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5월 미국에서 발간된 <한국신보>에 실린 ‘정경모씨 린치사건’ 관련 기사.(왼쪽) 당시 한국민주회복 추진위원회 위원장이던 송정율(오른쪽) 한민통 미주본부 의장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 한민통 본부가 필자를 납치해서 인민재판을 한 처사에 항의하고 경고하는 총회의 결의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67
1978년 5월 어느날, 그들이 대기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보니 ‘배동호, 곽동의, 김군부, 그리고 조활준’이 자리에 앉아 있고, 도쿄본부 부장 정재준씨가 재판장 격으로 나와 대좌하는 자리에서 내려다보고 있습디다. 인민재판이 열린 것이지요.
내가 지정된 자리에 앉자 정씨의 눈짓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 대한 성토를 시작한 것은 ‘김’이었소이다. 그는 그 얼마 전까지 “김대중 선생이 우리의 손문 선생이시라면, 정경모 선생께서는 우리의 루쉰 선생이시다”라는 말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곤 했는데, 그날 재판에서는 선두로 나서서 성토를 시작하더군요. 총련에서 누군가를 추방할 때는 그 사람의 직속 부하를 시켜 성토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있었는데, 한민통의 재판극도 바로 그런 식이었소이다.
‘김’이 무슨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에 닥치라고 해놓고, 배씨더러 내게 할 말이 있다면 당신이 직접 말하라고 해도 침묵. 그런데 벌떡 일어서서 이놈 저놈 욕지거리를 퍼붓기 시작한 사람은 그 조직의 사무총장이며 ‘김대중 수석비서관’인 조활준씨였소이다.
“야 인마, 너 사타구니에 뭐가 있거든 똑바로 말해봐.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하도 기가 차서 배씨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았지만 그는 오불관언이라는 듯 ‘조’의 그 ‘발광’을 모른체하면서 듣고 있더군요.
전부터 배씨도 ‘조’의 행동거지를 시답잖게 여기고 있어, 언젠가 내게 불평을 털어놓은 일이 있었소이다. “맨날 술만 처먹고 사무실엔 얼굴딱지도 안 보이면서, 기자회견이 있다고 하면 용케 낌새를 채고 나타나, 기자들 카메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고 말이외다.
어느날 ‘조’가 내게 구는 꼬락서니가 하도 역겨워 어느 자리에서 “배동호 선생도 이런 말을 하더라”고 화풀이를 좀 했소이다. 그 말이 ‘조’의 귀에 들어갔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앙심을 품고 내게 달려든 것인데, 그건 원래 배씨가 한 말이고, 내가 한 말도 아니지 않소이까. 그렇다고는 하나 그때의 그 연극은 미리 짜 놓은 시나리오대로 연출된 것일 뿐이고, 그가 ‘조’를 막을 리도 없지 않소이까?
그 자리에 묵묵히 앉아 그 몰상식한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때 참말로 김대중씨가 원망스러웠소이다. 아무리 망명객으로 일본에 와서 주위에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기로서니 이 따위 걸레 같은 자에게 수석비서관이라는 명함을 주어 이 행패를 부리게 하다니!
뒤에 안 사실이지만, 김대중씨가 가지고 온 망명자금 일화 1000만엔을 이 수석비서관을 믿고 맡겼더니 그걸 들고 노름판에 가서 태반을 날려버렸다는 것이외다. 이건 그 날린 돈을 봉창할 수밖에 없었던 정재준의 입에서 나온 말인데,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이 한 무제의 달갑지 않은 일화까지 다 기록했던 것처럼 수석비서관의 행적은 역사에 남겨둘 가치가 있는 사료라고 나는 믿는 바이외다. 결국 그날의 인민재판을 요약한다면, 너는 미국 군복을 입고 맥아더사령부(GHQ)에 있던 자이니 펜타곤 스파이가 아니냐라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문익환 목사도 스파이라는 말일 것이지만, 그 무지한 자들은 그때 문익환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소이다. ‘배동호·곽동의·조활준’, 이 세 사람이 내게 품고 있던 적개심의 이유는 꼭 같은 것은 아니었소이다. ‘배’는 아마 내가 괘씸하다는 것이었겠지요. 차차 알고 보니 그 조직의 실권자는 ‘곽’이고, 그는 그저 얼굴마담쯤이니 나도 실망스러웠으니까 태도도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겠소이까. 정경모는 재승박덕이다, 즉 재주는 있으나 덕은 없는 자라고 나를 폄하더라는 말도 듣고 있었소이다. ‘곽’은 좀 달랐겠지요. 그 조직 안의 자기 지위는 임명자가 따로 있어 때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바꿔치워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니까 불안했겠고, 자기 자리가 정경모로 대치되는 것이 아닐까 의심암귀(疑心暗鬼)의 공포도 있었을 것이외다.
‘조’는 또 좀 달라 그 수석비서관이라는 칭호가 그를 괴롭힌 것이외다. 나는 김대중 선생의 뭐지만 네까짓게 뭐냐 하는, 나에 대한 우월감은 있으되, 그 우월감을 뒷받침할 만한 건더기가 없지 않소이까. 글을 쓴다, 텔레비전에 나간다 하는 건 원래 수석비서관인 자기가 해야 될 일인데, 정경모가 대신 해버리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조’의 적개심은 집요한 것이어서, 내가 한민통을 나온 뒤 몇십년이 지나도록 중상과 매도는 중단된 일이 없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뒤에 안 사실이지만, 김대중씨가 가지고 온 망명자금 일화 1000만엔을 이 수석비서관을 믿고 맡겼더니 그걸 들고 노름판에 가서 태반을 날려버렸다는 것이외다. 이건 그 날린 돈을 봉창할 수밖에 없었던 정재준의 입에서 나온 말인데,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이 한 무제의 달갑지 않은 일화까지 다 기록했던 것처럼 수석비서관의 행적은 역사에 남겨둘 가치가 있는 사료라고 나는 믿는 바이외다. 결국 그날의 인민재판을 요약한다면, 너는 미국 군복을 입고 맥아더사령부(GHQ)에 있던 자이니 펜타곤 스파이가 아니냐라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문익환 목사도 스파이라는 말일 것이지만, 그 무지한 자들은 그때 문익환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소이다. ‘배동호·곽동의·조활준’, 이 세 사람이 내게 품고 있던 적개심의 이유는 꼭 같은 것은 아니었소이다. ‘배’는 아마 내가 괘씸하다는 것이었겠지요. 차차 알고 보니 그 조직의 실권자는 ‘곽’이고, 그는 그저 얼굴마담쯤이니 나도 실망스러웠으니까 태도도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겠소이까. 정경모는 재승박덕이다, 즉 재주는 있으나 덕은 없는 자라고 나를 폄하더라는 말도 듣고 있었소이다. ‘곽’은 좀 달랐겠지요. 그 조직 안의 자기 지위는 임명자가 따로 있어 때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바꿔치워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니까 불안했겠고, 자기 자리가 정경모로 대치되는 것이 아닐까 의심암귀(疑心暗鬼)의 공포도 있었을 것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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