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대소련 봉쇄정책을 처음 제안해 ‘냉전의 설계자’로 불린 미국 외교관 조지 케넌.(왼쪽) 당시 국무부 외교정책실장으로 발탁된 그가 작성한 ‘케넌 설계도’(오른쪽)는 ‘일본의 한반도 재지배’를 제안하고 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88
‘무사도(마셜 스피릿)로 정신이 무장된 우수한 일본 민족에 비하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조선 민족은 머저리들이라는 것’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머릿속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개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조선에 대한 통치권은 일본에 일임하는 것이 오히려 미국에는 이득이라는 발상 아래 ‘태프트-가쓰라 밀약’이 성립되었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소이다만, 그렇다면 현재의 미국은 과연 ‘태프트-가쓰라 시대’와는 다른 안목으로 우리를 보고 있겠는가?
미국은 우리를 일제 지배로부터 해방시켜 준 고마운 나라인데, 그런 질문은 질문 자체가 불순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나, 아무튼 내가 지금부터 풀어놓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들어주기 바라는 바이외다.
조지 케넌(George Kennan)이라는 유명한 미국 외교관이 있소이다. 2005년에 101살로 세상을 떠났는데, 소련에 대한 컨테인먼트(봉쇄) 정책의 입안자로 이름을 날린 저명한 외교관으로서 학계나 언론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지만, 왜 그런지 그가 조선 민족의 미래상에 관해 남긴 ‘설계도’는, 내게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으나, 별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우리나라 학계에서조차 거의 문젯거리로 삼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외다. ‘케넌 설계도’는 다음과 같은 것인데, 간단히 말해서 조선반도에서 만주에 이르는 일본의 구식민지는 다시 한 번 일본에 통치를 맡기는 것이 미국에는 이득이라는 것이외다.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생각한다면, 일본의 영향력과 제반 활동이 조선에서 만주에 이르는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에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게 될 날은 반드시 올 것인데, 그날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 이 지역에 대한 소련의 압력을 완화하고 저지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인 유일한 방도인 까닭이다. 힘의 균형을 이용한다는 구상은 미국의 외교정책상 새로운 것은 아니며, 현재의 국제정세에 비추어 이와 같은 정책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이러한 정책을 채용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들(국무부 정책기획본부)의 일치된 견해이다.’
케넌이 작성한 이 ‘설계도’는 그가 본부장으로 있던 국무부 정책기획본부 제13호 파일 상자에서, 내가 늘 말하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처음 찾아낸 것인데, 그가 발견하자마자 내게 보내온 것이 1985년 가을이었소이다. 태프트-가쓰라 밀약의 재판인 이 문서를 읽고 내가 얼마나 놀라고 또 분개했겠는지 짐작이 갈 것이나, 더 부아가 터지는 것은 그 후 20년이 넘도록 글로 또는 말로 소리 높여 떠들어대며 이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려고 안간힘을 다했소이다만-나의 역부족 탓이겠으나-여기에 관심을 품어주는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었소이다. 내가 아는 한, 일본인 학자들이 서술한 조선문제에 관한 책 중에서 ‘케넌 설계도’를 언급한 것은 하나도 없었소이다.
베트남에 대한 프랑스의 지배권을 회복시킨다는 미국의 의도에서부터 베트남전쟁이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힌터랜드(배후지)로서 조선과 만주를 우선 미군의 군사력으로 점령한 뒤 그 지배권을 일본에 넘겨준다는 ‘설계도’는 당시의 국제정세로 보아 별로 놀랄 만한 것은 아니었고, 6·25전쟁은 어차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었으니만치, 제1발을 쏜 것이 김일성이었나 이승만이었나를 캐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하는 바이외다.
그렇다고는 하나 공산진영이 미국의 의도에 대해서 전혀 깜깜한 상태였고,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6·25를 맞이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겠지요.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Ⅱ>를 보면, 예를 들어 ‘케임브리지 5’로 불리던 킴 필비, 가이 버제스, 도널드 매클레인과 이중간첩 조지 블레이크 등등 미국의 국가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잠복하면서 입수된 극비 정보를 직통으로 모스크바로 전달하던 이른바 ‘두더지’(mole)들이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나 영국의 첩보기관 엠아이6(MI-6) 안에 우글거리고 있었다는 것이외다. ‘케넌 설계도’쯤 스탈린이 몰랐을 리 없고 그 정보는 즉각 모택동과 김일성에게 전달되어 각자 대비책도 마련하고 있었을 것 아니오이까. 김일성이나, 모택동이나, 또는 스탈린의 시각에서 본다면 6·25전쟁은, 비록 일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망정, 제2의 청일전쟁이요, 제2의 러일전쟁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는 바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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