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 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문지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이 나로호 모형 앞에서 지난 기억들을 되새기고 있다.
[2009 사람들] ④ ‘우주발사체 개발’에 청춘바친 문지현 연구원
세살배기 딸 주하의 엄마이자 우주발사체 나로호 개발에 참여중인 연구원 문지현(32)씨가 떠올린 ‘나로호의 기억’은 거창한 우주의 꿈보다는 연구자의 소소한 일상이었다.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선 간혹 한밤에 도로나 숙소 근처에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출몰한다는 말을 듣고 조심했던 일, 휴대전화가 고장나는 바람에 연락도 받지 못한 채 새벽 교대근무를 하러 불 꺼진 시험장까지 찾아갔다가 당황했던 일, 발사 전날 연구자들이 조를 짜서 밤새도록 1~2시간씩 나로호 발사장 주변을 지켰던 일, 그리고 잦은 출장 때마다 매달리는 딸을 친정엄마에게 떼어놓고 집을 나서야 했던 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우주발사체기술실 제어팀에서 일하는 그의 기억은 30대 여성 연구자가 겪는 ‘고단한 일상’처럼 들려왔다.
7년동안 가족과 떨어져
제어팀서 데이터와 ‘씨름’
발사땐 천당과 지옥 오가
실패 뒤로하고 “재도전” 그는 7년째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누구도 해본 적 없는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뭔가 모를 ‘사명감’도 느낀다고 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그날’이다. 터질 듯한 긴장에 휩싸인 8월25일 오후 4시45분. “자동발사 프로그램이 가동된 15분 동안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수십 가지의 자동점검 단계를 다 거치고서 정말 저 거대한 140t짜리 발사체가 별 탈 없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지요.” 불과 엿새 전 발사를 7분56초 남기고서 ‘발사 중지’ 사태를 겪어야 했던 악몽 때문에 7분대의 초읽기 동안엔 가슴이 더더욱 방망이질을 쳤다. 당시 그가 있던 발사관제센터(LCC)에선 발사 직전까지 나로호의 상태를 점검하는 데이터를 수신하고 분석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마침내 오후 5시, 나로호가 굉음과 함께 하늘로 솟구친 뒤 이내 작아지며 점이 되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발사 성공’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관제센터 안의 연구원 70여명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악수를 하고 환호하며 부둥켜안았다. “휴대전화 사용 금지가 풀리면서 남편과 친정엄마, 친구들의 축하 문자가 쏟아져 들어왔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날 생중계 방송을 지켜본 누구 못지않게 감격은 컸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페어링(위성덮개) 하나가 분리되지 않은 것 같다’는 짧은 소식이 전해졌다. 갑작스런 정적, 그리고 뭐라 말하기도 힘든 탄식이 흘렀다. 천당과 지옥의 거리는 짧았다. 그날 저녁부터 실패 원인을 두고서 언론과 인터넷은 시끌벅적했다.
