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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같이 살자고’ 셋째 임신한채 거리로…
막내 돌보며 ‘쌍용차의 겨울’ 버텨야죠

등록 2009-12-22 14:16수정 2009-12-29 15:58

임신한 몸으로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를 했던 이정아씨가 2개월된 고이가온군을 안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옆은 둘째아들 고이든(4). 평택/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임신한 몸으로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를 했던 이정아씨가 2개월된 고이가온군을 안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옆은 둘째아들 고이든(4). 평택/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첫째 태어나던 날 쌍용차 입사한 남편은 파업 끝나던 날 구속
둘째는 “아빠 일 안끝났어?”라고 묻고 일부 노동자는 정신과 치료
회사는 ‘정상화 길’ 찾았지만 구속자 가족에겐 현재진행형이다
2009 사람들 쌍용차 가족대책위 대표 이정아씨

태어난 지 2달 된 가온이는 인터뷰 내내 자다 깨다 했다. 아빠가 곁을 지키지 못하고 엄마 혼자 낳은 아들이다. 엄마는 뱃속의 가온이와 함께 ‘아빠를 살리기 위해’ 거리에서 외쳤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지난 18일 낮, 경기 평택시 서정동 집에서 만난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대표 이정아(35)씨는 가온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옆방에서 놀던 첫째 내린(6)이와 둘째 든(4)이가 거실로 나와 장난을 쳤다. “남들은 임신하면 살이 찐다는데, 저는 오히려 빠졌어요. 애 낳고 난 뒤에 다들 얼굴이 더 좋아졌다고 하네요.”

이씨와 쌍용차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째 내린이가 태어난 2003년 1월9일, 남편 고동민(34)씨는 쌍용차 입사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 내린이의 나이만큼 남편의 경력도 쌓여갔다. 대학 연극동아리에서 만난 남편은 졸업 뒤에도 극단 활동을 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지만, 생계 때문에 자동차 회사를 택했다.

남편이 이런 무대 경력 덕분에 올해 초 노조 문화체육부장을 맡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얼마 뒤 회사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쌍용차의 최대주주인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하면서 회사와 직원들의 운명은 풍전등화가 됐다.

“3월, 노조의 가족설명회에 나가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집회에서 마이크를 몇 번 잡았다는 이유로 4월 가대위가 꾸려질 때 대표를 맡으라고 했어요. 상황이 너무 급하니까 금방 끝날 줄 알고 하겠다고 했죠.”

당시 이씨는 임신 3개월째였다.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 뒤늦게 알아차린 가대위의 한 회원은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한다. 5월21일 시작된 총파업은 77일 동안 이어졌다.

이씨와 가대위 회원들은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밤낮없이 천막농성을 이어갔다. 경찰과 수시로 충돌했다. 청와대, 한나라당, 민주당, 조계종, 천주교,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문을 두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고립무원의 공장 안에 있던 남편은 6월께 해고통지를 받았다.


8월6일 협상이 타결됐다. 하지만 남편이 위험한 공장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은 잠시일 뿐이었다. 곧 깊은 절망감이 밀려왔다. 정리해고 반대를 목표로 두 달 넘게 싸웠으나, 결국 직원의 52%가 희망퇴직·분사 형태로 회사를 떠나게 됐다. 더구나 남편은 파업이 끝나던 날 곧바로 평택경찰서로 끌려가 구속됐다. 평택서에서 아이 둘과 함께 먹었던 자장면이 기약 없는 ‘가족 회식’이 됐다. “악조건 속에서도 같이 살자고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났어요. 정말 너무 속이 상했어요.” 그때 구속된 40명은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다.

가끔 수원구치소에 있는 아빠를 면회하고 올 때마다 네 살배기 든이는 “아빠 일 아직 안 끝났어?” 하고 묻는다. 농성장에서, 집회장에서 경찰·용역과 싸우는 모습을 늘 지켜봤던 두 아이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지난 6월부터 엄마와 잠시만 떨어져도 극도로 불안해한다. 그래서 유치원조차 보낼 수 없다고 했다. 든이는 아직도 길에서 경찰차를 보면 “경찰이 엄마 안 잡아가?”라고 묻곤 한다.

가대위는 어느덧 ‘구속자 가족 모임’으로 바뀌었다. 회사는 지난 17일 법원의 회생계획안 강제인가 결정에 따라 정상화의 길을 찾았지만, 많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쌍용차 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파업에 참여한 이들은 새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고, 일부 노동자들은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이씨에게 ‘2010년의 희망’을 물었다.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이르면 집행유예로 1월에 나올 수도 있다고 해요. 남편이 나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나 싶어요. 다시 취업 준비를 하기엔 싸운 게 너무 아까우니까 복직 투쟁을 해야 할 텐데, 그게 쉬운 일도 아니고….”

남편의 구속 뒤 금속노조에서 ‘구속자 가족 지원비’로 매달 나오는 140여만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앞날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 깊이 발을 담근 사실이 지금도 믿기질 않아요. 그래도 다시 그런 일을 당하면 또 나설 것 같아요.”

이씨는 가온이와 두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가온이 덕분에 힘을 내서 뜨거운 여름을 버텨냈고, 앞으로 닥칠 ‘긴 겨울’도 아이를 돌보며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도 “막내 덕분에 안심이 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새삼스레 그림 연습을 하고 있는 남편은 아이들 얼굴을 한장 두장 그리며 무심한 겨울을 나고 있다.

평택/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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