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주석 1주기 추모식 참석을 위해 1994년 6월 28일 필자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는 7월 31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서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남쪽 군인들에게 연행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35
1995년 7월8일 김일성 주석의 소상을 마친 며칠 뒤 헬리콥터를 타고 박용길 아주머님의 고향으로 날아갔소이다. 마을로 들어가니 아낙네들이 늘어서서 일행을 마중해 주었는데, 그중에는 소녀 때 날마다 분석실로 점심을 날랐다는 아줌마도 섞여 있어 담박 박용길 아주머님을 알아보고 얼싸안고서 엉엉 우는 장면도 있어 퍽 인상적이었소이다. 퇴락해 있었을 산소에 성토를 한 흔적도 보이고,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오솔길에 돌을 괴어 오르기 쉽게 하는 등, 평양 쪽이 세심하게 마음을 써 준 것이 고마웠소이다. 산소 앞에서 아주머님과 나는 목소리를 같이하여 찬송가도 부르고, 또 내가, 북녘땅의 조상들 묘를 남겨둔 채 발길이 막혀 찾아오지 못하는 남쪽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올 수 있기를 비는 기도도 올리고 하면서, 목사도 아니면서 제사의 예식을 거드는 노릇도 맡았소이다. 그런데 아주머님께서 서울로 떠날 예정일인 7월31일이 다가오면서 나는 ‘똥끝’이 타지 않았겠소이까. 아주머님께서 설사 총에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38선을 건너서 가시겠노라고 우기시는데, 그건 물론 돌아가신 문 목사의 ‘갈 테야’ 정신을 몸으로 실천하시겠다는 뜻이었겠지요.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서 38선은 없다고 소리치면서 임진강을 건너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겠다’던 문 목사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아주머님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소이까. 먼저 가신 영감님처럼 쇠고랑도 차고 감방살이도 하고, 또 법정에 서서 재판도 받고 하는 것이 원인 까닭에 아주머님께서 굳이 평양행을 자청하신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편한 맘으로 아주머님께 38선을 건너시게 할 수가 있었겠소이까. 그래서 김용순 비서에게 부탁을 했소이다. 효과가 있을는지의 여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아무튼 남쪽 정부에다 탄원서를 써달라고 말이외다. 당시의 총리가 이홍구씨였지요. 아주머님께서 출발하시기 전날 김 비서는 겉봉투에 커다란 도장이 콱 찍혀 있는 편지를 아주머님께 건네드리면서 나를 보고 쓱 웃습디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으되 약간은 안심이 되더이다. 초상난 집에 조문을 온 사람인데 너무 심하게 다룬다면 당신네들 체면 문제가 아니겠는가. 아마 속에 든 편지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겠소이까. 아주머님이 평양을 출발하시던 날, 길 양옆이 꽉 차도록 사람들이 나와 작별을 아쉬워하였으며, 앞 차에는 아주머님과 여연구씨가 타고 그 뒤를 백인준씨와 내가 탄 차가 따라갔는데, 차열이 판문점에 다다르기까지 지나가는 마을마다 배웅 나온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어 거의 그 줄이 끊어질 때가 없었소이다. 실상 38선을 건너시는 장면은 내가 있는 건물 안에서는 볼 수가 없었으나, 나중에 서울에서 보내온 사진으로 손에 꽃다발을 드신 아주머님을 손주와 같은 젊은 국군병사들이 마치 부축이나 하는 듯이 정중하게 맞이해 들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소이다. 그러나 분단선을 넘자 아주머님은 안기부에 의해 구금된 뒤 경찰병원에서 열흘간 조사를 받은 다음, 아마 임수경양이 갇혀 있었던 경기도 의왕형무소였을 터인데 그리로 이감되어 9월 5일 국가보안법이 규정하는 ‘탈출·잠입·고무찬양’의 죄로 정식 구속되었던 것이외다. 그러나 재판을 받고 있던 대부분의 기간을 서울에서도 일류인 강남의 삼성서울병원에서 편히 지내실 수가 있었으며 도쿄에 있는 나하고도 아무 제한이 없이 자유롭게 전화 연락을 하실 수가 있었으니 이건 모르면 모르되 평양의 김 비서가 서울의 이 총리에게 띄운 한 통의 편지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니었겠소이까. 재판은 11월 30일 끝났는데, 그때의 판결은 ‘피고는 신념을 가지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걸었다’는 판단 아래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당일 출옥이 허용되었던 것이외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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