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클린턴 방북 무산시킨 부시의 대선 승리 / 정경모

등록 2009-12-07 18:48수정 2009-12-07 22:41

2000년 12월 19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왼쪽)가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여 선거 패배를 인정한 민주당 후보 앨 고어 부통령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부시와 공화당의 집권은 한반도 평화 기류를 돌연 적대 기류로 바꿔놓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0년 12월 19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왼쪽)가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여 선거 패배를 인정한 민주당 후보 앨 고어 부통령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부시와 공화당의 집권은 한반도 평화 기류를 돌연 적대 기류로 바꿔놓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31
그런데 그렇게도 부푼 가슴으로 기대했던 민족의 경사는 2000년 그해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소이다. 12월의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누구나 이길 것이라고 믿었던 민주당의 앨 고어가 패배하고 공화당의 조지 부시가 이겨 백악관 주인이 된 까닭이었지요.

조명록 특사가 클린턴과의 회담에 임했던 10월 10일 저녁,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조 특사를 위해 만찬회를 베풀었는데, 그 자리에서 올브라이트 장관은 다음과 같이 확신을 피력했소이다.

“지금은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 두 나라의 관계는 풍요한 가능성을 품은 순간인데, 만일 이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는 외교관으로서 전적으로 실격자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재팬 타임스> 10월 13일치)

또 ‘북-미 코뮈니케’가 발표한 대로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 준비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과 10월 23, 24일 면담을 끝낸 뒤, 일본 기자단에게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했소이다.

“김 위원장은 극히 현실적이고 단호한 태도로 미국의 견해에 귀를 기울여 주었으며, 대화의 상대로서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다.”(<마이니치> 10월 25일치)

그때는 선거를 눈앞에 둔 시기였으나 클린턴 대통령은 11월 12일부터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한 뒤 베트남을 거쳐 평양으로 들어갈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만일 클린턴이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이 동질의 전쟁이었다는 것을 인식했다면 하노이를 거쳐서 평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노릇이라고 나는 그때 느끼고 있었소이다.

그런데 대선 개표작업이 이상스럽게 뒤틀렸소이다. 당시 선거 승패는 플로리다주 선거인단 25표의 거취에 달려 있었는데, 플로리다주의 투표기가 펀치카드로 구멍을 뚫는 구식 기계였던 까닭에 고어 자리에 찍은 구멍이 바로 위아래에 이름이 적혀 있는 다른 당 후보를 찍은 것과 같은 결과가 수도 없이 발견되어,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개표작업을 중지시키고 사람 손으로 표를 다시 세도록 하라는 판결을 내렸던 것이외다. 손작업에 의한 개표에서 고어의 표가 부시를 앞지르자 부시는 손작업 개표를 중지시켜 달라고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소이다.

원래 미국은 주권(州權)을 존중하는 나라이고 주의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연방대법원이 뒤엎는다는 것은 관례상 있을 수 없는데, 그때는 연방대법원이 일방적으로 플로리다주 개표 중지를 명령하였소이다. 판사 9명 중 5명은 공화당이 임명했으니, 결국 5 대 4로 공화당의 부시가 차기 대통령으로 결정이 난 것이었소이다.


옛날 박정희 때 한국에는 ‘체육관식 선거’라는 것이 있었는데, 고어와 부시가 겨루었던 그때의 선거에서는 ‘대법원식 선거’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고어를 물리친 부시가 대통령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니, 부시는 일종의 ‘유신 대통령’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았겠소이까.

아무튼 플로리다주의 개표가 시작된 11월 7일부터 고어가 패배를 인정한 12월 13일까지의 37일간, 나는 미국 시민도 아니면서 괜히 손에서 땀이 나는 심경으로 그 엎치락뒤치락의 난투극을 바라보고 있었소이다.

완전한 부정선거였는데 당시의 플로리다 주지사가 조지 부시의 아우 제프리 부시였으니 만일 선거 부정을 철저하게 캐려 든다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너무나 커지고, 미국이란 나라의 체면이 흙칠을 당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고려하여 고어는 점잖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훗날 어느 미국인 친구로부터 들었소이다만, 아무튼 최종적으로 클린턴이 평양 방문 일정을 포기한다고 발표한 것도 섣달그믐이 다가오고 있던 12월 28일이었소이다.

부시는 대통령이 된 뒤 북한과 이라크, 이란 세 나라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공언해, 이란 대통령 라프산자니로부터 “미국은 체통은 공룡이면서도 두뇌는 참새만도 못하다”는 야유를 받았는데, 참말로 공룡과 같은 체통의 미국은 부시의 참새 같은 두뇌 덕분으로 이후 거덜이 나다시피 된 것이 아니오이까.

재일 통일운동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