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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한국 폄훼’ 일본논객과 지면 통해 전면전 / 정경모

등록 2009-08-20 18:43수정 2009-08-20 21:00

1980년 6월5일치 <아사히신문>에 실린 다나카 아키라의 글 ‘한국 광주사건을 생각한다’.(위) 그해 6월24일치 같은 신문에 실린 필자의 반론.(왼쪽) 이후 두 사람은 한 번 더 반론을 주고받으며 ‘광주와 한국 문제’에 대해 지상 설전을 벌였다.
1980년 6월5일치 <아사히신문>에 실린 다나카 아키라의 글 ‘한국 광주사건을 생각한다’.(위) 그해 6월24일치 같은 신문에 실린 필자의 반론.(왼쪽) 이후 두 사람은 한 번 더 반론을 주고받으며 ‘광주와 한국 문제’에 대해 지상 설전을 벌였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79
광주 5·18 직후인 1980년 6월 5일, <아사히신문>은 ‘한국 광주사건을 생각한다’라는 표제로 다나카 아키라란 논객의 에세이를 게재하였소이다.

에세이는 우선 60년 4·19 이후 5·16에 이르는 9개월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기에 2000건 이상의 시위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동안 민주당 약체정부는 이에 대해 속수무책이었으며, 건설적인 작업에는 손도 대지 못했으니, 5·16까지의 민주당 정권 9개월이란 ‘볼품없는 시대’에 불과하였다고 은근히 박 정권의 정당성을 시사하는 동시에, 광주사건을 단순히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내지 시민층과 유신체제를 옹호하려는 군부세력의 충돌이라는 단색적인 묘사로는 한국 정치의 실상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자못 학술적인 식견을 피로하는 것이었소이다. 그러고는 왜 남북을 막론하고 한국 땅에는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가, 그 ‘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축적되어 있는 비민주주의적 요소를 캐물을 필요가 있는데, 가령 조선 500년 동안의 당쟁을 봐도 거기에는 권력에 이르는 자유를 요구하는 동질자 간의 투쟁이 있을 뿐, 역사에 전개되는 공격과 복수의 연쇄반응 속 어디에도 민주주의가 성장할 요소를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러니 가령 민주화운동의 중심 인물을 자처하는 윤보선 같은 사람이 정권을 쥔다 해도 ‘광주’와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운운.

다나카는 소년 시대를 식민지 조선에서 지낸 탓이겠으나(경성중학 졸업), 조선인에 대한 민족적 우월감은 거의 체질적인 것이고, 또 그때 받은 총독부 교육 때문일까, 조선의 역사는 당쟁으로 일관된 역사이고, 따라서 조선인은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느니만치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편견이 몸에 배어 있어, 그것이 그의 문장 속에서 야릇한 체취를 발산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소이다. 다나카는 또 죽기 전 박정희로부터 서울에 세워질 ‘한일문제연구소’인가 뭔가의 소장을 맡기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정년을 이태 앞두고 있던 아사히신문사를 퇴직했다는 경력을 보아도, 친박적인 경향이 농후한 인물이라는 것을 그 자신 부정하지 못할 것이외다.

그런 처지의 자기 이념을 스스로 입증이나 하려는 듯이, 다나카는 어느 잡지에 다음과 같은 말도 남긴 일이 있소이다.

“한국은 설사 반체제파라 할지라도 친미반공이라는 점에서는 다들 발걸음이 일치되어 있는 나라인데, 친미반공일 까닭이 없는 일본의 좌익세력이 일한연대와 같은 것을 제창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니냐.”

다나카가 적의를 품고 ‘좌익세력’이라고 매도한 대상은 어디선가 내가 말한 아오치 선생의 그룹을 가리키는데, 아오치 선생은 나를 “타협 없는 혁명가의 기질을 갖춘 인물”이라고 칭찬해 주신 분이니만치, 그에 대한 다나카의 비난에는 나에 대한 욕지거리도 섞여 있었노라고 나는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아오치의 ‘일한연대’를 비난한 같은 입으로 다나카는 <조선일보> 선우휘에 대해서는 “나의 마음의 벗”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였소이다.(<서울 실감록>)

이것은 상호작용의 효과인데, 우리는 다나카를 통해서 선우휘가 누군지를 알 수 있으며, 또 선우휘를 통해서 다나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소이까.

아무튼 ‘광주사건을 생각한다’라는 다나카의 글을 읽고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었겠소이까. 그길로 아사히신문사를 찾아가 반론을 쓰게 해달라는 요구를 들이밀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다나카의 글을 담당했던 ‘문화’란의 기자가 내 말을 듣더니 그럼 써달라고 선선히 응낙을 하더이다. 곧 붓을 들어 쓴 반론 ‘광주시민은 어째서’는 그해 6월 24일치 <아사히신문>에 게재되었는데, 이에 대해 다나카가 쓴 반론이 게재된 것은 7월 7일이었소이다. 이어 내가 쓴 재반론은 7월 21일 발표되었으니, 광주 문제는 네차례나 아사히의 지면에서 각광을 받은 셈이었소이다.

다나카와 나 사이의 논쟁은 말하자면 살육을 자행한 자들의 편과 살육을 당한 자들의 편의 싸움이었고, 또 말을 바꾼다면 민족적 우월감에 젖은 일본의 우익세력과 여기에 대항하는 우리의 민족주의 사이의 결투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 싸움에서 내가 무슨 응원 같은 것을 기대했을 리도 없었거니와 또 실상 누구 하나 내 편에 서서 거들어 준 사람도 없었소이다. 문자 그대로 고군분투였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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