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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가슴으로 낳은 ‘4·2공동성명’ 통일여정의 시작 / 정경모

등록 2009-10-01 16:38수정 2009-10-02 21:02

1989년 4월 1일 문익환 목사와 필자(왼쪽 앞)가 허담 비서(오른쪽 가운데)와 여연구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쪽 대표들과 마주 앉아 ‘4·2 공동성명’ 초안을 논의하고 있다. 문 목사 일행은 이튿날 오후 평양을 떠나기 앞서 역사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1989년 4월 1일 문익환 목사와 필자(왼쪽 앞)가 허담 비서(오른쪽 가운데)와 여연구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쪽 대표들과 마주 앉아 ‘4·2 공동성명’ 초안을 논의하고 있다. 문 목사 일행은 이튿날 오후 평양을 떠나기 앞서 역사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09





문익환 목사 일행이 평양을 떠난 것이 1989년 4월 2일 오후였는데, 그날 아침 문 목사가 기자단 앞에서 낭독한 선언문이 오늘 우리가 ‘4·2 남북공동성명’이라고 부르는 것이오이다. 이 성명문은 27~30일 나흘 동안에 걸친 김 주석과 문 목사 사이의 회담을 담은 것이었고 9개 항목에 걸친 상당히 장문의 것이지만, 알맹이만을 뽑아서 요약한다면 다음 세 가지의 항목이 아닐까 하오이다.

①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니만치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일체이다.

② 통일에 관한 남북간 대화의 창구는 널리 개방되어야 하며, 당국자들 사이의 독점에 맡기지 않는다.

③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진대 연방제는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경로인데 이의 실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이 문서를 작성하느라 나와 안병수(훗날 안경호로 확인) 동지는 31일 밤을 꼬박 새웠는데, 제4항에서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이룩되어야 한다는 대목은 아마 김 주석의 말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겠다 싶어 내가 약간 미소를 머금으면서 원안대로 수락한 표현이었고, 전문에서 “남북 쌍방은 문화적 정신적인 공통성과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재확인한다”는 부분은 나의 제안을 안 동지가 받아들여 들어간 표현이었소이다.

이 표현은 나와 문 목사가 묘향산을 구경하고, 미군의 폭격으로 입은 파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보현사의 모습을 보았을 때의 충격과 분개 때문이었소이다. 그 풍광명미한 묘향산 심산유곡에 무슨 군사기지 같은 것이 있었을 리도 만무한데, 폭격기를 몰고 와 거기에다 폭탄을 퍼부었던 미국인들의 인간 이하의 무지몽매한 만행에 대한 증오와 저주를 참을 수가 없었소이다. 더구나 묘향산 보현사는 임진왜란 당시 휴정 서산대사께서 승병 5000명을 거느리고 왜구와 싸우실 때 기거하던 본거지가 아니오이까.

아무튼 4·2 공동성명은 그로부터 11년의 세월이 흐른 뒤,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날의 동지 문익환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발표한 ‘6·15 공동성명’으로 직결되는 것이고, 또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 때의 ‘10·4 공동성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공동성명의 시발점은 문 목사의 평양방문이었음이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지요.

그런데 이 일련의 남북공동성명의 주역들은 다들 세상을 떠나고, 지금 우리 곁에 없습니다. 문 목사와 김 주석은 94년 같은 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나고, 김·노 두 대통령도 떠났소이다. 4·2 공동성명서에 서명한 북쪽의 허담 동지도 떠났고, 문 목사의 평양방문을 위해 결정적인 구실을 했던 여연구도 떠났으니, 혼자 남아 있는 내가 지금 책상머리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허전해지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소이다.

아무튼 문 목사 일행이 평양에 머물러 있는 동안, 평양당국은 21발의 예포와 의장명의 사열이라는 의식만 빠졌을 뿐, 국빈을 맞이한 듯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소이다. 김 주석은 직접 스테이트 디너(공식 만찬회)를 두 차례 열어주었고, 4월 2일 일행이 평양을 떠날 시간이 임박하자 몸소 우리들 숙소를 찾아와 세 사람을 각각 다시 한번 포옹하면서 작별을 아쉬워하더이다.

앞으로도 남북 사이에 공식 비공식의 여러 형태 회담이 있을 것이나, 이 모든 만남이 문 목사와 김 주석 사이의 ‘가슴으로의 만남’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은 민족사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일 것이며, 겨레는 길이길이 이 사실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바이외다.

또 이건 김 대통령 자신의 증언인데, 2000년 6월 평양으로 떠나기 전 몇 차례나 사람을 보내 공동성명에 관해 저쪽의 의향을 타진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었소이다. 평양에 도착한 13일은 환영 행사로 하루가 다 가고, 다음날도 해는 저물도록 아무 말이 없어 단념하고 있었다는 것이외다. 그런데 14일 밤, 갑자기 김 위원장이 말을 꺼내 공동성명 검토가 시작되었다는 것이에요. 그쪽에서는 문 목사와 선친 주석 사이에 이미 성립되어 있는 4·2 공동성명이 있으니까, 별로 서두를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었던 것 아니겠소이까. 그래서 그날 밤 4·2 공동성명의 정신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6·15 성명이 성립되고, 김 대통령은 그것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갈 수가 있었던 것이외다.(일본 특별프로)

김 대통령의 역사적인 업적은 6·15 공동성명이었고, 그것 때문에 노벨 평화상도 받을 수가 있었으니 김 대통령은 문익환 목사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는 바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 독자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길을 찾아서-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는 필자인 정경모 선생의 건강 사정으로 109회를 끝으로 1부 마감을 하고 11월부터 연재를 다시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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