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씨
강기훈씨 인터뷰 “참, 시간이 빨리도 가네요!” 16일 법원이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 사건의 주인공 강기훈(45)씨는 뜻밖에도 덤덤했다.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1994년 출소 이후 저에게 붙은 ‘꼬리표’ 때문에 취업이 어려웠던 것만 빼면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남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며 산다”고 말했다. 1991년 사건이 일어난 뒤 18년이 흐른 지금, 강씨는 서울 강남구 선릉역 근처에 있는 정보통신(IT) 업체에서 평범한 ‘월급쟁이’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의 앙금은 풀리지 않은 듯했다. 특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당시 수사 검사들을 떠올릴 때면 고통스럽다고 했다. 당시 검찰은 강씨를 조사하며 이틀 넘게 잠을 재우지 않은 채 ‘김기설의 유서을 대필했다’는 진술을 강요했고, 때때로 손찌검과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고 한다. “수사 검사들은 단 한번도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잘못이 없다’고 하니 제 감정이 어떻겠어요.” 그는 “그분들이 검사장이 되고, 검찰총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대법관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 같은 사람을 또 때려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심하게 우울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였으니 좋은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 가슴 속 응어리를 다시 어루만졌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다 해도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이 감당해야 했던 상처가 치유될까요. 이제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네요.”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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