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헌 전 문예위원장.
김정헌 전 문예위원장 해임 취소 판결 의미
문화부 ‘표적감사→인격살인→코드교체’ 부당함 드러나
법원, 경제위기상황 기금손실 “해임할만한 사유 아니다”
“사전통지 않고 의견제출·소명기회 등 안줘 재량권 남용”
문화부 ‘표적감사→인격살인→코드교체’ 부당함 드러나
법원, 경제위기상황 기금손실 “해임할만한 사유 아니다”
“사전통지 않고 의견제출·소명기회 등 안줘 재량권 남용”
‘진보 인사 솎아내기’ 논란을 낳았던 이명박 정부의 문화 기관장 표적 인사가 정치적 무리수였음이 법원의 판결로 입증됐다.
16일 서울행정법원이 내린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 위원장의 해임처분 취소 판결은 지난 2년 동안 문화체육관광부가 강행한 코드성 물갈이 인사의 법적 정당성을 뒤흔드는 결정이다. 특히 법원 쪽이 지난해 12월 김 위원장을 전격 해임한 문화부의 결정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라고 밝힌 점이 주목된다.
재판부는 문예위의 펀드기금 투자 손실 등 문화부가 내건 해임 사유들이 모두 해임당할 만한 잘못이 아니라고 보았다. 재판부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운용하며 선정기준을 어기고 등급이 낮은 위탁운용사에 기금을 맡긴 것은 직무상 의무를 위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최종 결재권자인 위원장에게까지 담당실무자와 같은 수준으로 내부 규정을 숙지할 것을 요구하기 어렵고 지난해 경제위기로 인한 주가하락 등을 고려할 때 발생 손실이 내부 규정 위반 때문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사전 통지나 의견 제출, 소명 기회 등을 주지 않았고 구체적 해임 사유 등도 제시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았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신태섭 전 한국방송 이사에 이어 법원이 잇따라 정부의 무리한 정치적 인사 몰이에 경고를 보낸 셈이다.
사실 김 전 위원장 해임 전부터 문화부는 무리한 사퇴 압박을 계속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감사원 감사가 진행중인데도, 문예위에 대한 특별조사를 별도로 벌였을 뿐 아니라, 펀드기금 투자 손실의 경우 위원장 지시로 무리한 투자를 했다고 문예위 직원에게 문화부 쪽이 서명을 시켰다는 등의 증언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해임 뒤에도 문화부 쪽은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기 위해 손실을 본 펀드기금 일부를 환매해 일부러 40억원의 원금을 날리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법대로를 강조하면서도 법을 무시했던 문화부의 무리수가 인정됐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의미일 것”이라며 “손상된 문화예술계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도 김 전 위원장이 제자리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 전 위원장의 임기가 내년 9월로 얼마 남지 않은 상태라, 문화부가 항소를 할 경우 최종 판결을 받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나중에 불법으로 판정받더라도 일단 밀어붙인 문화부로서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현 정부의 코드성 물갈이 인사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해 3월 “이전 정부의 정치색을 지닌 기관장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방침을 밝힌 이래 1년 이상 진행됐다. 산하 10여곳의 기관장이 사표를 냈으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정헌 위원장이 법적인 임기 보장을 주장하며 사퇴를 거부하면서 본격적인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문화부 쪽은 그 뒤 11월 김 관장을 전시품 부당 구입 등을 이유로 해임했고, 약 한달 뒤 김정헌 위원장을 해임했다. 올해 5월에는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총장이 문화부의 표적 감사를 받고 항의성 사표를 제출하면서 솎아내기 논란은 절정에 이르렀다. 황 총장의 경우 사퇴 뒤 교수직도 박탈되자, 교수지위 확인소송을 냈으나 최근 기각돼 다시 항소한 상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