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7월 필자가 마련한 커밍스(오른쪽)와 매코맥 교수 초청 강연회와 출판기념회에서 김홍무(왼쪽)씨가 개회사를 하고 있다. 그는 81년 ‘씨알의 힘’을 보고 인연을 맺은 필자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73
“피할 것은 피하고 알려도 될 것만 알려라. 그것이 피아르(PR)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 않소이까. 이것은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씨가 생전에 남긴 재치있는 말인데, 내가 망명객으로 일본에 와서 혈혈단신인 고독한 처지에서나마 문필활동을 시작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와는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길을 걷게 된 것이고, 조선일보로부터는 되게 미움을 받았소이다.
“일본에는 한일관계를 저해하고자 독소를 살포하고 있는 기생충적인 분열주의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공공연하게 ‘한국 제2해방’을 주장하고 있는 정경모는 한일관계를 망치고 있는 독의 원액이다.”
윗글은 조선일보 도쿄특파원 이도형의 기사를 인용한 것이나(1980년 8월 20일), 실상 이 글을 쓰게 한 인물은 주필 선우휘가 아니었겠소이까. 조선일보가 나를 ‘독의 원액’이라 불러주었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명예스러운 훈장이 또 어디 있겠소이까.
앞글에서 소개한 커밍스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매코맥 교수의 <냉전에서 열전으로>는, 말하자면 “피할 것은 피하고 알려도 될 것만을 알린다”는 언론인 선우휘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저서인데, 그것을 내 손으로 번역해서 내 손으로 출판하였으며, 또 그 두 책의 출판기념회를 성대하게 거행하였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퍽 자랑스러웠던 것도 없지 않아, 약간 신바람이 나서 떠들어대지 않았소이까.
그런데 맨주먹으로 일본에 와서 망명생활을 시작한 정경모에게 무슨 돈이 어디서 생겼기에 그만한 일을 할 수가 있었나, 그 기적 같은 얘기를 이 기회에 밝혀두고자 하는 바이외다.
글방 ‘씨알의 힘’을 차려놓고 잡지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앞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으나, 이것도 만만찮은 기적이었지만, 참말로 믿기 어려운 기적이 또 한번 나를 찾아온 것이었소이다.
잡지 <씨알의 힘> 창간호가 나간 것이 1981년 5월이었고, 제2호가 81년 7월에, 제3호가 같은 해 12월에 나갔는데, 3호까지의 잡지가 상당히 평판이 좋았소이다. 구독료와는 별도로 3만원 또는 5만원가량의 지원금이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었는데, 어느날 들어온 송금표를 보니까 평소보다 ‘0’(동그라미)이 많은 금액이었소이다. 십만원일까 하고 다시 들여다보니 자릿수가 한 자리 위인 백만원이에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독자로부터의 송금이었소이다.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그분 사는 데를 확인하고, 이튿날 찾아간 곳이 도쿄에서 전철로 한 시간 반가량 걸리는 지방도시 시미즈였소이다. 그때 거기서 처음 만난 분이 나보다는 나이가 열살쯤 젊은 김홍무 동지였소이다.
그 동네에서 하룻밤 자면서 많은 말을 나누고 같은 민족주의자로서 우리는 십년지기와 같은 친구가 되었소이다. 그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가 모금활동으로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서 안심하고 <씨알의 힘>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그렇게 해서 만난 김 동지 덕택이었소이다. 그는 파친코 가게를 몇 채 가지고 있는 그저 그만그만한 기업인이나, 번 돈은 옳은 일에 쓴다는 신념으로 일관해 온 인물이외다.
커밍스와 매코맥의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까지 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주고 내가 하는 일이라면 모든 힘을 다하여 뒤에서 밀어준 그의 덕택이었소이다.
어려서 주일학교 다닐 때 들은 얘긴데, 엘리야가 아합왕을 피하여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는 동안, 한 마리의 선한 까마귀가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다 주었다고 하지 않소이까(열왕기 상 17장). 김홍무 동지는 정말로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는 나에게 굶주리지 않도록 끼니 때마다 떡과 고기를 날라다 준 고마운 까마귀였소이다.
또 한 마리의 나비가 베이징에서 한 날갯짓이 태평양 건너 샌프란시스코를 휩쓰는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출판기념회 때의 개회사는 김 동지가 나서서 해주었는데, 그때 그는 내가 자주 하던 그 나비 얘기를 잊지 않고 인용해 주었소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에 불과한 것일는지는 모르겠으나, 언젠가 어디선가에서 폭풍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믿고자 한다고 말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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