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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험난했던 ‘시대의 불침번’…여한은 없소이다 / 정경모

등록 2009-12-20 18:36수정 2009-12-20 20:18

일본 요코하마 히요시에 있는 자택 2층 서재에서 회고록 집필을 하고 있는 정경모 선생. 필자는 이 자리에 앉아서 꼬박 2년 동안 원고지 2000여장에 팔십여 평생을 정리했다.  김경애 기자 <A href="mailto:ccandori@hani.co.kr">ccandori@hani.co.kr</A>
일본 요코하마 히요시에 있는 자택 2층 서재에서 회고록 집필을 하고 있는 정경모 선생. 필자는 이 자리에 앉아서 꼬박 2년 동안 원고지 2000여장에 팔십여 평생을 정리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마지막회>
친구인 작가 황석영씨는 나더러 넓은 길을 걸으면서 돈도 벌고 출세도 하는 주간부 주류 사람들 축에는 못 끼고 줄곧 뒤안길을 골라서 살아온 야간부라고 야유 비슷하게 농을 걸어온 적이 있었소이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시대의 불침번’이라는 존칭을 증정해준 일도 있었소이다. 한데 ‘불침번’이라면 밤참쯤은 거르지 않고 얻어먹을 수가 있었으련만, 밤참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그 눈보라치는 암흑의 시대에 ‘불침번’을 섰다면 이건 야간부 중에서도 ‘상야간부’이겠는데, 그렇다고 내가 누구한테 불평을 늘어놓은 일은 없었소이다. 불평을 할래야 털어놓을 상대도 없었으니 말이외다.

그런데 그 깜깜한 밤중에 내가 혼자서 밖에 서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았소이다. 예컨대 지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신 함세웅 신부님 얘기를 좀 해야 되겠는데, 함 신부님은 내가 문익환 목사의 동지였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아무튼 나를 극진하게 아껴주시는 분이외다. 그분께서는 만일 가능하다면 나를 서울로 오라고 해서 ‘정경모 귀국 환영 강연회’쯤이라도 열어주고 싶었겠으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으니까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라는 약간 거창한 주제로 많은 명사들을 이끌고 오시어 도쿄에서 성대한 심포지엄을 열어준 일이 있소이다. 그게 2006년 10월에 있었던 일이외다. 그때 나와 함께 기조연설을 했던 백낙청 선생의 연설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소이다.

“그(정경모)는 평생을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헌신해 오셨다. 그러고서도 남한의 상당수 민주화운동가들이 영달의 길에 오르고, 국외 통일운동가들 대다수가 남북을 드나들며 예우를 즐기게 된 오늘까지 여전히 일본 땅에서 외롭게 당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계신다. 나는 이런 상황이 되도록 빨리 바뀌기를 충심으로 기원하지만 그의 완강한 고독이 불의와 굴종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불명예를 씻어내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믿는다.”

내 일생을 백 선생께서 이러한 표현으로 총괄해주셨다면 이게 보통 있을 수 있는 노릇이오이까. 가령 무궁화 대훈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받은 이 훈장보다 더 무거울 수가 있겠소이까. 그 심포지엄이 끝난 뒤 함 신부님께 올리는 감사편지에서 나는 “주께서 내게 잔칫상 베푸시고 내 머리 위에 기름을 부어주시었다”는 <시편> 제23편의 일구를 인용했던 것을 지금 기억에서 떠올리고 있소이다.

어떻게 살다 보니까 우연이었을까, 내 일생은 몽양 여운형 선생, 백범 김구 선생, 장준하 선생, 그리고 문익환 목사의 생애와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분들 중 누구 하나 개인적으로 평온하고 안락한 일생을 보내신 분이 안 계시지 않소이까. 내가 만일 불가사의한 인연으로 그분들이 걸어가신 가시밭길을 뒤따라서 걸어간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무엇을 원통해하며 누구를 향하여 불평을 늘어놓겠소이까.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이 글 맨 처음 어느 대목에선가 타이태닉호의 비극을 말한 적이 있었소이다.(26회) 거기서 내가 말한 대로 만일 골고다에서 받은 예수의 고난이 하늘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크나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걸어온 가시밭길은 오히려 나를 선택해서 베풀어주신 축복이 아니었나 스스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지난가을 집으로 찾아온 <한겨레> 기자가 내게 물어보더이다. 일생을 부귀영달에는 관심이 없이 백면서생의 망명객으로 보냈는데 여한은 없는가고요. 나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소이다. 여한은 없노라고. <끝>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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