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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막무가내 3류소설 ‘장준하 실족사’ / 정경모

등록 2009-08-17 18:16

장준하 선생이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한 지 34주기를 맞았으나 그 죽음의 진상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2기에 걸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은 2004년 ‘추락사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점만 밝혀냈을 뿐 ‘진상 규명 불능’ 결정을 내린 채 마감했다. 사진은 파주시 광탄리 천주교나사렛공원묘지에 있는 장 선생의 묘소.
장준하 선생이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한 지 34주기를 맞았으나 그 죽음의 진상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2기에 걸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은 2004년 ‘추락사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점만 밝혀냈을 뿐 ‘진상 규명 불능’ 결정을 내린 채 마감했다. 사진은 파주시 광탄리 천주교나사렛공원묘지에 있는 장 선생의 묘소.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76
이제 겨우 장준하 선생께서 1975년 8월 17일, 등반대 45명을 거느리시고 서울에서 버스로 약 2시간 거리인 포천군 약사봉에 오르셨다가,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는 사이에 높이 12m의 낭떠러지에서 ‘실족’하여 목숨을 잃으셨다는 미스터리의 진상을 밝힐 차례가 온 것 같소이다.

당시 경찰이 발표한 사건의 전말을 항목별로 써내려가 보면, 일행 45명 속에 ‘김용운’이라는 인물이 증인으로 나타나는데, 장 선생 측근들 말로는 이 사람은 원래 일행에 없었고 우연하게 버스 정류장에서 합류한 ‘의문의 인물’이외다. ‘김’은 선거 때 장준하 사무실을 드나들던 사람으로 장 선생과 안면은 있으되 2~3년 동안 만난 일이 없으며 당시 뭘 하고 있는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거니와, 경찰 발표로는 중학교 교사라고 되어 있으나 어느 학교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외다. 아무튼 경찰 발표를 항목별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외다.

① 일행이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반. 등반대 일행은 약사봉 샘물터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시작하였는데(시간 미상), 장 선생은 그냥 계속해서 산길을 오르셨고, 그때 장 선생을 따라 같이 산길을 오른 사람은 김용운 한 사람뿐이었다.

② 장 선생과 김용운은 약 2시간 계속해서 산길을 올라갔는데 길이 너무 가팔라져 더는 오를 수가 없어 동료들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샘물터를 향해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③ 30분쯤 내려오다 보니 경사가 75도쯤이고 높이가 12m가량인 비탈길이 있어 장 선생은 그 비탈길을 내려가려고 낭떠러지 위의 소나무 가지를 손에 쥐었는데, 어쩌다가 그 소나무 가지를 놓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④ 김용운은 우선 가까운 군부대를 찾아가 사고를 알리고(부대까지의 거리는 미상) 그다음에 샘물터로 돌아와 사고가 난 것을 통보하였다.

⑤ 등반대 일행은 전원 버스 정류장을 향해 산을 내려가고 그중 두 명만이 김용운과 동행하여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서 장 선생의 사망을 확인하였다. 그때 김용운은 장 선생의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른 등산객에 의한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상이 경찰의 공식 보고인데 이건 누가 보아도 전후가 맞지 않는 얘기고, 김용운 자신이 공범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자백서나 마찬가지 아니오이까. 나중에 알려진 가족들의 증언과 친지들의 현장답사 결과 다음과 같은 의문점이 밝혀졌소이다.


① 장 선생의 치명상은 오른쪽 귀의 후부를 뚫은 2인치가량의 두개골 파열이었고, ② 경사 75도의 암반에서 굴러떨어졌다 하는데도 체중 73㎏의 장 선생 신체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으며, ③ 의복도 말짱한 채로였고 찢긴 데가 없었다. 따라서 실족해서 돌산 위에 떨어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④ 소나무 가지라는 것은 떨어졌다는 장소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어 그것을 잡으려 했다는 것도 픽션이려니와, ⑤ 김용운이라는 자가 장 선생과 같이 두 시간을 걸어서 산꼭대기를 오르려다 단념하고, 30분가량 하산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왜 그자는 곧바로 샘물터로 오지 않고 군부대를 찾아갔나?

아무튼 그날 오후 6시 장 선생께서 돌아가셨다고 집으로 와서 통고한 것은 경찰이었고, 등반대 중에 얼굴을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는 같이 갔던 사람들이 어떠한 공포 분위기에서 떨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사건에 관해 ‘의문이 있다’는 기사(<동아일보> 75년 8월 19일치)를 쓴 성락오 기자는 잡혀 들어가 곤욕을 치렀고, ‘야당 지도자의 괴사’를 타전한 외신기자 로이 황은 10월 3일 한국으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았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내가 일본에 앉아 있으면서 ‘장준하 실족사’에 대해 여기 쓴 것과 같은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말한 미국 청년 린 마일즈를 통해 함석헌 선생께서 그때의 상황을 상세하게 내게 알려오셨기 때문이며, 이를 토대로 쓴 장 선생 추도문 ‘장준하는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나’는 그해 <세카이> 12월호를 통해 발표되었소이다.

김구 선생께서 흉탄을 맞고 비명에 돌아가셨을 때, 가슴을 치면서 우리는 모두가 김구 선생이 가신 길을 걸어야 한다고 부르짖었던 장 선생은, 문자 그대로 김구 선생이 가신 길을 걸어가신 것인데, 문익환 목사께서 그 뜻을 이어 장 선생이 가신 같은 길을 걸어간 것이니, 참말로 이것이 나에게는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이오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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