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KAL기 폭파·야권분열…유신청산 꿈 앗아갔소 / 정경모

등록 2009-09-10 18:33

‘대한항공 858편’ 폭파 용의자로 붙잡힌 김현희(마유미)가 대선 바로 전날인 1987년 12월 15일 서울로 압송돼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 용의자로 붙잡힌 김현희(마유미)가 대선 바로 전날인 1987년 12월 15일 서울로 압송돼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94




한국인의 잠재의식 속에 꿈틀거리는 반미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이 1987년 6·29 선언을 발표하게 하고, 김대중씨에게까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자유를 인정했으되, 절대로 당선은 저지한다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었다는 것은 앞 글에서도 말한 바가 있지 않소이까.

그런데 선거운동을 시작한 김대중씨는 내가 바다 건너 일본에서 넘겨다보아도 이상스러울 만치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어요. 왜 그럴까 머리가 갸우뚱해질 만큼 그 양반의 자신감은 확고부동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 이유를 나는 짐작할 수가 없었소이다.

이건 본국의 ‘카더라’ 방송을 몇 다리 거쳐서 들은 얘기에 불과하니까 혹시 실례가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김 선생 은행계좌에 2만원 또는 3만원가량의 소액 기부금이 날마다 수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국민들의 지지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더구만요.

또 김 선생이 항상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군부에서조차 별을 단 장성들이 줄을 지어서 찾아와서는 자기들은 김 선생에 대해서 적의를 품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김 선생의 승리를 바람직스럽게 여기고 있노라고 격려의 말을 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혹시 자신과 김영삼씨의 후보 단일화를 막으려는 교묘한 술책일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김 선생은 혹시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주한 미 대사 릴리가 몇 차례인가 찾아가서 출마를 종용했다는 얘기도 듣고 있었는데, 김 선생께서는 릴리의 그 말을 듣고 그렇다면 후보 단일화는 필요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저버릴 수가 없었소이다.


이틀 전인 12월 13일 ‘6·29 선언’으로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가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100만을 헤아리는 청중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다.
이틀 전인 12월 13일 ‘6·29 선언’으로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가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100만을 헤아리는 청중에게 열변을 토하고 있다.
아부다비를 출발한 ‘KAL 858편’ 항공기가 김현희가 몰래 두고 내렸다는 폭약 때문에 자취도 없이 안다만 해상에서 사라진 것이 그해 11월 29일이었소이다.

그날이 바로 김 선생께서 5·16 광장에 모여든 100만의 군중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날이기도 한데, 칼기 폭파사건이 혹시 자기를 겨냥한 모략사건은 아니었을까, 또는 5·16 광장에 모였던 100만 군중 속에 ‘사쿠라’들이 끼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응당 김 선생께서도 의심을 품었어야 했겠지요.

김 선생께서 칼기 폭파사건의 소식을 듣는 즉시 김영삼씨를 찾아가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다, 이번에는 내가 양보하겠으니 당신이 나가라, 그 대신 당권을 그동안 내가 쥐고 있겠으며 다음번에는 내가 나가마’, 그렇게 해서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유신체제의 잔당인 노태우에게 정권을 빼앗기는 일도 없었겠거니와 다음다음 차례의 선거 때 김종필이 거느리는 표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던 굴욕도 모면할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아쉬움을 저버릴 수가 없었소이다.

아무튼 문제는 후보 단일화가 깨지고 정권이 노태우 손으로 넘어갔을 때의 그 참담했던 상황이외다. 6월항쟁 때의 그 뜨거웠던 열기는 그야말로 운산무소, 방향감각을 잃은 민중들은 어찌해야 될지 갈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할 뿐이 아니었소이까.

이건 평양 가는 길에서 문 목사로부터 직접 들은 얘긴데, 자기도 김 선생께 간곡하게 후보 단일화를 권고했다는 것이외다. 김 선생께서는 12월 열흘까지만 자기를 밀어다오, 그러면 그 힘을 빌려 김영삼씨와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겠다, 그렇게 약속을 했다는 거죠. 그러나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던 것이외다.

역사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외다. 후보 단일화에 대한 희망이 물거품이 되고, 6월항쟁의 열기가 운산무소되었다는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갈 테야 문 목사’께서도 나의 건의를 받아들여 89년 평양행을 결심하신 것이고, 그때의 4·2 공동성명이 그 후의 6·15 공동선언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오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끝으로 김현희 칼기 폭파사건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겠는데, 97년 12월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뽑히게 되는 한국의 선거가 박두하자 일본의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는 ‘김현희와 유가족의 10년, 칼기 폭파사건’이라는 표제의 특별프로를 연거푸 방송하고 있었소이다.

이것이 김대중 정권의 부상을 저지하려는 일본 정부의 저의와 무관한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