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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김일성 “웃통에 바지, 속옷까지? 굴복 못하죠” / 정경모

등록 2009-11-29 18:18수정 2009-11-29 19:03

젊은 시절의 김일성 주석(왼쪽)이 1952년 설립된 원자력연구소의 초대 소장 이승기 박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50년 7월 당시 서울대 공학부장으로 월북한 이 박사는 세계 최초로 ‘비날론’을 개발했으며 61년부터 본격화한 원자력 개발과 핵 개발 연구를 이끌다 97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시절의 김일성 주석(왼쪽)이 1952년 설립된 원자력연구소의 초대 소장 이승기 박사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50년 7월 당시 서울대 공학부장으로 월북한 이 박사는 세계 최초로 ‘비날론’을 개발했으며 61년부터 본격화한 원자력 개발과 핵 개발 연구를 이끌다 97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25
북한이 원자력 개발에 착수한 것은 1980년이었소이다. 여기에 동원된 과학자는 남한에 있다가 북한으로 넘어간 서울대 교수 이승기 박사였는데, 이 박사는 원래는 합성섬유 ‘비날론’을 발명한 유기화학 전문가였지 원자력 개발을 전공으로 하는 물리학자는 아니었소이다. 항상 팀스피릿 위협 아래 있던 북한이 대항책을 마련하려고 원자로 건설의 가능성을 각방으로 타진해 보았으나 소련을 비롯해서 거기에 응해주는 나라는 없었고, 최후의 수단으로 이 박사가 동원된 것이 아니었겠소이까. 영변에 있는 흑연형 원자로는 문자 그대로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은 자체의 기술로 건설이 시작되어 7년 만인 87년에 완공된 것이라고 들었소이다. 원자로가 가동 준비단계에 들어가자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1985년)하였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도 가입(1992년)하여 일반적인 관습과도 보조를 맞추려 하였겠지요.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만들었다니 어린애들 소꿉장난쯤으로 여기고 별반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인데, 92년 5월 25일부터 93년 2월 6일까지 6개월 동안 원자력기구가 실시한 여섯차례의 사찰에 대한 보고를 보고 미국은 깜짝 놀라 ‘아, 이건 소꿉장난이 아니었구나’ 했던 것이 아니오이까. 여섯번째의 사찰이 끝난 사흘 뒤인 2월 9일, 원자력기구는 추가사찰을 요구하면서 이를 받아들이겠는지의 여부에 대해 2월 25일까지 회답하라는 통고문을 보냈소이다. 평양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추가사찰은 거부한다는 태도로 맞섰던 것이지요.

그러자 미국은 회답 마감 바로 다음날(2월 26일), 그 전해(1992년) 일단 중단되었던 팀스피릿 군사훈련의 재개를 발표하고 실제로 3월 8일부터 훈련을 했던 것이오이다.

미국이 팀스피릿 군사훈련을 시작하면 북한은 그날로 일반 생산활동을 중지하고 전국이 임전체제로 들어가는 것이외다. 그때마다 죽느냐 사느냐 사생결단의 나날을 보내게 되는 것이지요.

이건 89년 4월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의 얘기인데, 문 목사가 김 주석에게 ‘팀스피릿은 군사훈련뿐일 것이고 설마 그것이 전쟁으로 돌변할 리야 있겠는가. 전국이 임전체제로 들어가 생산활동까지 중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고 물었다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김 주석은 정색을 하고 “문 목사! 설마가 사람 잡는다 하지 않습니까” 하면서 설마는 없다고 단언하더라는 것이었소이다.

아무튼 팀스피릿은 3월 24일까지 계속되었는데, 그것이 진행중이던 3월 12일 북한은 미국에 대한 항의 표시로 엔피티 탈퇴를 선언한 것이외다. 할 테면 해보라는 의사표시이기도 했겠지요.

화가 난 미국은 즉각적으로 유엔 안보리를 소집하고 강력한 표현으로 탈퇴를 비난하는 동시에 ‘재고’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것인데 그것이 5월 11일이었소이다.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나? 5월 29일 사정거리 1300㎞의 장거리미사일 ‘노동1호’를 쏴올린 것이었소이다.

미국으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겠지요. 보잘것없는 삼류 국가 북한이 원자로 같은 것을 가동하고 있다는 것조차 가소로운 노릇인데, 천하를 흘겨보는 미국이 설사 팀스피릿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해서 겁도 없이 엔피티 탈퇴를 선언하였는가 하면, 적어도 유엔 안보리 이름으로 점잖게 한마디 꾸짖었는데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장거리미사일을 쏴올리다니.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는 다른 논리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엔피티 제10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조약국이) 자기 나라의 최고의 이익(supreme interests)이 침해되었다고 판단했을 경우에는 주권을 행사하여 조약에서 탈퇴할 권리를 갖는다.’

한 나라의 최고 이익이란 무엇인가. 그건 물론 국가 존망의 문제가 아니오이까. 북한은 국가의 존립이 오히려 엔피티에 가맹했다는 것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는 판단 아래 제10조에 규정된 권리에 따라 탈퇴를 선언한 것이 아니었겠소이까.

김 주석에 관한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겠소이다. 이건 이전에 <워싱턴 포스트> 특파원으로 도쿄에 와 있던 돈 오버도퍼의 저서 <두개의 코리아>(The Two Koreas) 속의 얘기인데, 그때 평양에 와 있던 캄보디아의 시하누크 ‘전하’에게 김 주석이 그랬다는 것이외다.

“그 사람들(미국)은 우리더러 우선 웃통을 벗으라고 하지요. 그다음에는 바지를, 또 그다음에는 속옷까지 벗으라고 하면서 우리를 발가벗기려고 하는데 그런 요구에 굴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전쟁을 원한다면 해야죠. 각오는 되어 있으니까요.”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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