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글방 ‘씨알의 힘’에서 한글을 배운 일본 사람들이 1986년 문익환 목사의 옥중서한집 <꿈이 오는 새벽녘>을 번역해 일어판을 펴냈다는 기사가 <마이니치신문>(87년 4월)에 실렸다. 이 책은 76년 ‘3·1구국선언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는 동안 문 목사가 가족 등에게 쓴 682통의 편지를 묶은 것이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70
장준하 선생께서 1975년 8월 17일 동지들 45명과 함께 포천군 소재의 약사봉으로 등산 갔다가, 누구 하나 목격자가 없는 사이에 ‘실족사’로 목숨을 잃었다는 미스터리에 관해서는 항목을 따로 해서, 당시 국내 신문이 보도하지 않은 자세한 얘기를 쓸 예정이지만, 이에 충격을 받은 문익환 목사가 다음해 결연히 일어나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을 일으킨 뒤 실로 순교자적 정열로 민족운동을 전개하지 않았소이까. 이 투쟁 속에서 문익환 목사는 말년까지 전주, 서울, 남한산성, 공주 등지의 형무소를 전전하면서, 추석을 일곱 번, 6월 초하루의 생일을 여섯 번 옥중에서 맞는 수난을 겪게 되는데, 그러한 감옥살이 중에서 문 목사가 박용길 부인을 비롯한 가족에게 띄운 편지가 약 6년 동안에 682통에 이르게 되었소이다.
문 목사가 쓴 682통의 옥중서한을 묶은 책이 <꿈이 오는 새벽녘>(춘추사, 1983년)인데, 이것이 글방 ‘씨알의 힘’에서 우리말을 배운 일본 사람들의 손으로 번역되어 일어판이 발간된 것이 1986년이었소이다. 이 책의 발간은 <마이니치신문>에도 보도되었는데(1987년 4월28일치), 그 기사에는 번역팀의 한 사람인 아고가 소감을 얘기한 “오늘을 사는 한국 사람들이 무엇을 희구하며 무엇을 애통해하는가를 알려주는 감동적인 기록”이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소이다. 또 이 책을 위해 문 목사가 내게 보낸 다음과 같은 서한도 이 책에는 실려 있소이다.
‘내가 여기서 볼 때 귀형은 범의 새끼를 잡으려고 맨손으로 범의 굴로 들어간 사냥꾼이 아닐까 합니다.
귀형은 지금 일본의 양심을 일깨우며 그들로 하여금 두 번 다시 과거에 걷던 같은 길로 들어가지 않도록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랑하는 아내의 조국이며 핏줄로 말한다면 반은 두 아들의 조국이기도 한 일본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귀형이 나를 찾아와 일본 여성과의 결혼 의사를 표명하면서 주례를 서달라고 하던 까마득한 옛날 일을 지금 상기하고 있습니다.
귀형과 나는 유랑과 고뇌의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민족주의자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보편적인 정의와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다른 민족에 대한 오만이나 우월감을 배제하려는 민족주의 아닙니까. 오늘의 일본에 대해 우리의 민족주의가 반발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데, 이와 같은 우리의 민족주의를 일본이 이해하는 날은 기어코 올 것이라고 내가 믿는 것은 귀형의 가정이 그날을 약속하는 보증이라고 느끼는 까닭입니다.
내가 전주형무소에 있을 때 우리 민족의 미래에 희망을 가지라고 쓴 시가 있지요. 귀형이 자주 그것을 자기 글에도 인용하고 있는데, “얼어붙은 땅속에서 부라리고 있는 개구리의 눈망울을 보라”는 대목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바로 귀형이 동토(凍土) 속에서 뼈와 가죽만 남은 개구리의 눈망울이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 다가오는 봄의 약속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현해탄을 격하고 양쪽에 있는 나와 귀형이 할 일은 우리가 하루속히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한편, 또다시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굳건한 통일국가의 토대를 닦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 재차 불행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권력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뜻에서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운명공동체를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우리 한국의 민중적 역량은 성숙을 계속해 나아갈 것입니다.
철창을 넘어 내가 가족들에게 보냈던 서한을 묶은 책이 귀형의 힘으로 일본에서 번역출판된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약간이나마 귀형 하는 일에 도움이 되며, 또 일본의 양심과 한국 민중의 마음을 연결시키는 데 이바지하게 된다면 그 기쁨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까. 1986년 정월 문익환’
이것은 우리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 재차 불행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권력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뜻에서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