넉 달이 지났다. 문씨는 요즘 발사 당시 수신했던 데이터를 되짚어보고 있다. 정상 범위를 벗어난 데이터를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일종의 ‘복기’다. 모든 부품과 신호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야만 발사체가 극한의 비행환경을 견딜 수 있기에 확인에 확인을 거쳐 ‘담금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로호 개발이 추진된 지 7년, 그는 줄곧 이곳에 있었다. 2003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연구소에 들어온 이래 주업무는 나로호의 지피에스(GPS) 수신기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한국-러시아 협력사업인데다 국내에선 항우연 말고도 대학·기업연구소들이 참여하고 있어 그가 맡은 일은 사실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렇지만 만만찮은 일이었다. 고열과 진동이라는 극한환경을 견디는 부품 개발은 쉽지 않았다. 각지에 흩어진 부품제작기업과 시험장을 찾아가 며칠씩 밤을 새우며 시험하는 일도 잦았다. “여관에서, 찜질방에서, 때로는 차 안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 무작정 대기하는 일도 많았어요. 체력이 중요하더군요.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딸과 자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일이지요.” 문씨는 나로호를 통해 ‘실패’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이 성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휴일까지 반납하며 매달렸던 연구자들한테 실패의 부담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뜻밖에도 우리 사회가 많이 너그러워진 듯해 인상적이었어요. 열광이나 냉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우리 모습을 보아주셨으면 해요.” 그의 새해 소망은 세가지다. “2차 발사는 꼭 성공했으면 하고요, 연구 일정이 빠듯하지만 딸 주하한테도 동생이 생겼으면 하고, 5년간의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이젠 한집에 모여 살았으면 합니다.” 연구자이자 엄마이고 아내인 문씨의 소망이다. 대전/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제어팀서 데이터와 ‘씨름’
발사땐 천당과 지옥 오가
실패 뒤로하고 “재도전” 그는 7년째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누구도 해본 적 없는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뭔가 모를 ‘사명감’도 느낀다고 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그날’이다. 터질 듯한 긴장에 휩싸인 8월25일 오후 4시45분. “자동발사 프로그램이 가동된 15분 동안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수십 가지의 자동점검 단계를 다 거치고서 정말 저 거대한 140t짜리 발사체가 별 탈 없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지요.” 불과 엿새 전 발사를 7분56초 남기고서 ‘발사 중지’ 사태를 겪어야 했던 악몽 때문에 7분대의 초읽기 동안엔 가슴이 더더욱 방망이질을 쳤다. 당시 그가 있던 발사관제센터(LCC)에선 발사 직전까지 나로호의 상태를 점검하는 데이터를 수신하고 분석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마침내 오후 5시, 나로호가 굉음과 함께 하늘로 솟구친 뒤 이내 작아지며 점이 되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발사 성공’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관제센터 안의 연구원 70여명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악수를 하고 환호하며 부둥켜안았다. “휴대전화 사용 금지가 풀리면서 남편과 친정엄마, 친구들의 축하 문자가 쏟아져 들어왔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날 생중계 방송을 지켜본 누구 못지않게 감격은 컸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페어링(위성덮개) 하나가 분리되지 않은 것 같다’는 짧은 소식이 전해졌다. 갑작스런 정적, 그리고 뭐라 말하기도 힘든 탄식이 흘렀다. 천당과 지옥의 거리는 짧았다. 그날 저녁부터 실패 원인을 두고서 언론과 인터넷은 시끌벅적했다.
넉 달이 지났다. 문씨는 요즘 발사 당시 수신했던 데이터를 되짚어보고 있다. 정상 범위를 벗어난 데이터를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일종의 ‘복기’다. 모든 부품과 신호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야만 발사체가 극한의 비행환경을 견딜 수 있기에 확인에 확인을 거쳐 ‘담금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로호 개발이 추진된 지 7년, 그는 줄곧 이곳에 있었다. 2003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연구소에 들어온 이래 주업무는 나로호의 지피에스(GPS) 수신기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한국-러시아 협력사업인데다 국내에선 항우연 말고도 대학·기업연구소들이 참여하고 있어 그가 맡은 일은 사실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렇지만 만만찮은 일이었다. 고열과 진동이라는 극한환경을 견디는 부품 개발은 쉽지 않았다. 각지에 흩어진 부품제작기업과 시험장을 찾아가 며칠씩 밤을 새우며 시험하는 일도 잦았다. “여관에서, 찜질방에서, 때로는 차 안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 무작정 대기하는 일도 많았어요. 체력이 중요하더군요.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딸과 자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일이지요.” 문씨는 나로호를 통해 ‘실패’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눈이 성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휴일까지 반납하며 매달렸던 연구자들한테 실패의 부담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뜻밖에도 우리 사회가 많이 너그러워진 듯해 인상적이었어요. 열광이나 냉소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우리 모습을 보아주셨으면 해요.” 그의 새해 소망은 세가지다. “2차 발사는 꼭 성공했으면 하고요, 연구 일정이 빠듯하지만 딸 주하한테도 동생이 생겼으면 하고, 5년간의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이젠 한집에 모여 살았으면 합니다.” 연구자이자 엄마이고 아내인 문씨의 소망이다. 대전/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