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제 앞두고
대웅전·종각 등 전소
대웅전·종각 등 전소
대표적 해맞이 장소인 여수 향일암에서 불이 나 대웅전과 문화재가 모두 불탔다.
20일 0시24분께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향일암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사찰 건물 여덟 동 가운데 대웅전·종무실·종각 등 세 동을 태워 5억9000만원 상당(소방서 추산)의 재산 피해를 내고 3시간여 만에 꺼졌다.
이 불로 대웅전 안에 있던 청동불상과 탱화 등 문화재도 함께 소실됐다. 화재 당시 절에 있던 승려와 신도 등은 긴급 대피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사찰이 가파른 산 중턱에 있는데다, 초속 5~6m의 바닷바람과 영하권의 추위 등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은 대웅전 내부에서 난 불이 바람을 타고 근처의 종무실과 종각으로 옮겨붙은 것으로 보는 한편, 대웅전에 촛불이 꺼져 있었던 점과 관광객이 많아 24시간 개방된 점 등에 주목하면서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사찰 관리가 너무 허술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일암 출입구뿐 아니라 사찰 안에도 폐쇄회로티브이(CCTV)가 1대도 설치되지 않았다. 또 단 1명의 순찰자가 야간근무를 맡고 있다. 불이 난 대웅전, 종무실, 종각에는 스프링클러와 불이 났을 때 경보를 울리는 화재감지기, 불길을 잡지 못할 경우 사용하는 소화설비인 옥외소화전도 없었다.
1984년 전남도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된 향일암은 화엄사의 말사다. 원효대사가 659년 창건했고, 1715년 인묵대사가 지금의 자리로 암자를 옮겨 ‘해를 바라본다’는 뜻의 향일암으로 명명했다. 대웅전 등은 1986년에 새로 지었다. 금오산 중턱의 바다와 맞닿은 곳에 있어 남해안 일출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해마다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하지만 이번 불로 여수시가 마련한 제14회 향일암 일출제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여수시는 이달 31일부터 내년 1월1일까지 향일암에서 해넘이와 일출행사 등을 열 계획이었다. 종각이 불에 타 타종식은 사실상 무산됐으며, 향일암 접근이 어려워 이번 축제 때는 향일암에서 일출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여수시는 일출제 행사 강행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으며, 행사를 치르더라도 규모를 대폭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임포 상가번영회장 김정균(42)씨는 “일출제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지만 막판에 모두 물거품이 된 것 같아 허망하다”고 말했다. 여수/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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