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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중국 일깨운 3·1운동, 미국 가르친 4·19혁명 / 정경모

등록 2009-07-16 18:36

1919년 5·4운동 당시 베이징대 학생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1960년대 미국의 뉴레프트 학생운동을 주도한 민주사회학생연맹(SDS)의 활동을 소개한 책의 표지.(오른쪽)
1919년 5·4운동 당시 베이징대 학생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왼쪽) 1960년대 미국의 뉴레프트 학생운동을 주도한 민주사회학생연맹(SDS)의 활동을 소개한 책의 표지.(오른쪽)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54
<세카이>(1973년 9월호)에 투고한 글에서 나는, 중국이 가장 암울했던 시대를 산 루쉰 선생은 희망의 빛을 거의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분이나, 나는 그래도 한국의 미래에 대해 전혀 실망에만 젖어 있던 것은 아니며, 우리의 3·1운동의 충격으로 일어난 중국의 5·4운동과, 우리의 4·19혁명으로 촉발된 미국의 선진적인 학생운동을 예로 들어 언젠가는 한국인 가슴속에 세차게 불어올 ‘신바람’의 힘이 일본의 참다운 민주주의를 불러일으키리라는 희망을 피력했소이다.

1차 대전 뒤 베르사유 강화회담 때 영·미·서구세력이 중국을 무시하고 오히려 일본을 두둔하면서 중국에 대한 그들의 부당한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는 처사에 분개한 중국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전국적인 반제운동으로 번지게 된 것이 5·4운동인데, 이 운동은 두 달 전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에서 받은 충격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것이외다.

중국의 신민주주의혁명을 불러일으킨 5·4운동의 출발점은 역시 베이징(북경)대학이었으며, 그날 5월 4일 베이징의 천안문에는 ‘조선의 3·1을 뒤따르라’는 현수막이 나부꼈다고 기록에는 남아 있소이다.(베이징대 학생지 <신조>(新潮) 1919년 4호)

당시 베이징대 학생이었던 푸쓰녠(傅斯年)은 ‘조선 독립운동이 주는 새로운 교훈’이라는 글을 통해 첫째 도의적인 힘에 의거한 비폭력 운동이었다는 점, 둘째 성패를 가리지 않고 오히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단행한 혁명이었다는 점, 셋째 일신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순결한 동기만으로 움직인 학생들이 주축을 이룬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3·1운동은 ‘미래의 혁명운동을 위한 중대한 교훈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던 것이외다. 또 미국에서도 60년대의 선진적인 학생운동이 일어난 직접적인 계기가 우리나라 4·19혁명이었다는 점을 그 글에서 지적하였소이다.

일반적으로 사회문제에 무관심했던 미국 학생들이 중산계급적 가치에 의문을 품고 반항하는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60년 이후인데, 예를 들어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가 애틀랜타(조지아주)에서 조직된 것은 60년 10월이었고, 또 ‘미국의 핵정책, 망상적 반공주의, 군산복합체, 여러 종속국가의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의 외교정책’ 등등을 규탄하는 민주사회학생연맹(SDS)의 조직대회가 앤아버(미시간주)에서 열린 것은 60년 5월이었소이다.

빈곤, 폭력, 인종차별, 침략전쟁 등 미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 구조적인 병폐는 60년을 경계로 하여 많은 학생들이 눈을 뜨게 되었는바, ‘60년’이라는 해의 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예언적 소수파>(A Prophetic Minority)의 저자 잭 뉴필드의 말을 빌려, 여러가지 요인 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인스피레이션(동인)을 하나만 지적한다면 그것은 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한 한국의 4·19혁명이었다는 것이외다.

이런 뜻에서 나는 일본 사회에 하나의 질문을 던졌소이다. 만일 중국과 미국이 우리의 3·1과 4·19를 통해 무언가를 얻었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면, 해방을 향한 한국인의 정열이 일본 사회에도 어떤 역사적인 충격을 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글의 결론에서 만일 일본인의 민족적 우월감이 메이지 100년 사이에 일본이 경험한 비약과 영광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면 그 대칭점에 조선민족의 굴욕과 비애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킨 다음,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참다운 ‘제2의 해방’은 일본의 거짓없는 ‘제2의 민주화’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마무리로 우리말 ‘신바람’의 뜻을 소개하면서 나는 이렇게 질문을 던졌소이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의심할 필요가 없으며,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해방된 인간의 내면적 환희를 상징하는 것이 ‘신바람’인데, 입의 움직임이 저절로 노래가 되며, 다리의 걸음이 제절로 춤이 되게 하는 이 신비스러운 ‘바람’이 불어올 날을 지금 한국인들은 골똘히 손 모아 빌고 있는 중이며, 한국인들의 이 간절한 기도가 끊이지 않는 한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인데, 한국인들 가슴속에서 이 바람이 일 때, 일본에 불어닥친 바람은 없겠는가?”

3·1독립선언에 조선의 독립은 오히려 일본을 도덕적 타락의 나락에서 구원할 수 있는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소이다. 나도 이 글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동시구제의 사상을 말한 것인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꿈을 잘 꾸는 문익환 목사처럼 나는 거대한 꿈 한자리를 이 글에서 꾸어 본 것이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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