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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김대중-김정일 이어준 무바라크 / 정경모

등록 2009-12-03 19:16

1999년 5월25일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 페리 일행이 평양에 도착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영접을 받고 있다. 이 방북 결과를 담은 ‘페리 보고서’는 당시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을 수용한 대북 포괄적 접근 방안의 추진을 권고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9년 5월25일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 페리 일행이 평양에 도착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영접을 받고 있다. 이 방북 결과를 담은 ‘페리 보고서’는 당시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을 수용한 대북 포괄적 접근 방안의 추진을 권고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29
1998년 8월 대포동(광명성 1호) 미사일 사태를 계기로, 클린턴 자신은 북한 문제를 더 미룰 수는 없고 자기가 승인했던 ‘북-미 기본합의서’에 따라 현재 휴전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인 한국전쟁을 영구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될 필요성은 아마 느끼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정권 내부에는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에 펄쩍 뛰며 반대하는 매파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해 11월 16일 1차 회담이 평양에서 열린 이후에도 2차 뉴욕, 3차 제네바, 4차 다시 뉴욕에서 열리도록 딱 잘라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또 차일피일 시간을 끌고 있었는데, 99년으로 들어서면서 미국으로서도 더는 북한 문제를 방치해둘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소이다. 그건 물론 막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대중씨가 미국의 양해 없이 독단적으로 밀고 나가고 있던 ‘대북 포용정책’이었는데, 의외로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는 중개 구실에 나섰던 것은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었소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2박3일 예정으로 서울에 도착한 것은 그해 4월 9일이었는데, 앞서 98년 12월 무바라크는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한국은 북한에 대해서 적의를 품고 있지 않으며 상호간의 화해와 협력을 실현하고 싶다”는 김 대통령의 의사를 전했던 것인데, 이때 무바라크는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정책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평양 당국에 전달하였던 것이외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즉각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며 그 의사를 김 대통령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무바라크가 서울을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겠지요.

이런 움직임을 민감하게 감지한 미국은 무바라크의 서울 방문이 끝난 직후인 5월 25일 페리 조정관을 평양으로 파견했는데 페리는 3박4일간의 장기체류 중 김영남, 강석주 이하 북한 당국의 많은 요인들과 접촉을 한 다음 9월 미국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하였소이다. 이 ‘페리 보고서’(페리 프로세스)는 아직도 완전히 해제되지 않은 비밀문서이나, 보고서를 제출한 뒤 기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밝혀진 페리 자신의 발언으로부터 충분히 그 내용을 추측할 수가 있었소이다. 그때 단편적이나마 페리의 발언을 전하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아, 드디어 날이 밝아 오는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면서 참으로 가슴이 뛰는 느낌이었소이다.

‘미국은 북한을 붕괴로 몰고간다거나 내부개혁을 강요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공존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재팬 타임스> 99년 10월 14일치) ‘북한이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내부붕괴를 일으킬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은 미국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북한이 아니더라도 현재 형태 그대로의 북한과 교섭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재팬 타임스> 99년 10월 23일치) ‘북한 당국의 지도층 인물들은 확실히 완고한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상식을 벗어난 비합리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극히 이성적인 논리에 의거한 것이며, 그들을 비논리적인 사람들로 여겼던 것은 우리가 그들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우리가 그들과 나눈 대화는 모두가 솔직하고 건설적인 내용이었다.’(<월간중앙> 99년 11월호·마거릿 워너 기자와의 대담)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베트남전이 진행중이던 케네디 시절 국방장관이었던 맥나마라는 회고록에서 “당시 우리들은 상대방에 대한 그릇된 판단 때문에 그들이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내셔널리즘의 힘을 과소평가하였다”는 말을 남기지 않았소이까.

나는 베트남인에 대한 맥나마라의 말과 북한 사람들에 대한 페리의 말을 대비하면서 무언가 가슴이 찔리는 듯한 느낌을 금할 수가 없었소이다.

영어에 ‘그러징 리스펙트’(grudging respect)라는 말이 있소이다. 상대방은 밉고 때려눕히고 싶은 놈이기는 하나 말과 행동에 일관된 논리성이 있고, 또 때려눕히려고 하면 자기도 상당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상대를 두고 하는 말인데, 이 말은 앞에서도 언급한 <두 개의 코리아>의 저자 돈 오버도퍼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심정을 표현한 말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두기를 바라는 바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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