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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재침략’ 노리는 일본에 ‘굽실굽실’ 박 정권 / 정경모

등록 2009-07-15 18:38수정 2009-07-15 20:54

중국의 신해혁명 4년 뒤인 1915년 만주 군벌 위안스카이가 일본의 원조를 등에 업고 황제로 등극하고 있다.(왼쪽) 72년 12월 유신쿠데타로 장기집권의 길을 연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회의 투표를 거쳐 사실상 ‘총통’으로 취임하고 있다.(오른쪽)
중국의 신해혁명 4년 뒤인 1915년 만주 군벌 위안스카이가 일본의 원조를 등에 업고 황제로 등극하고 있다.(왼쪽) 72년 12월 유신쿠데타로 장기집권의 길을 연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회의 투표를 거쳐 사실상 ‘총통’으로 취임하고 있다.(오른쪽)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53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라도 자기가 하는 <세카이>(세계)에 써달라는 야스에의 말을 듣고 신들린 사람처럼 글을 써서 에세이 원고 ‘한국 제2의 해방과 일본의 민주주의’를 넘겨준 것이 1973년 5월말께였다는 것은 이미 앞글에서 말한 바와 같지만, 한국의 제2의 해방을 운위한 그 글의 시대적 배경을 약간이나마 미리 여기서 소개해 두는 것이 옳을 듯하오이다.

우리는 해방된 국민임을 자처하고 있으며, 또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가 민주화된 평화 지향의 국가라는 점에 거의 의심을 품지 않고 있으나, 실상은 어떠한가?

1965년에 발간된 <일한문제를 생각하다>는 일본에 와서 거의 첫번째로 읽은 책인데, 여기에는 ‘일본의 통치는 조선인을 위하여 유익한 것이었다’는 제3차 한-일 회담 대표 구보타의 그 유명한 망언을 비롯해,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의 길을 따라 다시 한번 조선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는 62년 요시다의 망언은 물론, 읽다 보면 섬뜩해지는 망언이 수도 없이 나열되어 있었소이다.

특히 그중에는 ‘현재의 일본이 일청전쟁과 일로전쟁의 뒤를 이어 삼세번째 다시 한번 일어나 38선을 압록강 저편으로 밀어내지 못한다면 저승에 가서라도 무슨 낯으로 조상들을 뵈올 수 있겠는가’라는 것도 있었소이다. 58년 제4차 한일회담 때 수석대표인 사와다의 이 발언은, 어느때이고 일본은 메이지시대처럼 조선을 말굽으로 유린해 보겠다는 야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인데, 그러면 사와다의 발언을 아무 근거도 없이 내뱉은 허튼소리였나 하면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었소이다.

일본 자위대가 작성한 비밀문서 ‘미쓰야 작전’이라는 방대한 문서가 있어요. 이것은 제1동(動)에서부터 제7동까지 조선에서의 군사행동을 상정한 면밀한 작전계획서인데, 제7동에 이르러, 미군이 원자폭탄을 북조선에 떨어뜨려 승리를 거두게 되면, 일본군은 유엔군의 일부로 조선에 주둔을 계속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소이다. 이것이 완성된 것은 한일조약(한일협정) 2년 전인 63년이었으니까 58년 사와다 발언의 시점에서 ‘미쓰야작전’의 윤곽은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고 봐야 옳지 않겠소이까. 이 비밀문서는 65년 2월 사회당 오카다 하루오 의원이 폭로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오. 민주화되었다는 일본이 이렇게 호시탐탐 조선에 대한 재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판국에, 65년 6월 21일 한국의 외무부 장관이라는 자(이동원)가 사토 총리에게 허리를 굽히면서 “일본을 형님의 나라로 모시겠으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는가 하면, 이어 9월 19일에는 명색이 육군총장이라는 자(민기식)는 사토를 향해 “일본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으니, 한국을 남의 나라로 여기지 말고 도와달라”는 쓸개 빠진 말을 했다니, 한국 꼬락서니도 그렇고, 또 일본도 그 꼬락서니니 어찌 부아통이 터지지 않겠소이까.

역사는 되풀이된다던가, 그 옛날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화민족이 만주족 지배의 굴레는 벗었다고 하나, 그게 진짜 해방은 아니었소이다. 그 4년 뒤 실권을 쥔 군벌의 두목 위안스카이(원세개)가 황제의 지위를 노리면서 일본이 제공하겠다는 경제원조에 눈이 멀어 중국 전토의 식민지화를 노리는 21개조의 요구를 덥석 물게 되오이다. 일본은 또 교환조건으로 황제로의 등극도 지지해 주겠다니, 자신을 얻은 위안스카이는 1915년 12월 등극 여부를 ‘국민대회’에 걸어 참가인 1993명 전원의 만장일치로 황제로 인정되었소이다.

한편 일본을 등에 업은 박정희도 유신쿠데타 뒤, 72년 12월 영구집권의 가부를 ‘국민회의’에 걸어, 이른바 체육관식 투표를 통해 참가인 2359명 중 무효표 2표를 뺀 2357명의 찬성으로 ‘총통’ 자리에 앉게 되지 않았소이까.

신해혁명 후의 중국과, ‘해방’을 맞이했다는 한국의 모습이 왜 이렇게까지 닮았을까,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중국의 문호 루쉰 선생은 당시 자기 나라의 상황을 보면서, 제자이며 애인이었던 쉬광핑(허광평)에게 띄운 편지(兩地書)에 다음과 같은 한탄의 말을 남겼소이다.

‘최초의 혁명은 단지 만주조정을 뒤엎는 것이었으니 비교적 쉽게 성취될 수 있었지요. 그러나 그다음 개혁은 국민 스스로가 스스로의 나쁜 근성을 개혁해야 되는 것이니 훨씬 어려웠는데, 불행하게도 거기서 뒷걸음질을 치게 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앞으로 더욱 중대한 것은 국민성을 고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전제라고 하나, 공화제라고 하나, 그 외의 또 무엇이라고 하나, 간판을 갈아서 거는 것뿐이고 내용이 그대로이면 희망은 없노라고 해야 되겠지요.’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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