리 우파(국민당)·좌파(공산당)·중도파(민주사회당)의 삼파로 정부를 조직해 미·소·영·불 4개국 연합군을 맞아들인 것이외다. 오스트리아는 결코 ‘해방된 국민’으로서 연합군을 맞이할 처지가 아니었으나, 민첩하게 좌우 균형을 맞춘 정부를 수립했던 까닭에 분할을 막고, 슬기롭게 단일국가로서의 독립을 획득한 것이었소이다. 첫번째 ‘통치협정’을 보면, 4개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하지 않는 한 오스트리아는 독자적인 정책을 실시할 수 없었으나, 두번째의 ‘통치협정’을 거치면서 4개국이 만장일치로 반대하지 않는 한 여하한 정책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 것이오이다. 당시 몽양께서 오스트리아 정세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다고는 생각할 수는 없으나, 우파에 이승만·김구·김성수, 좌파에 이강국·이주하, 그리고 중도파에 김규식과 당신, 여운형으로 구성되는 3파 연립정부(인공)를 수립한 다음에 미군을 맞이하자는 몽양의 구상은, 그의 혜안을 입증하는 것일지언정 절대로 단견의 소치였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외다. 앞서도 말했듯이, 미군은 기존 총독부를 통해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막연한 구상밖에는 아무런 구체적인 통치복안도 없이 일단 상륙해 온 것뿐이었소이다. 만일 미군에 빌붙어 몽양을 중상하는 세력의 준동이 없었다면 인공은 현실적인 통치기구로 역사적인 임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고 나는 믿는 바이외다. 김구 선생은 몽양을 암살한 같은 세력에 의해 역시 흉탄을 맞고 돌아가신 분이 아니오이까. 그 백범 선생께서는 말씀하셨지요. 당신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를 가리면서 갈 길을 고르셨다고요. 내가 지금 팔순이 넘은 나이로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지금이나 또는 몽양이 살다 돌아가신 그때나, 사도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이라면 주저 없이 그 길을 걷는 사람이 너무나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오이다. 또 그 사람들이 늘 승자로 행세하기 마련이고요.
그때 발표된 아널드 성명의 영어 원문이 하버드대학에 소장되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근자에 아는 사람을 통해 입수하여 읽어 내려가면서 참으로 심경이 착잡하더이다. ‘흥행가치조차 없는 꼭두각시 놀음을 벌이면서 정부 고관을 참칭하는 비열한 사기꾼’이라고 몽양을 매도하는 그 성명문이 발표되었을 때, 박장대소로 즐거워했을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상상하자니, 그들과 내가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창피스러움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소이다.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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