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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우월한 일본인, 침팬지 조선인? / 정경모

등록 2009-06-03 18:55수정 2009-06-03 19:14

1945년 해방 이후 서울대 의대에 편입한 필자는 특히 라세진(앉은 이) 교수의 명강의에 끌려 해부학에 심취했다. 라 교수는 한국 체질인류학의 기초를 세운 인종학자로 60년대 초 서울의대 학장을 지냈고 84년 작고했다. 사진은 69년도 졸업생들과 해부학교실에서 함께한 모습.
1945년 해방 이후 서울대 의대에 편입한 필자는 특히 라세진(앉은 이) 교수의 명강의에 끌려 해부학에 심취했다. 라 교수는 한국 체질인류학의 기초를 세운 인종학자로 60년대 초 서울의대 학장을 지냈고 84년 작고했다. 사진은 69년도 졸업생들과 해부학교실에서 함께한 모습.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23
1945년 8월 갑자기 찾아온 해방 직후 소학교서부터 전문대학에 이르기까지 휴교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으나, 일본 의과대학에 적을 두고 있던 학생들은 경성대(경성제국대학의 후신·서울대의 전신) 의대로 편입학이 인정되어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소이다.

이듬해 10월 학교를 가보니, 군정청이 내놓은 ‘국대안’(국립대학안)에 대해 옳다거니 그르다거니 학생들이 좌우로 갈라져 만날 싸움으로 날을 보내는 판이었소이다. 이미 앞서 45년 12월 미·영·소 3상 회의가 모스크바에서 열리더니, 미·영·중·소 4개국에 의한 이른바 ‘5개년 신탁통치안’이 발표되자, 찬탁-반탁으로 갈라져 좌우파가 사생결단의 싸움판을 벌이게 되지 않았소이까.

신탁통치가 발표된 직후에는 좌나 우나 반대한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소이다. 나중에 몽양 선생과 더불어 인민당을 조직하게 되는 좌파 백남운씨조차 “미국인이 먹다 남긴 비프스테이크도, 소련인이 먹다 남긴 보로시치도 우리에게는 필요 없고, 우리에게는 김치가 있으며 우리나 우리의 자손들도 그것으로 살아갈 것이니, 어째서 우리가 신탁통치 따위를 받아들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대중들에게 호소했던 판이었으니 말이외다. 나 역시 말하자면 ‘김치파’였겠지요.

나는 공부에 열중하고 싶은데, 툭하면 ‘국대안 반대 동맹휴학’을 일으켜 수업을 방해하는 좌파 학생들이 맘에 차지 않았소이다. 그러니까 나는 당시 우익 취급을 받고 있었겠지요. 아무튼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좌우 대립의 소란통 속에서도 나는 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소이다. 특히 라세진(羅世振) 교수가 지도하시는 해부학에 대해서는 진진한 흥미를 느꼈던 것이오이다. 시체 해부도 열심히 했구요. 해부대에 올려놓은 한 구의 실험용 시체는 두부·동체·하체 세 부분으로 나뉘고, 부분마다 두 사람씩, 그러니까 시체마다 학생 여섯명씩이 배치됐으니까 세 부분의 해부를 모두 끝마치려면 세 구의 시체를 다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습관에 젖는다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외다. 오전 실습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먹는데 그냥 쓱쓱 손을 씻고서는 칼질로 갈가리 찢긴 그 시체 옆에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먹어치우는 것이외다. 아무리 포르말린으로 방부처리가 되어 있다고 하나 시체 썩는 냄새가 실험실 안에 가득 차 있었을 터인데 말이외다. 의사가 되려면 으레 거쳐야 되는 과정이라고 믿었던 까닭인지 별로 고통스럽다는 느낌도 없이 그 과정을 다 밟았소이다.

더구나 라세진 교수께서 유머를 섞어가며 하시는 강의에 나는 매혹되다시피 열심히 경청하였소이다. 남자가 성년이 되면 목 중간쯤의 연골이 조금 튀어나와 돌기가 생기고 이 돌기 부분을 해부학에서는 결후라고 하는데, 이 결후는 여성에게는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장치라는 것이에요. 깜짝 놀라 나는 내 목의 그 부분을 만져보면서 ‘헤헤’ 하고 웃어버렸는데, 딴은 지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자웅을 막론하고 이성의 주목을 끌기 위해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어떠한 장치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오이까. 여성에게는-이것도 물론 라 교수한테 들은 얘긴데- 흉골에서부터 귀밑으로 가는 목줄기에 가늘고 긴 근육이 뻗어 있어 어느 순간 머리를 옆으로 돌릴 때는 그 근육이 툭 부풀어 오를 때가 있지 않소이까? 그건 슈테르노클라이도마스토이데우스(Sternocleidomastoideus)라는 긴 이름의 근육이오이다. 지금도 별로 붐비지 않는 전차를 타고 가다가 맞은편 자리에 앉은 목이 좀 긴 젊은 여성이 밖을 내다보느라고 머리를 돌리면 그 순간 그 슈테르노… 근육이 불룩 나타나는데, 역시 매력적이외다. 나도 남성이지 않소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일본 민족이 조선 민족보다 더 진화된 고등민족이라는 것을 해부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일제 총독부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연구를 했다는 것도 라 교수 강의 때 들은 잊을 수 없는 얘기오이다. 사람이 음식을 씹을 때 아래턱을 놀리는 근육이 교근인데, 몇 천 구의 시체를 대상으로 교근의 무게를 달아보니까, 체중에 비해 교근이 일본 사람보다 조선 사람이 더 무겁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외다. 즉 침팬지에 가깝다는 것이지요. 교근은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커지고, 무른 음식을 먹으면 작아지는 것이니, 교근의 크고 작음은 생활습관에 따른 것이 아니겠소이까.

그 ‘과학적’인 조사는 경성제대 의학부에 위탁되어 진행된 것이었으며 젊은 시절의 라 교수도 의학부 해부학교실의 조수쯤으로 그 조사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그 일을 거들면서 라 교수의 심경이 얼마나 참담했겠소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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