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가 1987년 11월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으로 유일하게 붙잡힌 김현희(마유미)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로 제시한 김현희의 어릴적 사진.(왼쪽) 하지만 사진속의 주인공임을 주장하는 북한 여성이 나타나는 등 안기부 발표의 신빙성을 뒤흔드는 증거가 속속 나왔다. 오른쪽 사진은 김현희가 사건 모의 단계에서 마카오섬에 머물렀다는 내용을 보도한 시사잡지 <시사저널> 893호.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93
이제 겨우 문익환 목사를 모시고 평양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는 얘기를 꺼낼 차례가 된 것 같은데, 문 목사와 내가 평양에 갔다는 사실보다는 갈 결심을 했을 당시 나나 문 목사나 겨레가 놓여 있는 상황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나가 더 중요한 것이니, 지금부터 그 평양 방문에 대해서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바이외다.
개인이나 집단을 불문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 스스로는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심층의 잠재의식이 발동된다는 것은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일이 아니오이까.
1987년 6월 민중항쟁을 촉발한 직접적인 동기는 박종철군 고문사에 대한 분노였고, 또 하나의 동기는 ‘체육관식’ 대통령선거에 대한 거부감이었지만, 더 깊은 심층에서 한국인의 격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5·18 광주’에서 미국이 보인 행동에 대한 분격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소이다.
그때 명동성당을 본거지로 하면서 민주항쟁을 총지휘하고 계시던 김승훈·함세웅 신부, 그리고 문 목사 등을 생각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라는 시편 121편의 구절이었소이다. 도움은 어디서 오나, 미국인가 일본인가? 됐든 말았든 38선 이북의 동족들과 서로 껴안고서 “우리는 하나”라고 울부짖는 이외에 어디서 도움이 오겠소이까.
그렇다고는 하나 그 시점에서 내가 문 목사를 모시고 평양을 방문하여 둘이서 김 주석과 껴안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다짐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어디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가 있었겠소이까.
6월항쟁 때 끓어오르는 한국인들의 격정에 놀란 미국은 그 불길을 끄고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분격을 잠재우기 위해 두 가지 수단을 동원했는데, 하나는 ‘88올림픽’, 또 하나는 동교동 자택에서 칩거중이던 김대중씨를 극적으로 끌어내어 대통령선거에 뛰어들게 함으로써 민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었소이다. 그런데 미국의 처지로서는 올림픽은 되도록 성대하게 치르되, 김대중씨의 당선은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막는다는 속셈이었다고 나는 믿는 바이외다. 미국의 국무차관보 더윈스키가 시민항쟁을 진압하려는 최루탄의 연기가 자욱한 서울에 도착한 것이 6월 23일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그의 서울 방문 목적은 당시 주한 미국대사 릴리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었겠고, 며칠 뒤 발표된 ‘6·29 성명’은 그 결과가 아니었겠소이까. 한국에서는 아직도 6·29를 낸 것이 전두환이었나 노태우였나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6·29 선언’은 더윈스키와 릴리의 작품이었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외다.
그동안 본국에서 열심히 민주화운동으로 뛰고 있던 많은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나를 만났고,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얘기가 그 뜨거웠던 6월 민중항쟁 당시의 열기로 옮겨가지 않겠소이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젊은 사람들에게 물었소이다. 6월항쟁으로 6·29 민주화 성명이 나오고, 동교동에 칩거중이던 김대중 선생까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허용됐는데, 그 대통령선거가 실시된 날짜가 그해 몇월 며칠이었는지 기억하느냐고 말이외다. 그런데 의외로 그것이 12월 16일이었다는 사실을 꼭 찍어서 대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소이다. 더군다나 대한항공(KAL)기를 폭파하여 승객과 승무원 115명의 생명을 앗았다는 이북의 테러리스트 김현희가 마스크로 입을 틀어막힌 기괴한 모습으로 김포공항에 나타난 것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는 사람도 퍽 드물었소이다. 그날은 물론 바로 선거 전날인 12월 15일이었지요.
김현희의 출현으로 김대중씨가 잃은 표는 100만표보다도 많았을 것이라고 나는 전해서 들었소이다마는, 김현희의 그 연극으로 이북에 대한 적개심을 최고도로 불쿼놓고서, 바로 그 다음날 선거를 실시했다는 사실을 다만 우연이었노라고 가볍게 넘겨도 무방한 노릇이오이까.
문제의 핵심은 김현희가 도대체 누구인가인데, 나는 마카오에서 중앙정보부(KCIA)에 납치당한 북한 공작원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소이다. 그걸로 김현희 사건의 모든 수수께끼는 자연스럽게 풀리는데 무슨 까닭으로 평양 당국이 그 사실을 부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만일 그렇다면 ‘김현희는 마카오에 파견되었던 우리(평양) 쪽 공작원이었는데, 모월 모일부터 행방이 묘연해졌다, 따라서 그날부터의 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는 한마디로 평양은 모든 규탄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을 터인데,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오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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