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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95년 통일원년 삼자”에 딴죽 건 재일작가 / 정경모

등록 2009-09-29 19:33

1989년 3월 27일 평양 주석궁에서 문익환(오른쪽)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서울에서 가져간 <우리말 갈래사전>(한길사 펴냄)을 전하며 ‘남북한 통일 사전’ 편찬을 제안하고 있다. 왼쪽 뒤에 서 있는 유원호씨는 그 뜻을 이어 저자 박용수씨의 후원자로 나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1989년 3월 27일 평양 주석궁에서 문익환(오른쪽)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서울에서 가져간 <우리말 갈래사전>(한길사 펴냄)을 전하며 ‘남북한 통일 사전’ 편찬을 제안하고 있다. 왼쪽 뒤에 서 있는 유원호씨는 그 뜻을 이어 저자 박용수씨의 후원자로 나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07
김일성 주석과 문익환 목사의 첫번째 회담은 그날 3월 27일부터 시작되었소이다. 기록을 위한 서기 한 사람만 배석한채, 회담은 두 분의 단독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두 분 사이에 오간 이야기는 나도 나중에 문 목사로부터 설명을 들었을 뿐이나, 그날 대담에서 먼저 말문을 열고 발언을 시작한 것은 문 목사였소이다.

“남의 나라가 들어와 멋대로 그어 놓은 38선, 그게 무어 그리 소중한 것이라고 신주 모시듯이 끼고 있어야 하나, 38선을 반세기 이상 버리지 못하고 끼고 있다면 이건 민족의 수치이니, 이것을 말짱히 걷어치우도록 1995년을 통일원년으로 하자.”

1995년을 기원 원년으로 하자는 문 목사의 제안은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듯이, 아무 근거도 없이 김 주석 좋으라고 불쑥 내민 즉흥적인 제안이 아니었소이다. 그 전 해인 88년 11월 세계기독교협의회(WCC) 주최로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는 국제회의’가 스위스의 글리온에서 열렸는데여기에는 우리 남북 기독교 대표를 비롯하여, 구미와 일본 등 9개 나라가 참가하였던 것이외다.

이 회의에서 “하나의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서로가 반목과 적의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악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동시에, 남북 교회는 95년을 ‘통일을 위한 희년(禧年)’으로 정하고, 그 후 해마다 8월 15일 직전의 주일을 ‘공동기도의 날’로 정하자는 선언이 발표되었던 것이외다.

‘희년’이라는 것은 <구약> 레위기(25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7년째가 안식년인 노예가 일곱번 안식년을 치른 뒤 50년이 되는 다음해에는 자유로운 몸으로 해방된다는 ‘요벨의 해’(Jubelee)를 말하는 것이니, 분단의 질곡이 50년이 넘지 않도록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자는 것이 ‘1995년 통일원년’을 제안한 문 목사 발언의 참뜻이었던 것이오이다.

그 다음에 아마 연방제에 관한 김 주석의 제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김 주석의 원래 구상은 처음부터 군사권과 외교권을 장악하는 연방정부의 수립이었던 것이외다. 그러나 문 목사는 전쟁을 거치지 않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방도로서는 ‘연방제’는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될 과정임을 인정하면서도, 처음부터 군사권과 외교권을 장악하는 성질의 ‘연방정부’ 수립은 남쪽의 상황으로 보아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상당히 힘을 들여 설득한 것 같았소이다.

그 결과, 이후 4·2 공동성명에는 연방제가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임을 서로가 인정하되 “연방제의 실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표현(제4항)으로 두 분 사이에 타협이 성립된 것이었소이다.

이것이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성립된 ‘6·15 남북공동성명’의 제2항, 즉 “남측의 국가연합안과 북측의 느슨한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표현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이 일련의 경과를 보더라도 문 목사가 김 주석을 만났을 때 말한 ‘1995년 통일원년’에 대한 제안이 “1995년까지는 통일을 이룩하자”는 성급하고 비현실적인 발언이 아니었음은 명확한 사실이 아니오이까.


그런데요, 상제보다 복재기가 더 서럽다는 것일까. 난데없이 이 문제에 끼어들어 문 목사에게 비꼬는 말을 퍼붓는 인물이 나타났는데, 그건 재일 작가인 이회성씨였소이다. “나이로 보아 95년이 김 주석의 수명이 끝날 무렵이 아닌가. 문 목사는 김 주석이 살아 있는 동안의 덕담으로 그 말을 건넨 것이다.” “최근에는 95년이 엿가락 모양으로 늘어나 금세기 말까지로 된 것 같은데, 정치적 상상력이 고갈되면 아무 근거도 없는 이 따위 통일론이 횡행하기 마련이다. 이렇게까지 통일, 통일 하면서 서둘러 대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하는 짓인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이씨는 임수경양이 평양에 온 일에 대해서까지 맞대놓고 문 목사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는데, 그 매도가 실상 누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것인지 여기서 상상력을 발휘해 보기를 바라는 바이외다. “마치 통일이라는 것이 눈앞에 다가오고나 있는 듯이 미사려구로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선동하고 있는 문익환은 거짓 선지자다.”

작가인 이씨는 한국의 정치운동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인물이고, 문 목사가 평양에서 김 주석을 만났다고 해서 울고불고할 복재기조차도 아니지 않소이까. 진짜 못 견디게 울고 싶은 상제는 따로 있을 것인데, 그게 누구이겠는지 잠시 수수께끼로 남겨 두고자 하는 바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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