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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재일문인 모국방문 추진에 이회성만 ‘펄쩍’ / 정경모

등록 2009-11-09 18:32수정 2009-11-09 19:00

재일동포 작가 이회성씨. 그는 1972년 34살 때 외국인이자 재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문예춘추사)을 받아 유명해졌다.
재일동포 작가 이회성씨. 그는 1972년 34살 때 외국인이자 재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문예춘추사)을 받아 유명해졌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11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는 사실이 가시처럼 목에 걸려 통증을 견디지 못해 울고불고해야 할 ‘상제’는 따로 있는데, 자기는 별로 통증을 느낄 만한 이유도 없으면서 끼어들어 “미사여구로 길 잃은 어린 양들을 선동하는 거짓 선지자”라고 문 목사를 헐뜯는 ‘복재기’(이회성)가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107호), 이제 그 이회성씨가 무슨 이유로 ‘상제’를 제쳐놓고 요란스럽게 곡성을 올렸는지 그 기막힌 희비극의 한 토막을 이 글에서 피로하겠소이다.

재일 조선인 작가 이회성이 34살이라는 별로 젊지 않은 나이에 <다듬이질하는 여인>(きぬたを打つ女)이라는 작품으로 문예춘추사가 주관하는 신인문학상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것이 1972년이었는데, 그 수상의 배후에 <조선일보> 주필 선우휘의 정치적인 힘이 작용했다는 것은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오이다.

원래 이씨는 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 기자로 근무하고 있던 사람인데 작가를 지망했던 까닭인지 총련 조직을 떠나 여기저기 여러 잡지에 짧은 글을 쓰는 기고자쯤으로 아마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소이다. 그러는 동안에 일본식 사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쓴 게 자기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은 <다듬이질하는 여인>이었는데 일본 문단에서 별로 주목을 못 받았던 탓인지, 나중에 노벨문학상을 타게 되는 오에 겐자부로를 찾아가 아쿠타가와 상을 탈 수 있도록 좀 밀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인데, 여기까지는 보통 있을 수 있는 상식적인 얘기일 것이나, 그다음부터의 전말이 이씨 자신을 위해서도 떳떳지 못하고, 자격지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행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외다. 그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외다.

오에는 양식 있는 일본인이고 그때까지 재일 조선인 중에서 아쿠타가와 상을 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에 퍽 안됐다는 생각이었던지 문예춘추사 사장인 이케지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씨의 신인상 수상을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지요. 그 뒤 얼마 안 가서 이케지마 사장으로부터 오에에게 전화가 왔는데 이씨 문제에 대해서 “좋다. 요청을 들어주마.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이회성 자신이 몰래 살짝 한국으로 가서 선우휘를 만나라”라는 것이었다는 것이외다.

그때 한국적이 아닌 총련계의 조선인으로서 한국 땅을 밟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이씨는 정보부가 인정해 준 특별여권으로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해, 선우씨를 만났던 것인데 그게 1970년이었소이다. 그런 연유로 이씨는 72년 아쿠타가와 신인상을 받게 된 것인데, 그로서는 예기치 않은 사태가 아직 신인상을 타기 1년 전에 발생했던 것이외다.

71년 8월, 남북 적십자사 간의 합의로 분단 26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 찾기 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게 된 것이었소이다.

재일 문필가 사회에서 당시 원로급 인사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던 인물이 김달수씨였는데, 김씨가 분단 26년 만에 남북이 판문점에서 대좌하게 된다는 사실에 상당히 흥분해 가지고 글을 쓰는 문사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놓고서 참으로 역사적인 제안을 했다는 것이외다.

“지금 시대가 크게 변해가고 있는데 이 기회에 모국방문단을 조직하여 우선 서울을 방문하고 판문점을 거쳐 평양까지 방문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이 시점에서 나는 아직 글쟁이로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는 없었으나, 다들 흥분해서 그거 참 좋은 생각이라고 찬의를 표명했을 것 아니오이까.

그런데 홀로 이씨만이 펄쩍 뛰면서 “지금이 어느 때라고 그따위 당치도 않은 짓을 하겠다고 드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이외다. 나중에 김씨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인데, 그때 이씨는 “마치 검사가 법정에서 피고인을 다루는 말투로” 자기에게 대들더라는 것이에요. 아무튼 그의 호통 바람에 모국방문 계획은 없던 것으로 돼버렸는데, 다음해에는 그가 아쿠타가와 상을 타게 되면서 70년에 이미 몰래 서울로 가서 선우씨를 만났다는 사실도 들통이 나지 않았소이까. 그러니 적어도 재일 문인사회에서 이씨가 인간적으로 어떠한 대접을 받았겠소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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