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군부정권 파고든 세지마의 돈뭉치 / 정경모

등록 2009-09-14 18:28수정 2009-09-14 22:36

1970년대 초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충성 경쟁을 했던 김형욱(왼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오른쪽)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인근 삼청동길을 나란히 걷고 있다. 이들은 한-일 수교 이후 들어온 일본 지원자금을 놓고 이권 경쟁도 벌였다.  <히스토리채널>
1970년대 초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충성 경쟁을 했던 김형욱(왼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오른쪽)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인근 삼청동길을 나란히 걷고 있다. 이들은 한-일 수교 이후 들어온 일본 지원자금을 놓고 이권 경쟁도 벌였다. <히스토리채널>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96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세지마 류조의 침투작전은 돈뭉치를 뿌리는 직접적인 수단으로 수행되었소이다. 1996년 교도통신사가 펴낸 <침묵의 파일-세지마 류조는 무엇이었는가>(한국어판 <일본은 살아 있다>)를 보면, 예를 들어 총공사비 2600만달러에 이르는 영동화력발전소가 건설될 당시, 커미션(뇌물)은 공화당 재정위원장 김성곤(쌍용그룹 창업자)에게 지급될 4%로 족할 줄 알았는데, 별안간 중앙정보부장(KCIA) 김형욱으로부터 ‘내 몫인 3%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항의가 들어와 세지마는 눈 꾹 감고 그것을 승인해 합계 7%, 즉 182만달러를 지불했소이다. 김성곤에 대한 4%는 샌프란시스코 아메리카은행(BOA) 비밀계좌로 지급되었으며, 김형욱에 대한 3%는 이토추상사 홍콩지점이 준비한 현찰이었는데, 김형욱은 부하인 중앙정보부 차장을 시켜 그 돈가방을 찾아갔다는 것이외다.

한일합섬 마산공장이 역시 이토추의 차관으로 건설되었을 때, 대통령 비서실장 이후락에 대해서는 세지마 자신이 미리 준비한 자기앞 고액수표 뭉텅이를 청와대 사무실로 들고 들어가 직접 넘겨주었는데, 부피로 보아 일화로 2000만~3000만원쯤의 금액이었을 것이라고 이토추 서울지점 대리는 증언하였다는 것이외다.

세지마가 1980년대 한국군의 중심세력인 일심회(하나회의 모태)와 접근하게 되는 경위는 다음과 같소이다. 79년 10·26으로 박정희가 죽고 12·12를 거쳐 급부상한 신군부의 3인방은 전두환·노태우·권익현이었는데, 당시 권은 삼성물산의 중역으로 있었던 관계로 세지마는 이병철 회장을 통하여 권익현을 만나게 되고, 다음에는 권을 통해서 일심회의 중심인 전두환과 노태우를 만나 서로 친분을 두텁게 하게 되는데, 전두환이나 노태우나 자기들이 숭상하는 박정희보다 일본 육사의 까마득한 선배인 세지마에 대해서는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도 시원치 않을 만한 심정이 아니었겠소이까.

더군다나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 앉은 뒤 ‘한국은 반공의 보루로서 일본을 지키는 방패가 아니냐. 5·18 광주에서 우리가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가. 그러니 돈을 내라’고 생떼를 쓰자, 그때 나서서 나카소네를 설득해 선뜻 40억달러를 내게 한 인물이 바로 세지마였던 것이외다. 이쯤 되고 보니 세지마로서는 전두환을 비롯한 한국군의 일심회는 ‘자가약롱중(自家藥籠中)의 명심환’이나 마찬가지 아니오이까.

88올림픽을 서울로 유치하는 문제가 부상하자 세지마로서는 ‘5·18 광주’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억을 희석시키며, 동시에 군부정권의 기반을 굳힌다는 뜻에서도 88올림픽의 서울 유치는 정치적으로 따져 충분히 수지가 맞는 프로젝트였겠고, 또 공교롭게도 88년은 메이지유신(1868)으로부터 꼭 120년이 되는 해이니, 시침 뚝 떼고 메이지 120돌 축제를 88서울올림픽의 형태로 한국 땅에서 거행한다는 것도 흐뭇한 노릇이라는 생각이 세지마의 흉중에는 있었으리라 믿는 바이외다.

아무튼 그해 가을 대통령 노태우의 개회 선언으로 88서울올림픽은 막이 오르고 국민들은 그 화려한 축전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 아니었소이까. 한편 6월항쟁 때 뛰던 민주화세력은 말하자면 예수를 무덤에 묻고 난 후의 제자들 모양으로 실심낙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 방향감각을 잃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소이까.

나는 나대로 망연자실, 김대중씨를 탓해 봐야 소용도 없고 혼자서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 그것이 있지 않은가, 문 목사를 모시고 평양엘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던 것이외다. 그것이란 평양에서 연구씨가 내게 보내온 장문의 전보였지요.

바로 그해 88년, 내가 해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기일인 7월 19일을 기해 열고 있던 추모회 때 몽양 선생의 따님 연구씨가 내게 상당히 긴 내용의 전보를 보내주었다는 얘기를 앞 글에서 쓴 일이 있지 않소이까.(제22회) 그것도 참 기묘한 사연의 얘기인데, 77년인가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유엔 주최로 열린 세계여성대회 때 일본에서 취재차 간 <아사히신문>의 여성 기자 마쓰이 야요리(고인)였는 바, 마쓰이는 나와는 가까운 사이였고 추모식 때도 늘 참석해 주던 분이니까, 그 국제대회의 조선대표로 평양에서 온 연구씨에게는 퍽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몽양 추도회와, 그것을 열고 있는 망명객 정경모의 얘기를 했을 것 아니오이까. 그 얘기를 들은 연구씨가 목을 놓고 흐느껴 울더라고, 나이로비에서 돌아온 마쓰이가 내게 전해주었는데, 88올림픽이 열린 그해의 추모식에 연구씨 이름의 전보가 날아든 것이었소이다.


식이 끝난 다음 재일동포 상공인인 전진식씨가 전보를 좀 보여달라고 하기에 보여 주었더니, 그가 귀엣말로 내게 이릅디다. 이 전보는 비록 여연구의 이름으로 온 것이나, 실제로이 전보를 친 사람은 김일성 주석 자신이라고요. 아! 그런가. 그렇다면 문 목사를 모시고 평양엘 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