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7월 도코 시내 학사학원에서 브루스 커밍스와 개번 매코맥 교수를 초청해 필자가 마련한 ‘6·25 발발 40돌’ 기념강연회와 일어판 출판기념식을 끝낸 뒤 뒤풀이 자리의 모습. 앞줄 왼쪽부터 매코맥, 한 사람 건너 필자, 커밍스, 한 사람 건너 윤이상, 서승, 와다 하루키 교수 등이 함께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72
이왕 <꿈이 오는 새벽녘>의 일본어 번역판 얘기가 나온 김에, 내 손으로 번역하여 내 손으로 출판한 두 권의 영어책 얘기를 해보겠소이다. 첫번째 책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저서<한국전쟁의 기원>이고, 두번째 책은 개번 매코맥 교수의 저서 <냉전에서 열전으로>(일본어판의 표제는 <침략의 무대 뒤>)이오이다. 앞글에서 이미 여러 군데 이 책들을 인용했듯이, 예를 들어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나흘 전(1945년 9월 4일) 오키나와에 있던 24군단 단장 하지 중장이 휘하 장병들에게 통고문을 발표하고 “일본인은 미국의 우호국민으로 대우하되 조선인은 적국민으로 취급하라”고 명령했다는 놀라운 사실은 커밍스의 책에서 인용한 것이었으며, 38선 이남만의 단독선거를 실시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유엔조선위원단의 표결에서(1948년 3월 12일) 예상을 뒤엎고 위원장인 인도 대표 메논이 가표를 던지는 바람에 4 대 2의 차이로 단독선거 실시가 가결되었는바, 이것은 위원장 메논이 여류시인 모윤숙의 미인계에 넘어간 탓이었다는, 민족적 시각에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창피스러운 사실은 매코맥의 책에서 인용한 것이었소이다.(제30회) 커밍스의 저서는 그 표제가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되어 있으나, 기묘한 것은 이 책에서는 한국전쟁을 다룬 여느 책과는 달리 그 전쟁이 발발한 50년 6월 25일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외다. 미군부대가 인천항에 도착했던 45년 9월 8일, 검은 경찰복으로 갈아입은 일본군에 의해 미군을 환영하러 나온 조선인 2명이 하지 중장의 묵인 아래 사살당했다는 상징적인 사실로 보아, 한국전쟁은 이미 그날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며, 본격적으로 전쟁이 일어난 당일 어느 편이 먼저 제1발을 쐈는가를 캐묻는 것은 오히려 그 전쟁의 본질을 호도하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 커밍스 교수의 주장인 것이외다. 또 이 책의 부제가 ‘1945~1947’로 되어 있는 것도 퍽 시사적이어서, 이것은 미 군정 3년 동안의 역사가 6·25전쟁을 향하여 치달았던 전초전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인 매코맥 교수의 책도 각도는 다르나마 커밍스 교수의 책과 꼭 같은 결론을 말해주는 것이오이다. 호주는 캐나다와 더불어 미국이 자기들 말이라면 고분고분 들어줄 줄로 믿고 유엔임시조선위(UNTCOK)의 일원으로 지명한 나라였으나, 38선 이북을 배제하고 이남만의 단독선거를 강행하는 것은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위험한 불장난이라며 필사적으로 반대한 나라였소이다. 더구나 단독선거로 수립된 정부는 47년 제2회 유엔총회 결의문이 요구하는 ‘국민정부’(National Government)는 아니며, 마치 이것이 조선 전체를 포함하는 ‘국민정부’인 듯이 미국이 주장한다면, 그것은 ‘비오는 달밤’ 식의 형용모순일 뿐이라는 주장을 호주는 굽히지 않았소이다. 이런 이유로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선언식에 호주 정부는 대표단 파견을 거부했는데, 이런 사실도 있었던 것을 없었던 것처럼 감추거나 말살하려 들지 말고 솔직히 그 역사를 사실 그대로 직시해야 되리라고 나는 믿는 바이외다.
아무튼 이상 두 권의 출판기념식을 겸하여, 6·25전쟁 발발 40돌을 기념하는 커밍스와 매코맥 두 교수의 기념강연회를 90년 7월 9일, 도쿄 시내 학사학원에서 성대하게 거행하였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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