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당시 한민통 재정부장을 지냈던 재일동포 사업가 조성제(맨 왼쪽)씨가 96년 자신의 아호를 따 고향 함안에 세운 해남장학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서 2006년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그 오른쪽이 조씨의 일본인 부인이고, 그 옆이 주일 한국대사관 공사 출신의 조일제 전 의원이다. 사진 해남장학문화재단 제공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65
한민통, 그 집단적인 왕따를 벗어나 글방 ‘씨알의 힘’(シアレヒム)을 창설하고, 거기서 책도 쓰고 잡지도 내고, 또 후진들을 가르치면서 참으로 한 마리의 백로가 되어 남북간에나 일본인들 사이에 아무런 장벽이 없는 자유공간을 훨훨 날아다녔을 때의 신나는 얘기가 아직 남아 있소이다.
또 그 자유로운 활동의 연장선에서 내가 문익환 목사를 모시고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4·2 공동성명이 나오기까지의 여러 가지 역사적인 일화 등,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꼭 남겨 놓아야 할 길고 긴 얘기가 아직 남아 있는데 이 연재가 벌써 65회가 되지 않았소이까.
빨리 이 얘기를 쓰기 위해서는 1978년 한민통을 빠져나왔을 당시, 내가 받은 ‘인민재판’ 얘기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어, 이미 30여년의 세월이 흘러간 그 당시의 사건을 되도록 간추려 서술해 보고자 하오이다.
그해 어느날 무슨 일이 있어 집에서 배동호씨 댁으로 전화를 걸었소이다. 밤 시간인데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어요. 다음날 사무실로 나가 누군가에게 물었소이다. 무슨 영문인가고요. 의외라는 듯이 그 젊은 사람이 되묻습디다. “모르셨습니까. 배동호 선생께서 이사하신 것을?” “이사? 언제?” “벌써 한 달 전입니다.”
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사무실 젊은 사람들까지 모두 아는 사실인 듯한데 내게는 왜 이사했다는 말이 없었을까.
그 후 얼마 안 지나 정재준씨의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 김성호씨가 찾아왔소이다. 그는 한민통 사람들과 오래도록 접촉해 온 터라, 아무 영문도 모르고 그저 굴러들어온 돌일 뿐인 나에게 여러 가지 귓속말을 곧잘 전해주고는 했소이다.
다방으로 나를 불러내서는 “괘씸한 놈들”이라고 펄펄 뛰면서 배씨와 곽동의씨에 대한 비난을 퍼붓습디다. 어디서 들어온 돈인지 두 사람이 그 당시 ‘옥션’(일본돈으로 1억엔대의 맨션)이라고 불리던 호화찬란한 저택을 사서 이사를 했다고 말이외다.
뭔가 짚히는 데가 있어 한민통의 재정부장으로 있던 조성제씨를 만나, 당신은 아는 사실이냐고 물어보았지요. 조씨는 파친코를 경영하는 부자로 이름난 사람이었고 많은 사재를 털어 한민통 사업을 돕던 인물이었소이다. 그런데 그는 당장 안색이 변하면서 금시초문이라고 하더군요.
다음날 조씨가 한민통 사무실에 나타나 내가 민망할 정도로 둘을 닦아세우더이다. 나쁜 놈들, 너희들이 그따위 짓을 해도 되는가고 말이외다. 일이 심상치 않고 걱정도 되고 해서 다음날 나는 조씨를 집으로 찾아갔소이다. 그는 도쿄 시내에서도 최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덴엔조후(田園調布)에서 살고 있었는데, 나와 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에서 상당히 격한 말로 한민통을 깎아내립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따먹는다더니, 정 선생 당신은 재주 부리는 곰이고, 그자들은 돈 따먹는 왕서방이어요. 아무런들 그래 돈 낸 사람이 집 사라고 그 돈을 줬겠소?”
바로 그때가 언제였는가 하면, 75년 9월 이래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총련 조직을 붕괴시킬 목적으로 총련계 사람들을 상대로 성묘단을 조직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던 때였소이다. 총련계 사람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북을 지지하고 있으되 출신 고향은 영호남이나 제주도가 대부분이 아니오이까. 그 운동을 지휘하고 있던 사람이 주일 한국대사관의 조일제 공사였는데, 실상 많은 사람들이 성묘를 겸하여 몇십년 만에 겨우 고향 방문을 하게 됐소이다. 그러자 총련 조직에서 성묘단에 들어 고향을 방문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깡그리 제명처분해 추방하는 바람에 전체 조직이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있었는데, 성묘단 운동을 지휘하고 있던 조 공사와 한민통 재정부장인 조씨는 같은 ‘함안 조’씨니까 개인적으로는 서로 통하는 점이 있었을 것 아니오이까. 화난 바람에 서방질 한다고 조씨는 그 길로 한민통과 손을 끊고 조 공사의 안내로 서울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오이다. 조씨가 김포공항에 도착, 비행기에서 내릴 때 레드 카펫이 깔리고 하였다니, 조 공사의 공로가 컸다는 뜻이 아니오이까.
만일 한민통이라는 조직이 어디엔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었다고 하면, 조성제 재정부장이 서울로 갔을 때 벌써 다 까발려진 것이니까, 그때부터 이미 한민통은 아무 데도 감출 곳이 없는 벌거벗은 몸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다음날 조씨가 한민통 사무실에 나타나 내가 민망할 정도로 둘을 닦아세우더이다. 나쁜 놈들, 너희들이 그따위 짓을 해도 되는가고 말이외다. 일이 심상치 않고 걱정도 되고 해서 다음날 나는 조씨를 집으로 찾아갔소이다. 그는 도쿄 시내에서도 최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덴엔조후(田園調布)에서 살고 있었는데, 나와 식사를 같이 하는 자리에서 상당히 격한 말로 한민통을 깎아내립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따먹는다더니, 정 선생 당신은 재주 부리는 곰이고, 그자들은 돈 따먹는 왕서방이어요. 아무런들 그래 돈 낸 사람이 집 사라고 그 돈을 줬겠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