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즉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왼쪽)는 조국인 폴란드의 자유화에 큰 관심을 기울여 79년 직접 폴란드를 방문한 데 이어 81년 1월 바티칸에서 바웬사(오른쪽)를 비롯한 자유노조 ‘연대’ 지도부를 개인적으로 접견하며 격려했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21
1989년 6월의 베이징에서, 11월 베를린으로 서둘러 얘기를 진행하느라고 같은 해 8월 폴란드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었던 대목이 빠져버렸는데, 역시 이 얘기는 빼놓을 수가 없어 간단히 한마디 하겠소이다. 러시아의 10월혁명에 뒤이어, 1차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에서도 혁명이 일어나 공산당을 창당했다가 참살당한 여성이 로자 룩셈부르크(1870~1919)인데,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룩셈부르크는 원래는 폴란드 태생이었소이다. 로자는 민족을 부정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 오랫동안 제정러시아의 억압 밑에서 신음해온 자기 나라에 대해 진정한 해방은 소비에트 체제 아래서 이루어질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와의 국제연대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민족국가로서의 폴란드 독립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오이다. 1차대전 후 일단 독립된 민족국가를 회복했던 폴란드는 2차대전 후 ‘철의 장막’이 내리자 또다시 옛 러시아의 지배권으로 편입되었던 것인데, 폴란드의 사회주의 정권은 소련이 말하는 국제연대에는 충실했겠으나 폴란드인의 민족주의에 대한 갈망을 억압하는 정책을 취하지 않았겠소이까. 냉전이 끝나기 전 폴란드가 아직 ‘철의 장막’ 저편에 있을 무렵, 그 나라를 둘러보고 온 한 미국인 친구에게서 들은 얘긴데, ‘만일 당신들 나라가 다시 한번 독일과 러시아(소비에트) 양편으로부터 침공을 당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에다 대고 먼저 총을 쏘겠는가’고 물었다는 것이외다. 그랬더니 그 폴란드인은 쓱 웃으면서, 그건 물론 독일 쪽이라고 하더래요. 이유를 물으니 그 대답이 걸작이어서 같이 웃었소이다. “상에 차려놓은 음식을 먹을 때 가장 맛있는 것은 나중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상례가 아닌가.” 그만큼 폴란드인은 소련을 미워했던 것 아니오이까. 폴란드는 원래가 가톨릭교의 나라이고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될 때의 로마 교황은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였소이다. 당시 교황이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손잡고 폴란드 사회주의 정권을 붕괴로 몰고 가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는 것은 이제 와서는 비밀조차도 아니나, 그런 정치공작이 없었다 하더라도 폴란드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는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소이다. 동독에서 마르크스주의자로 활약하다가 결국 서독으로 망명한 배로(Barrow)라고 하는 인물이 남긴 재미있는 말이 있소이다. “현재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볼 수 있는 당의 지배가 마르크스가 꿈꾸던 공산주의와 다른 것은 중세 때의 이단에 대한 종교재판관과 예수 그리스도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원래부터 민족주의자 아니오이까. 동독이나 폴란드와 같은 유럽에서조차 사회주의는 민족주의를 억누를 만한 힘이 없었다고 한다면 하물며 아시아에 있어서랴, 하는 것이 나의 일관된 주장이었으며, 그 주장이 옳았다는 것은 천안문 사건 이후에도 공산주의 중국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증명되었노라고 나는 느꼈소이다. 아시아의 공산주의는 그 간판이 무엇이든 간에 내용은 ‘민족주의’라고 믿었던 까닭이지요. 이제 서울의 6월항쟁 때 6·29(속이구) 선언을 만들어낸 미국 대사 릴리를 다시 한번 등장시켜야겠는데, 천안문 사건 당시의 주중 미국 대사도 한국에서 부임해 간 릴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바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릴리는 베이징으로 부임해 가기 전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세력을 일당에 모아놓고 ‘좌익들이 이렇게까지 날뛰고 있는데 당신들 우익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굉장히 꾸짖었다는 것이 아니오이까. 릴리가 펄펄 뛰면서 화를 냈다는 것은 그때의 <동아일보>를 보고 안 사실이니까 독자들 중에서도 기억하는 분이 더러 있으리라고 믿는 바이나, 당시 미국은 정세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베이징에서 베를린에 이르는 ‘사회주의 정권’들은 흔들기만 하면 늦가을 홍시 모양으로 뚝뚝 떨어지리라고 예측하면서, 또 자신도 있었을 것이외다. 중국만 하더라도 그때는 이미 저우언라이도 가고 마오쩌둥도 가고 문화대혁명의 그 광란 중에서 ‘사회주의 중국’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한 상태였고 말이외다. 미국 사람들이 아직도 오해하고 있는 점은 아시아의 ‘공산주의’라는 것은 겉모양이 무엇이든 간에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연대를 추구하는 사상이 아니라, 제국주의 아래 신음하던 식민지 백성들의 자기회복을 위한 ‘민족주의’라는 사실인 것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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