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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윤-문-정 ‘반독재 삼각편대’ 뜨다 / 정경모

등록 2009-07-29 18:27

1974년 한민통 초청으로 독일에서 건너온 윤이상(오른쪽) 선생과 부인 이숙자(뒤쪽)씨와 함께한 필자(왼쪽). 이때 공동강연회를 계기로 필자는 89년 베를린장벽 붕괴 때 현지를 방문하는 등 95년 윤 선생이 작고할 때까지 ‘한국 민주화’를 위해 연대했다.
1974년 한민통 초청으로 독일에서 건너온 윤이상(오른쪽) 선생과 부인 이숙자(뒤쪽)씨와 함께한 필자(왼쪽). 이때 공동강연회를 계기로 필자는 89년 베를린장벽 붕괴 때 현지를 방문하는 등 95년 윤 선생이 작고할 때까지 ‘한국 민주화’를 위해 연대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63




박정희를 상대로 한 나의 1인투쟁에서 내가 날린 일격을 맞은 박정희가 달리 보복 수단이 없으니까, 애꿎게 <아사히신문>에 대해 금수조처를 취했다면, 이건 내가 이겼다는 얘기가 아닌가. 나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난생처음으로 ‘아, 나는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났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소이다. 그때가 1974년이었으니 내 나이가 쉰이 되는 해였는데, 공자는-공자를 자꾸만 들먹여서 좀 안됐소이다마는-당신께서 나이 쉰이 되었을 때의 심경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셨소이다. 천명을 알았다는 뜻이지요.

이상스러운 우연의 일치이나, 공자께서는 쉰여덟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향땅 노나라를 떠나 꼭 14년 동안을 타향살이로 지냈는데, 앞서도 말했듯이 나 역시 14년을 타향 아닌 타향에서, 홀아비 아닌 홀아비 생활로 모진 고생을 하며 지내지 않았소이까. 공자는 그 괴로웠던 14년 동안의 방랑생활을 돌이켜보면서 초라했던 당신의 모습을 ‘상갓집 개’(喪家之狗)로 비유하신 적이 있었소이다만, 나 자신 14년 동안의 방랑생활을 돌이켜볼 때마다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바이외다.

이건 또 맹자의 말씀인데 고자하(告子下) 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소이다. ‘하늘이 바야흐로 어느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시려 할 때는(天將降大任於是人), 우선 그 사람의 심지를 괴롭히고(苦其心志), 근골을 피로케 하며(勞其筋骨), 몸을 굶주리게 하며(餓其體膚), 그 생활을 곤핍하게 하는데(空乏其身), 이는 그의 마음에 용기를 불어넣고(勇心), 성품에 인내력을 기르게 함으로써(忍性), 할 수 없었을 일을 능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曾益其所不能)이다.’ 내가 감히 외람되게 하늘이 택하신 인물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아니나, 나이 쉰이 되어 비로소 자기의 갈 바를 찾았다는 뜻에서 맹자의 이 말씀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소이다.

참으로 그때는 한민통 안에 있으면서 ‘삼면육비’(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라 할 정도로 굉장한 활동을 전개했소이다.

윤이상 선생이 독일에서 오신 기회에 한민통 이름으로 열린 나와 윤이상 선생의 공동강연회가 기억에서 떠오르는데, 수천명이나 몰려오는 바람에 히비야 공원 안에 있는 대강당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 찼을 뿐만 아니라 더 들어갈 자리가 없어 수백명이 공원마당에서 서성거리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감회롭소이다. 그 무렵이 아마 한민통이 조직체로서 존재감을 발휘하며 화려하게 각광을 받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외다. 윤이상 선생과는 돌아가시던 날까지 깊은 우정으로 맺어져 있었는데, 처음 도쿄에서 만나뵙기 이전, 나는 이미 첫번째 내 책에서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납치되어 옥중에서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던 윤 선생을 소개한 일이 있었소이다. 68년 그 추운 겨울 난방장치도 없는 서울형무소 감방에서 입김으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완성한 오페라 <나비의 꿈>이 처음 독일 뮌헨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었을 때, 감동한 청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처형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윤 선생을 향해 실로 20분 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는 얘기도 그 글에는 자세히 소개되어 있소이다.

70년 내가 서울을 떠나 망명길로 오르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윤 선생과 같은 예술가를 외국에서 납치해다가 사형에 처해 죽이려는 박정희에 대한 저주스러운 증오였는데, 의외로 윤 선생을 도쿄에서 만나게 되니, 나는 참으로 만나야 될 동지를 만났다는 느낌이었고, 윤 선생은 윤 선생대로 동지로 사귈 만한 벗을 도쿄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느끼셨으리라 나는 믿는 바이외다. 이때 윤이상-정경모의 ‘축’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인데, 문익환 목사는 75년 장준하 선생의 암살 사건을 계기로 뛰어든 분이니까 이 시점에서는 운동권 안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소이다. 그러다 문 목사가 실로 순교자적인 정열로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자 서울의 문, 베를린의 윤, 도쿄의 정으로 형성되는 삼각축을 중심으로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던 것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이 운동은 몇십만, 몇백만의 집단적인 힘으로 전개되었던 것이고 단지 몇 사람의 이름을 들어 그것이 운동의 핵심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나, 이제 말한 삼각체제의 상징적인 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을 터인데, 문제는 이 삼각형을 구성하는 ‘윤-문-정’ 셋이 예외 없이 한민통 곽동의란 인물에게 적의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이외다. 질투였지요. 한편 가엾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으나, 이 질투는 열등감에서 오는 것이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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