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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키신저 급히 찾아 “DJ를 구해주오” / 정경모

등록 2009-07-20 19:01

19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난 지 1주일째인 8월 15일 열린 ‘납치 항의 집회’에서 김종충(오른쪽 둘째)씨를 비롯한 ‘한민통’ 일본본부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19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난 지 1주일째인 8월 15일 열린 ‘납치 항의 집회’에서 김종충(오른쪽 둘째)씨를 비롯한 ‘한민통’ 일본본부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56
1973년 8월 그때 납치 현장에서 번뜩 뇌리를 스쳐간 것이란 무엇이었겠소이까. 제발 제발 김대중 선생의 목숨을 건져달라고 일본 정부에다 대고 호소를 해봤댔자 별로 신통스런 반응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도 호소할 상대가 있다면 미국인데, 더 구체적으로는 국무장관 키신저가 아니겠소이까. 지구상에서 김 선생의 생명을 구해 줄 위치에 있는 사람은 키신저가 유일하다는 것이 그때의 내 판단이었소이다. 게이오플라자호텔로 달려간 것은 그 때문이었소이다.

그러면 키신저가 김 선생을 살리는 데 선선히 나서주겠는가? 그 가능성은 반반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소이다.

반반이라는 것은 키신저가 그때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을 퍽 미워하고 있었는데, 김 선생은 말하자면 ‘코리아의 아옌데’ 아니오이까. 김 선생이 미국 체류중에 ‘아옌데 정권은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성립한 정권이니만치 미국은 그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했다는 말도 듣고 있었고, 그것은 당신과 박정희를 비교하면서 민주적인 절차 없이 정권을 쥔 박 정권을 비판하는 논리의 일단이었겠으나, 미국 정부를 설득하는 논리로서 그의 이런 주장은 그리 적절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느끼고 있었소이다. 미국은 민주정권이니까 지지하고, 독재정권이니까 지지 안 하는 나라가 아니지 않소이까.

그렇다고는 하나 나로서는 키신저의 일비지력(一臂之力)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소이다. 더구나 더 급했던 것은, 도쿄에 있는 내가 무슨 수로 김 선생이 처한 위기를 키신저에게 알릴 수가 있겠는가, 그 방법이 문제 아니었겠소이까.

아무튼 호텔에 도착해 임창영 선생의 방으로 뛰어들어가 보니, 그분 역시 속수무책,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알 도리가 없어 수심에 잠긴 채 망연히 창밖을 내다보고 계십디다. 임 선생은 장면 민주정권 때 유엔대사를 지내신 분으로, 8월 15일로 예정되어 있던 ‘한민통’ 결성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서 건너와 도쿄에 머물고 계셨는데, 거의 일생을 미국에서 살았기에 발도 넓거니와 영어를 미국 사람보다도 더 유창하게 하던 분이었소이다. 그래서 내가 뛰어간 것이지요.

둘이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짰소이다. 어떻게 하면 이 긴급사태를 키신저에게 알릴 수가 있겠는가. 당장 둘이 동시에 머리에 떠올린 인물이 그때 태프트대학에 있던 그레고리 핸더슨 교수였는데, 그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문정관으로 있던 분이고, 나도 몇 차례 서울에서 만나본 일이 있었소이다. 그와 막역한 사이인 임 선생이 수첩에 있는 핸더슨의 전화번호도 내게 보여주시더이다.

그다음이 문제인데, 우선 핸더슨에게 급보를 전하면, 다음에 하버드대학 제롬 코언 교수에게 그것이 전해지고, 코언 교수를 통해 전 주일대사 라이샤워에게 전달될 것이고, 거기까지 간다면 키신저에게 도달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해서 임창영→핸더슨→코언→라이샤워→키신저의 릴레이팀이 구상되고, 제1보가 핸더슨에게 띄워진 것인데, 그때 시각이 아마 오후 4시가 가까운 때였다고 생각이 되오이다. 핸더슨 교수와 접촉을 시작하기 전에 임 선생은 미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미군 요코다기지와 하네다공항의 미군부대 지휘관의 전화번호를 물었고, 그들에게 한국 군용기가 무슨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나 주목해 달라는 경고를 전해두었소이다. ‘이름이 이러저러한 한국의 저명한 정치가가 한국 비밀경찰에 의해 도쿄에서 납치되었으니 운운’하는 말을 미군 장교가 어느정도 알아들었을는지는 알 도리도 없으나, 그러나 그때의 초조한 심경으로는 그런 조처도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아무튼 도쿄의 오후 4시라면 뉴욕은 새벽 2시인데 급보를 받은 핸더슨 교수가 어떠한 ‘액션’을 취했는지 그때는 전혀 알 수도 없었고, 납치당한 김 선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아 있다면 어떤 상태로 있는지 모르는 채 그날을 보냈지만, 그날 ‘김대중 납치’ 소식이 전해지자 도쿄 시내는 발칵 뒤집혀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겠소이까.


그런데 참으로 기적이었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납치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날이 <세카이> 9월호 발매가 시작된 날이었고, 그 9월호에는 내가 기고한 장문의 에세이 ‘한국 제2의 해방’과 더불어 야스에와 김 선생의 대담 ‘한국 민주화의 길’이 실려 있었던 것이외다. 대담 ‘민주화의 길’에서 김 선생은 ‘무원칙을 원칙으로 하는 박 정권’의 행패를 신랄하게 비판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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