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일 외교문서 공개
‘한국정부와 협의’ 국제법 무시
‘한국정부와 협의’ 국제법 무시
일본 정부 수뇌부가 1910년 한-일 병합 이전에 재외 한인이 일으킨 사건을 직접 일본 법정에서 다루는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료가 발견됐다. 이는 ‘안중근 의거’를 재판 관할권이 없는 일본 법정에서 다루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으로, 만약 안 의사가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사형을 면했을 가능성도 제기돼 주목된다.
18일 신운용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책임연구원이 공개한 ‘김재동·서재근 사건’ 관련 일본 정부의 외교문서를 보면, 당시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는 1907년 3월6일 “러시아가 김재동 등의 신병을 넘겨주지 않으려 하고, (일본이) 한국인에 대한 재판권을 갖지 않는다면 인도받지 않는 것이 지당하다고 생각된다”며,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지 일본 외무성으로 질의서를 보냈다. 김재동·서재근 등은 같은 해 3월 중국 만주에서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러시아에 체포된 상태였다. 일본 외무성은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라”고 회신했고, 결국 이들은 일본 재판에 회부돼 각각 사형과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 재판이 끝난 뒤 이토 히로부미 당시 일본 총리는 하야시 다다스 외상에게 보낸 전문에서 “재외 한인 재판사무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한다”면서도 “이 경우 법률 (제정) 등이 필요할 뿐 아니라 실행상 어려움이 많아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신 연구원은 “당시 국제법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러시아에서 재판을 주관해야 하고 일본에 신병을 인도하려면 한국과 협의를 거쳐야 했다”며 “일본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무시한 꼴”이라고 말했다. 김재동·서재근 사건은 러시아 정부가 일본 쪽에 안중근 의사의 재판 관할권을 넘겨주는 결정적 선례가 됐다.
실제, 당시 안 의사의 변론을 맡은 일본 변호인단은 “일본이 안 의사에 대한 재판 관할권을 갖는 것이 옳지 않다”고 거듭 주장했고, 안 의사도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의거 직후 일본에 신병이 넘겨져 일본 관동도독부지방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다음해 3월 뤼순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신 연구원은 “안 의사는 비정규군이긴 했지만 당시 군인 신분으로 의거를 일으켰고, 정치범이었기 때문에 일본 법원이 아닌 곳에서 재판을 받았으면 사형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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