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뜬소문 고초겪다 눈 감은 문 목사 / 정경모

등록 2009-12-08 18:49

1994년 1월 19일 문익환 목사가 갑작스레 숨지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이 ‘목요집회날’인 이튿날 오후 서울 탑골공원에서 추모집회를 열며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4년 1월 19일 문익환 목사가 갑작스레 숨지자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이 ‘목요집회날’인 이튿날 오후 서울 탑골공원에서 추모집회를 열며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32
이제 1994년 1월 18일 아침 여느때와 다름없는 건강한 모습으로 수유리 자택을 나온 문익환 목사가 그날 오후 8시 반 세상을 떠났다는 비극을 말해야 될 차례가 된 것 같은데, 그날의 비극은 일본에 본부를 두고 있는 ‘범민련’ 해외조직이 직접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선 거기서부터 사태의 경위를 풀어 나가기로 하겠소이다.

문 목사의 평양 방문으로 이루어진 ‘4·2 공동성명’의 여세를 몰아 ‘범민련’(민족통일범민족연합)이 평양에서 결성된 것은 이듬해인 90년이었는데, 평양이 서둘러 이 조직을 결성한 배경에는 앞에서 말한 천안문 사건에서 베를린장벽의 붕괴에 이르는 세계 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대처해야 할 긴박한 필요가 있지 않았겠소이까. 아무튼 그때 평양에서 결성된 범민련 조직의 북쪽과 남쪽 본부 의장으로는 각각 백인준씨와 문 목사가 선임됐고 해외운동본부 의장은 베를린의 윤이상 선생이었던 것이외다.

그런데 문 목사는 그때 옥에 갇혀 있었고, 윤 선생은 이미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범민련 운동은 초기부터 곤란에 봉착하게 된 것이었소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때 나는 평양으로부터 무슨 상의 같은 것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별로 관심도 없이 <씨알의 힘>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난데없이 평양에서 만났던 강주일씨가 지금 오사카에 와 있으니 만나달라고 사람을 보내오지 않았소이까. 그는 그때 평양의 소년가무단 인솔자라는 자격으로 입국허가를 받고 일본으로 온 것인데, 실상은 나와 의논할 일이 있어 겸해서 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무튼 오사카까지 가서 강씨를 만났더니 범민련의 해외본부 의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었소이다. 부득이 해외본부는 일본에 있는 기존의 한민통 기구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곽동의씨에게 감투를 씌워 의장 자리에 앉혀 봤자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겠으니 아예 한민통을 인계해서 하라는 것이지요. 물론 운동에 필요한 자금은 모두 평양에서 책임지겠다는 조건이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제안을 거절했소이다.

다시 문 목사 얘긴데,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온 것이 아직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90년 10월이었지만 옥에서 나오자마자 노태우 퇴진을 부르짖는 학생들이 날마다 줄을 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어가는 참사가 벌어지니, 그때마다 애꿎은 문 목사가 규탄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소이까.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문 목사가 지니고 있는 그 범민련 직함 때문에 어떻게 움치고 뛸 수도 없는 곤경으로 몰리게 된 것이었소이다. 하는 수 없이 일단 범민련이라는 조직을 벗어나 새로운 운동체를 구상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통일맞이’(통일맞이칠천만겨레모임)였소이다.

그랬더니 대뜸 나서서 중상공격을 시작한 것이 곽동의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이었소이다. ‘문아무개는 김영삼 정권과 어울려서 흡수통일을 획책하고 있는 스파이다….’

남산골 샌님이 붙이는 재주는 없어도 떼는 재주는 있다고, 밑도 끝도 없는 뜬소문이 삽시간에 서울로 평양으로 돌더니 범민련 독일지부로부터 발신된 전문이 문 목사에게까지 도달하였던 것인데, 이 한 통의 전문이 문 목사에게 죽음을 불러온 것이외다. 1월 17일 밤 문 목사는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평양의 백인준 의장에게 편지를 썼소이다. ‘범민련을 떠나 새로운 조직을 시작하게 된 것이나 그것은 결코 범민련을 적대시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윤동주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관철하리라는 뜻’을 전했던 것이오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다음날 아침 여느때처럼 집을 나온 문 목사는 늘 따라다니는 제자들과 함께 갈빗집에서 점심을 드시면서 범민련 소속인 진관 스님에게 화풀이를 좀 하신 것이 아니오이까. “내가 그래 스파이냐?” 그 말을 세 번 되풀이하는 사이에 입에 든 음식이 식도가 아니라 기관으로 넘어가는 오연(誤嚥)을 일으킨 것인데, 이것은 연로한 분이 감정이 격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고 어느 의사가 일러주더이다.

제자들이 구급차가 아니라 택시로 연세대 병원으로 모시고 갔으니 사람들 틈에 끼어 순번을 기다릴 수도 없고 초주검이 된 문 목사가 자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지요.

문 목사가 당한 그날의 참변은 ‘곽동의 의장의 모함에 의한 타살’이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