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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한민통’서 잉태된 광주·DJ의 비극 / 정경모

등록 2009-08-31 18:31수정 2009-09-02 01:52

1980년 ‘5·18 사태’ 소식을 전해 들은 한민통을 비롯한 재일 민주세력들이 6월 1일 도쿄 시내에서 ‘광주민중대학살 규탄·군정타도 궐기집회’를 연 뒤 거리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한민통 20년 운동사>에서
1980년 ‘5·18 사태’ 소식을 전해 들은 한민통을 비롯한 재일 민주세력들이 6월 1일 도쿄 시내에서 ‘광주민중대학살 규탄·군정타도 궐기집회’를 연 뒤 거리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한민통 20년 운동사>에서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86
박정희가 암살된 후 ‘서울의 봄’이 찾아와 다음 대통령은 세 김씨 중 누구이겠나로 사람들의 마음이 설레고 있던 것도 참으로 잠시였을 뿐, 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느닷없이 ‘확대 비상계엄령’을 펴고 김대중·문익환·김상현·이해찬 등 13명을 내란음모죄로, 한승헌·고은·이문영·예춘호 등 11명을 계엄법 위반으로 체포했는가 하면, 날이 새자마자 피비린내 나는 광주 5·18 학살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니오이까.

군인들이 저지르는 그 잔인하고 끔찍스러운 만행은 시시각각으로 여러 채널을 통하여 그 전모가 자세하게 일본으로 전달되어 왔는데, 아마 그 당시 언론통제 때문에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오히려 서울에서는 잘 모르고 있지 않았나 하오이다. 아무튼 몽둥이로 쳐서 해골이 깨지며 젊은 학생의 골수가 터져 나왔다는 얘기, 고등학교 여학생을 속옷까지 벗겨 알몸으로 세운 채 칼로 유방을 도려냈다는 얘기, 만삭이 된 여인의 배에다 대고 속에 든 것을 보자 하면서 총검으로 난자질을 했다는 얘기, 이것을 말리려는 칠순 노파를 마치 호박 찌르듯이 찔러 죽였다는 얘기…, 이 모든 잔인무도한 행위가 여진이나, 몽고나, 왜구가 아니라 제 나라 군대에 의하여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소이다. 더구나 국군에 대항하여 총을 들고 싸운 시민군에 의해 사살된 군인 열다섯명에게 신군부 정부가 화랑무공 훈장을 수여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정부라는 것이 참으로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새삼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소이다.

그 울분은 물론 나만의 것이 아니었고, 자연발생적으로 모인 남북 재일동포들에 의하여 7월 12일 ‘광주 학생시민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도회’가 도쿄에서 열린 것인데, 그 후 해가 바뀐 다음 <세카이>의 야스에를 통하여 내게 전달된 것이 광주시민에 의하여 작성된 ‘5·18 광주사태 백서’였소이다.

상당히 장문의 것이었는데 그 백서는 ‘비민주적, 비인간적, 반민족적 등등. 어떠한 형용사로도 그 잔인한 참상을 표현할 수 없는…이렇게까지 처참한 살육이, 어떻게 해서 같은 체제 아래서 사는 자기 나라 군대에 의해 저질러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의아스러움을 표명하면서도,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그리고 현재의 전두환 독재 등등 그 외모는 각기 다를망정, 따지고 보면 해방 때부터의 그 출발점은 일제의 잠재세력이었으며, 이 세력을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는 공범인 미국은 절대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고 단정함으로써 진정한 적이 미국이라는 점을 명쾌하게 갈파하고 있었소이다.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광주’가 지니는 의의는 참으로 역사적인 것이었는데, 아무튼 이 ‘백서’는 내 손으로 일본어로 번역되어 1981년 9월호 <세카이>에 게재되었소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광주였나? 왜 김대중이었나? 그리고 또 왜 ‘한민통’인가? 이제 나만이 알고 있는 그 수수께끼의 일단을 피로하겠소이다.

서해 망둥이가 뛰니까 덩달아서 전라도 빗자루가 뛰더라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바로 그런 사태가 일본에서 일어났던 것이외다.

테헤란에서 이란 학생들이 미국대사관을 점령하고 52명 직원을 전원 인질로 잡았다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앞서 말한 대로 호메이니 혁명이 일어났던 79년 11월 4일이었는데 그 직후 도쿄에 있는 ‘한민통’의 곽동의는 옳다, 이제는 됐다 싶었던지 산하의 젊은 사람들을 풀어 센다이자카의 한국대사관을 일시 점거하고, ‘박정희는 죽었으니 이제 대사관은 우리 것이다. 내놔라’는 식으로 직원들에게 행패를 부렸다는 것이외다. 그때 공사로 있던 허문도가 다급해서 화장실로 도피하자 거기까지 추적해서 모욕을 주었다니, 얼마나 허문도는 이가 갈렸겠소이까.


나는 그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전신이 오싹해지는 공포를 느꼈소이다. 그 당시 서울에는 비상계엄령이 그대로 퍼져 있는 상태였고, 김대중씨는 신군부 손아귀 안에 있는 처지였는데, 그 따위 철딱서니 없는 짓이 신군부에 또는 미국에 어떠한 충격을 주게 된 것인지, 그런 것을 헤아릴 만한 사려나 지성은 ‘한민통의 차지철’, 곽동의에게는 없었던 것이었소이다. 그가 한 짓, 바로 그것이 ‘반국가 행위’가 아니오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그 일이 있은 직후인 80년 정월, 허문도는 공사직을 퇴임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며, 돌아가자마자 승강기식 출세로 통일원 장관이 되는 것인데, 도쿄 한국대사관을 떠날 때의 송별식이 일개 공사의 퇴임에는 걸맞지 않을 정도로 요란하더라고 초청을 받고 거기에 참석했던 어느 일본인 신문기자가 내게 알려주더이다.

허문도는 그때 ‘한민통’에 관해서 김대중씨가 아는 범위를 훨씬 넘는, 자세하고도 구체적인 정보를 손에 쥐고 서울로 갔으리라 나는 추측하는 바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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