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일본으로 망명한 1970년, 당시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오르내리던 인기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도쿄 시내 이치가야기념관 옆에 있는 자위대 본부로 쳐들어가 ‘평화헌법 철폐’를 주장하며 할복자살한 사건이 터졌다. 사진은 사건을 보도한 <아사히신문>(11월 25일치 1면).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91
평범한 일본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민주화된 평화 지향의 국가라는 점에 대해서 거의 의심을 품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나라 정치 지도자 누군가가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의 길을 따라 다시 한 번 조선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든가, 또는 “일본은 일-청, 일-러 두 전쟁에 이어 삼세번째 다시 한 번 일어나 조선반도를 석권한 다음 38선을 일본의 힘으로 압록강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든가, 초연의 악취가 코를 찔러 오는 얘기들을 했다면, 깜짝 놀라면서 그럴 리가 있나, 그건 거짓말이라고 펄쩍 뛰는 것이 십중팔구일 것이외다. 이건 내가 실상 일본에서 경험해 온 일이니까 틀림없는 노릇이지요. 사실이 이렇다는 것을 본국 동포들에게는 꼭 알려야 되겠노라고 말을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꽤 긴 얘기가 돼버렸는데, ‘이토 히로부미의 길을 따라’ 운운한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발언이나, ‘일-청, 일-러에 이어 삼세번째 다시 일어나’ 운운한 사와다의 발언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일본의 네오나치적 내셔널리스트들이 품고 있는 메이지시대에 대한 향수나 집념은 뿌리가 깊은 것이며,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외다.
그런데 이런 향수나 집념은 그냥 막연한 감상적인 복고 사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주장을 갖고 있는 것인데, 패전 뒤 일본이 미국의 압력으로 본의 아니게 받아들인 현재의 평화헌법을 뒤엎고, 옛날의 메이지헌법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그 주장의 중심인 것이외다.
메이지헌법과 평화헌법은 어디가 다른가. 하나는 천황의 위치이고, 또 하나는 국가가 행사하는 교전권의 문제이오이다.
메이지헌법에 따른다면 천황은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총람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데 반해서, 평화헌법에서 천황은 주권재민의 원칙 아래 국민의 통합을 표시하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규정되어 있을 뿐이니(제1조), 이 점이 복고주의자들에게는 불만인 것이외다.
또 하나, 교전권의 문제인데, 평화헌법은 국가의 의지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국가가 교전권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제9조), 그렇다면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의 길을 따라 다시 한 번 조선 땅에 뿌리를 박는다든가, 다시 한 번 일어나 38선을 밀어낸다든가 하는 그들 복고주의자의 이상은 실현이 불가능하지 않겠소이까.
내가 일본에 와서 망명생활을 시작한 것이 1970년이었다는 것은 독자들도 기억하고 있을 터인데, 바로 그해 늦가을 일본의 저명한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자기가 육성해온 ‘방패회’의 회원을 거느리고 도쿄 시내 이치가야에 있는 자위대 본부를 점거한 뒤 “남의 나라가 멋대로 제정한 현행 헌법 따위는 걷어치우자”고 절규하면서 궐기를 선동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현장에서 사무라이식 ‘셋푸쿠’(할복자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였소이다. 연표를 보니 11월 25일이 그날이었소이다.
쿠데타 선동의 방법이 너무나 유치하고 치졸해서 미친 놈이 미친 짓을 했을 뿐이라고 범연하게 봐 넘길 수도 있겠으나, 미시마는 노벨 문학상 물망에도 올라 있던 일본의 저명한 인기작가였다는 점에서, 그의 행위를 그렇게 간과할 수만은 없는 여러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그때 나는 느꼈소이다. 당시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오오카 쇼헤이 등 원로작가들이 그의 성급했던 행동을 애석하게는 생각하고 있었으되, 미친 짓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으며, 평화헌법이 일본 고유의 정신을 좀먹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지식인들조차 미시마가 느끼고 있던 일종의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소이다.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메이지시대에 대한 향수와 집착은,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망정, 일본인 전체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노라고 나는 믿는 바이외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09년 7월 현재 자민당 정부 총리인 아소 다로는 “다시 한 번 조선 땅에 뿌리를 박자”던 요시다 시게루의 외손자이며, 바로 그 앞의 총리 아베 신조는 “일본은 삼세번째 다시 한 번 일어나 조선반도를 석권하자”는 세력의 중심 인물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것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알기 쉽게 말한다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09년 7월 현재 자민당 정부 총리인 아소 다로는 “다시 한 번 조선 땅에 뿌리를 박자”던 요시다 시게루의 외손자이며, 바로 그 앞의 총리 아베 신조는 “일본은 삼세번째 다시 한 번 일어나 조선반도를 석권하자”는 세력의 중심 인물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것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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