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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북쪽 헬리콥터 타고 박용길 어머니묘 찾아 / 정경모

등록 2009-12-10 18:41

1995년 7월 8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필자(왼쪽)와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가운데)가 김정일 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 장로는 7월 31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환해 연행됐다.
1995년 7월 8일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필자(왼쪽)와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가운데)가 김정일 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 장로는 7월 31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환해 연행됐다.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34
줄줄이 초상난 얘기를 계속했는데, 1995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 1주기 소상 때 문익환 목사 부인 박용길 아주머님과 함께 평양을 다녀온 얘기는 뺄 수가 없어 간단히 한마디 하겠소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식 때 “아무리 동맹국이 좋다고는 하나 동족보다 더 좋을 수야 있겠느냐” 하고 참으로 그럴듯한 말을 했는데도 94년 김 주석이 타계하자마자 ‘김아무개는 전범이었다’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퍼뜨리는가 하면, 전군에 비상령까지 내리는 바람에 남북관계는 전에 없이 살벌해지고 있었소이다.

그때 나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겨우 지팡이를 짚고 걸음마를 시작한 때였으나, 문 목사도 떠난 뒤고 나라도 가야 하지 않겠나 결심을 하고 서울 수유리 박용길 아주머님께 간다는 뜻을 전했소이다. 그랬더니 아주머님께서 ‘나도 간다, 혼자 가면 안 된다’고 펄쩍 뛰면서 동행을 주장하시더군요. 그래서 아주머님을 모시고 같이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소이다. 안기부가 눈치채지 않도록 몰래 서울을 빠져나와,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씨알의 힘’ 숙생인 가네코에게 부탁해 도쿄에서는 꽤 거리가 있는 이토라는 온천장에서 열흘 넘게 지내도록 한 다음, 무사히 추모일 며칠 전에 평양에 도착하게 되었소이다. 평양 당국의 배려로 아주머님께서는 전에 문 목사가 묵었던 곳에서 기거하게 되었던 것인데, 주위가 깊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침저녁으로 이름 모를 산새들이 몰려와 지저귀는 아름다운 산장이어서 아마 아주머님도 감회가 깊었겠지요.

추도식 전날 밤 아주머님과 나는 김 주석 동상이 서 있는 곳에 가서 헌화도 하였고, 다음날 김 주석 유체가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거행된 추도식에도 참례하였으며, 추도식 직전에 김정일 위원장이 대기실에 나타나 짧은 시간이나마 우리가 조문 인사를 할 기회도 있었소이다.

모든 행사를 끝내고 아주머님이 38선을 넘어 서울로 돌아간 날이 7월 31일이었으니 한 달 가까운 체류기간에 있었던 많은 얘기를 이 짧은 글에 모두 담을 수는 없지만, 다만 아주머님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또 자당(현씨 부인)의 묘소가 있는 평안도 동창면 대유리 산속마을을 헬리콥터를 타고 방문했던 인상깊은 얘기는 독자들에게 소개하겠소이다.

아주머님 선친께서는 원래 구한말 군인이었는데 1907년 통감부가 군대해산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군대를 떠난 뒤 광산의 분석기술을 체득하고 분석주임으로 일을 보고 있던 곳이 그 대유동 산골의 광산(금광)이었던 것이외다.

해방 뒤 선친은 왜인들 때문에 군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원한 때문이었겠으나 자진해서 육군 소령으로 국군에 입대했다는 거죠. 아마 상당한 연배의 노소령이 아니었겠소이까. 그런데 어느날 군부대를 인솔하고 야영훈련을 나갔다가 폭설을 만나, 말하자면 명예전사를 했다는 것이외다. 부친이 남쪽에서 작고했을 때 부인, 즉 박용길 아주머님의 자당은 이미 북녘땅에서 돌아가셨고, 그 묘소가 평안도 어느 산속마을에 있다는 얘기는 들어 알고는 있었으되, 아주머님 자신이 꼭 그 산속마을의 묘소를 찾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을 것이외다.

그때 우리 일행을 보살펴 주느라고 자주 찾아와 만나고 하던 분이 김용순 비서였는데, 하루는 둘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아주머님 자당의 묘소가 평안도 어느 산골마을에 있다는 것을 그냥 지나가는 얘기로 한 적이 있었소이다. 그 얘기가 아마 김 비서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에요. 다음날 다시 찾아와서 아주머님께 그 산골마을이 어딘가고 자세하게 물어보더군요. 그렇다고 아주머님이나 나나 그 마을을 방문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이나 했겠소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며칠 지나 김 비서가 또 왔어요. 그리고 아주머님더러 그럽디다. 내일은 일기도 좋고 하니 성묘를 가시라고요. 다행히 비석이 서 있어서 곧 찾을 수가 있었다는 것이에요. 뭘 타고 거기까지 가느냐고 물으니 헬리콥터를 동원하겠다고 그럽디다.

다음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는데 아주머님과 나, 그리고 동원된 카메라맨 몇 사람과 더불어 헬리콥터를 타고 그 첩첩산골의 대유동을 찾아갔소이다. 남쪽 사람치고 북쪽에 두고 온 조상의 묘소를 찾아가는 것은 당신이 처음 아니겠느냐고 헬리콥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아주머님이 감회 어린 말씀을 하시던 것이 지금 기억에 떠오르고 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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