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정초 문익환 목사는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에서 평양행 결심을 밝혔다. 그에게 ‘갈테야 목사’란 별칭을 안겨준 이 시는 2008년 11월 한신대 교정에 세워진 시비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02
평양을 출발해 베이징을 거쳐 요코하마 집으로 돌아온 것이 1988년 섣달그믐이 박두해서였는데, 돌아오는 즉시 문 목사에게 수유리 자택으로 전화를 건 것이오이다. 도청을 당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도록 암호 비슷한 말로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아무튼 냉면이나 한 그릇 얻어잡수시고 허탕을 치실 염려는 절대로 없으니 안심하시라는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던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며칠 뒤인 89년 정월 초하루, 문 목사는 그 유명한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읊어 발표한 것이외다.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서울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떼를 쓰면
이 양반 머리가 돌았구만 할 테지
그래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하는 수 없지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아니 그래도 나는 간다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고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고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
38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것이라고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문 목사는 시인이니까 시인다운 환상에 젖어 잠꼬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다들 아마 그렇게 여기고 있었겠지요. 나는 바다 건너에서 문 목사의 시를 받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으로 울었겠소이까. 문 목사가 도쿄에 도착할 날짜를 나는 3월 25일 전후로 잡고, 실제 평양으로의 출발 날짜는 형편 봐가며 3월 말께로 하려고 작정하고서 앞서 말한 전호언 동지를 통해 비밀리에 평양과 연락을 취하면서 조율을 하기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는데, 어느날 3월 보름 무렵이었을까, 느닷없이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씨가 <씨알의 힘> 사무소로 찾아왔소이다. 온다고 미리 연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내가 물었을 것 아니오이까. 별안간에 무슨 일이냐고? 석영씨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해요.
“저, 평양 갈라고 왔습니다.” 하도 기가 차서 물었소이다. “아니, 평양이라니. 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데가 평양이오?” “여기까지 오면, 야스에 선생이나 도이 다카코 선생이나 누군가가 다리를 놔줄 것이 아닙니까?” 그건 오산이고, 야스에나 도이가 그들이 평양 당국의 영사도 아니겠다, 느닷없이 찾아온 사람을 곧장 평양으로 보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 않소이까. 전후관계를 재는 법도 없이 무턱대고 평양엘 가겠다고 나서는 그의 무모함이 웃음을 자아낼 정도이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석영씨가 지니고 있는 민감한 감성에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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