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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28년만의 귀국’ 막는 협박에 쓰러진 윤이상 / 정경모

등록 2009-12-09 19:02수정 2009-12-09 23:55

1992년 9월 재독동포들의 강연회 초청을 받아 베를린을 방문한 필자(왼쪽 다섯째)와 ‘씨알의 힘’ 회원들이 윤이상 선생의 자택 앞에서 함께했다. 마침 75살 생일을 맞아 축하 꽃다발을 들고 선 윤 선생(오른쪽 다섯째)과 생전 마지막 만남의 자리였다.
1992년 9월 재독동포들의 강연회 초청을 받아 베를린을 방문한 필자(왼쪽 다섯째)와 ‘씨알의 힘’ 회원들이 윤이상 선생의 자택 앞에서 함께했다. 마침 75살 생일을 맞아 축하 꽃다발을 들고 선 윤 선생(오른쪽 다섯째)과 생전 마지막 만남의 자리였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33
반독재 투쟁이 국제적인 규모로 퍼져나갔을 무렵 그 운동이 상징적으로는 국내의 문익환 목사, 일본의 정경모, 독일의 윤이상 선생 삼각체제로 전개되었다는 것은 앞글에서도 말한 바와 같거니와(65회), 윤 선생께서 고향인 통영 땅을 밟지 못하신 채 객지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셨을 때의 일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하외다. 윤 선생과 문 목사, 그리고 나 정경모는 말하자면 삼형제 격이었는데, 윤 선생께서는 나를 끔찍이나 아껴주셨소이다.

1992년 어느날 윤 선생으로부터 팩스가 왔소이다. 9월 12일 베를린에서 동포와 유학생을 모아 강연회를 열 계획인데 오지 않겠는가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9월 17일이 윤 선생이 75살 되는 생일날이었소이다. 그래서 사업상의 동반자인 김홍무 동지와 윤 선생을 만나러 독일 여행 계획을 세우고 숙생들에게 발표하니까 너도나도 희망자가 속출해 결국 8명으로 ‘씨알의 힘 방독단’이 구성되어 떠나게 됐소이다.

12일의 민족문제 강연회에는 함부르크에서 뮌헨에 이르는 독일 각지에서 유학생 300여명이 모여들어 식장을 꽉 메운 상태였고, 연단에 서서 발언한 연사는 윤 선생, 송두율 교수, 나 셋이었는데 그때가 바로 유고슬라비아 민족문제에 불이 붙어 세르비아인과 헤르체고비나인들이 피로 피를 씻는 비극을 벌이고 있을 때였소이다. 연단에 선 나는 어떻게 하면 이런 비극을 거치지 않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절박한 심정으로 청중에게 호소했다고 기억하고 있소이다.

그 이튿날에는 ‘씨알의 힘’ 일행이 비용을 거출하여 중국요릿집에서 윤이상 부부를 위한 생일잔치를 열었소이다. 이 자리에는 이영빈 목사 부부와 뮌헨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던 안석교 교수도 참석해 우리 일행에게도 퍽이나 흐뭇한 저녁이었소이다. 그러니 이 소문은 즉각 일본에 있는 곽동의 의장에게 보고되었겠지요. 여기서 94년 9월로 얘기가 뛰게 되는데, 그때 서울에서는 ‘윤이상 음악제’ 준비가 착착 진행중이었고, 김영삼 정권의 간섭이 있기는 하였으되 그때가 고향땅을 밟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해서 자유의 몸으로는 실로 28년 만에 귀국을 결심하였던 것이 아닐까 해요.

그때 또 ‘윤이상은 변절한 제2의 이광수’라느니 ‘금후 평양과는 손을 끊겠다는 조건으로 5만달러를 어느 재벌한테서 받았다’느니 하는 뜬소문도 돌고 있었으나 괘념치 않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날 베를린에 사는 한국인 부부 두 쌍이 험한 표정으로 찾아왔더랍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만일 선생이 한국으로 간다면 분신자살을 각오하고 있는 젊은 사람 몇이 지금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으며, 우리는 선생의 명예를 짓밟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으니 가려면 가보시오.”

윤 선생께서는 그 자리에서 심장발작으로 넘어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결국 이듬해 95년 11월 3일 78살을 일기로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소이다.

부인 이수자 아주머님이 쓰신 평전 <내 남편 윤이상>(창비·1998)에는 협박을 하러 왔던 두 쌍의 한국인 부부가 ‘통일운동을 하는 조직’의 성원이라는 지적은 있으나, 그들이 자발적으로 한 짓이었는지, 어느 누구의 사주를 받고 한 짓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소이다.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나간 어느날, 한 친구가 불고기집을 새로 차렸다고 해서 같이 초청을 받은 또 한 분과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소이다. 그분이 취기가 돌더니 곽 의장 칭찬을 하더군요. 베를린에다 전화를 걸어 윤 선생이 한국으로 가지 못하도록 일일이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옆자리에서 보았는데, 그 활약 때문에 윤 선생을 막았다고 말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약간 놀라서 수인사 때 받은 명함을 다시 꺼내서 살펴보니 이름은 ‘최일수’, 직함은 ‘총련 인권위 위원장’으로 되어 있습디다. 그래서 “선생은 곽동의와는 어떤 관계십니까” 물으니 “아, 예. 곽 선생과는 사돈간입니다.”

그런데 참 기묘한 것은요, 윤 선생도 문 목사와 마찬가지로 좌우로부터 협공을 받았다는 사실이외다. 이번에도 상제보다 더 서러운 복재기, 이회성씨가 나타나, “대위법을 무시한 불협화음”이라느니 제법 유식한 말로 ‘윤이상 음악’을 헐뜯어 놓고서 “윤이상은 북쪽 특권계급과 손잡은 공범”이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도 같은 글에서 지명관씨에 대해서는 20년이나 망명객으로 고절을 지켜온 의인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소이다.(<문학계> 1996년 5호)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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