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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삼한정벌론’ 부정했다 고초 겪은 일 학자 / 정경모

등록 2009-11-12 19:10수정 2009-11-13 00:30

<일본서기>의 기록을 토대로 그려진 ‘신공(진구) 황후의 삼한정벌설 묘사도’(1880년 작). 2차 대전 이후 서기의 내용이 4세기 중반 오진천황 시대 이전은 신화이거나 조작됐다는 것이 정설이 되면서, 삼한정벌설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서기>의 기록을 토대로 그려진 ‘신공(진구) 황후의 삼한정벌설 묘사도’(1880년 작). 2차 대전 이후 서기의 내용이 4세기 중반 오진천황 시대 이전은 신화이거나 조작됐다는 것이 정설이 되면서, 삼한정벌설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14
여기서 화제를 돌려, 언제 어디서 건너간 누가 일본의 첫 번째 왕이었나, 일본 왕실의 기원에 관한 흥미진진한 얘기를 해보겠소이다. 이 얘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것인데도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관심을 두는 예가 드물고 일본의 학자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이상스러운 역사이니만치 지금부터 내 얘기를 귀담아들어주기 바라는 바이외다.

이 얘기는 우리나라 <삼국사기>, 일본의 <일본서기>, 그리고 또 고구려 ‘호태왕비’(광개토왕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만 절대로 학술적인 담론이 아니니 그냥 촌노인이 하는 옛날얘기쯤으로 여기면 되오이다.

서양사부터 살펴보면, 영국의 첫 번째 왕실은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도버 해협을 건너온 정복왕 윌리엄이 창건했다는 것은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소학교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말하자면 상식에 속하는 지식이지만, 같은 질문, 즉 일본 왕실의 초대 왕은 누구이며 그 인물은 언제 어디서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인가고 일본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버젓이 대학을 나왔다는 계층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학자들조차 명확한 대답을 못하는 것이 상례일 것이외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1145년 편찬)에 해당하는 것이 일본의 <일본서기>(720년 편찬)인데 여기에는 초대 왜왕(천황)인 진무(神武)서부터 제41대 지토(持統·여왕) 시대까지가 서술되어 있으며, 그 후 그 황통이 만세일계(萬世一系)를 유지하면서 현재의 천황 아키히토에 이르기까지 125대가 계속되어 왔다는 것으로 일본사는 주장하고 있소이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어디서부터가 사실(史實)인지가 분명치 않은 일본서기를 가지고는, 진짜 초대 왕이 누구였는지 특정을 할 수가 없는 형편인 것이외다.

일본의 저명한 학자로 쓰다 소우키치(1873~1961)라는 사가가 있었소이다. 이분의 주장을 보면 서기의 서술 중에서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제15대 오진(應神)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의 서술은 모두가 신화라는 것이었소이다. 그렇다면 내가 앞서 글(92회)에서 말한 신공황후(제14대 왕의 왕비)의 사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삼한정벌’이라는 것은 허황된 신화가 아니겠소이까.

그런데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과 같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황실의 존엄을 모독하는 범죄행위여서, 쓰다 교수(와세다대)는 ‘불경죄’로 체포되어 한동안 콩밥을 먹은 적도 있었소이다. 황실 사적에 관해서는 옛날부터 일본 정부는 눈을 부라리며 감시하고 있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섣불리 건드려서는 안 될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소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신공황후라는 인물의 이름이 ‘기장발(氣長足) 공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외다. 이건 재야의 역사학자가 김성호 선생의 책을 읽고 안 사실인데, 한국의 ‘기장’(機張·부산광역시 기장군)이 현존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니 신공황후라는 인물은 ‘기장벌’을 지배하고 있던 여추장이나 무녀였을 것인데, 팽창하는 신라 세력에 밀려 일본으로 도망간 인물이 아니겠소이까. 이 ‘기장벌’ 여인의 고사는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뒤틀린 심층 심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것이니만치 기억해 두기를 바라는 바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또 하나 저명한 역사학자를 소개하겠는데, 그분은 한때 ‘기마민족정복왕조’(驥馬民族征服王朝)설을 주장했던 에가미 나미오 교수(도쿄대)로, 이분 역시 일본 왕실의 초대 왕은 ‘오진’이었으며,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온 오진은 말을 타고 싸움터를 달리던 기마민족이었다는 주장을 펼쳤소이다. 그런데 에가미 교수는 그 오진은 언제 어디서 건너온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말문을 닫고 오늘날까지도 확실한 말은 안 하고 있는 상태이외다. 다만 에가미 교수는 ‘4세기 말 다른 나라에서 온 망명객’, 그것이 오진이라는 것까지만 말하고 있지요. 일본 우익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소문도 들었소이다.


이제 여기서 아무것도 거리낄 이유가 없는 내가 이 글에서 밝히겠는데 그것은 4세기 말, 더 구체적으로는 기원후(AD) 396년, 고구려 호태왕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뒤 자기가 있던 도읍지 곰나루(일본서기가 말하는 구마나리)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비류 백제의 왕, 그 사람이 바로 일본 역사의 제15대 왕, 오진천황이라는 사실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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