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2월 미국 대선에서 ‘주한미군 강화’를 주장한 전임 포드의 낙선과 ‘주한미군 철수’를 내건 카터의 당선은 박정희 정권은 물론 일본 정부에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74년 포드 대통령의 방한 기념우표(왼쪽), 79년 방한 기념우표(오른쪽) 속에서 굳어 있는 박정희와 웃고 있는 카터의 표정이 시사적이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75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에 관해서는 좀 더 해야 될 얘기가 남아 있어 그냥 계속하겠소이다. 1976년 당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포드는 베트남에서의 치욕을 씻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군사력을 과시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반대로 민주당의 카터는 베트남에서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된다고 하지 아니하였소이까. 아무튼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카터가 포드를 누르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는데, 카터가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인권 외교를 내건 만큼 박정희의 폭력적인 (통치)수법이 혐오스러웠던 까닭이었소이다. 그런데 카터의 승리가 전해진 순간부터 ‘주한미군을 철수하다니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냐’고 일본에선 정부가 발칵 뒤집히는 소동이 일어났소이다. 안팎의 매스컴을 총동원한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반대운동은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선거 직후인 그해 11월 내가 눈에 띄는 대로 메모장에 대강 기록해 둔 것만 이렇소이다. ‘고사카 젠타로 외무대신 인터뷰(<뉴스위크> 11월1일), 도고 후미히코 주미대사 미니애폴리스 연설(<재팬타임스> 11월9일), 니시야마 아키라 주한대사 담화(<요미우리신문> 11월9일), 마루야마 고 방위청 차관 외신기자클럽에서 연설(<아사히신문> 11월9일), 구보 다쿠야 전 방위청 차관 ‘논단’ 기고(<아사히신문> 11월11일).’ 이들이 입을 모아 주장하는 일치된 견해는, 조선인은 남북을 막론하고 생각이 미숙하고 유치한 민족인 까닭에 미군이라는 무겟돌이 제거되면 무슨 짓을 하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인권 같은 것을 조율하는 주한미군의 철수에는 절대 반대한다는 것이었소이다. 이 점에 관해 좀더 자세히 부연한다면, 예를 들어 외무대신 고사카의 발언인데, 그의 견해에 따른다면 중국인은 그래도 생각이 어른다워 미군이 대만으로부터 철수한다 해도 안심할 수 있으나, 북조선인들에게는 그만한 성숙성을 기대할 수 없으니 위험천만이라는 것이었소이다. 고사카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북조선 사람들의 ‘멘탈리티’였으나,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본인들이 그보다는 좀 나은 평가를 하고 있는가 하면, 물론 그런 것도 아니오이다. 주한대사 니시야마의 발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외다. ‘단순히 인권문제를 가지고 박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권문제라면 그 나라 국민의 민도를 감안해야 될 것이다. 민주주의 같은 것을 실시한다고 한국이 잘되겠는지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박 정권은 한국이 필요로 하는 정권이며, 박 대통령이 사심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아무튼 카터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공약으로 걸고 대선에서 이긴 사람이지만, 일본 정부가 펼친 반대운동의 폭풍우에 말려들어, 결국은 공약을 취소하고 주한미군의 존속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카터가 공약을 취소하기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서술한 졸문은 커밍스 등 미국 학자들과의 공저인 <두 개의 한국, 하나의 미래>(Two Koreas, One Future?·아메리칸 프렌즈 서비스 커미티·1986년, 한국어판 청계연구소 1987년)에 수록되어 있소이다.
저명한 논객일뿐더러 외교문제에 관한 한 일본 정부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오카자키 히사히코라는 사람의 지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외다. ‘앵글로색슨 국가(미국과 영국)와의 동맹을 견지하며, 동시에 반공열에 불타고 있는 한국에 핵무장을 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하는,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상황을 유지하는 데 일본의 외교 노력은 집중되어야 한다.’(<전략적 사고> 중앙공론 신서) 이 논리를 뒤집어 말한다면, 우리들 일본인이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편히 잘 수 있도록 너희들 한국인은 24시간 불철주야 기관총을 겨누고 38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우리나라에는 주한미군의 존속을 바라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으나, 어느 편에 서 있건 주한미군에 관해서 일본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들의 기대와 우리들 자신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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