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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조선인 묻힌 탄광 위에 아소 가문 골프장이…

등록 2010-01-26 19:45수정 2010-01-27 15:45

[경술국치 100년, 새로운 100년] 일제 강제동원 현장을 가다




일제의 조선강점 100년을 맞아 기획한 특집 ‘경술국치 100년 새로운 100년’ 2부를 시작합니다. 한국·일본·재일동포 사학자 5명의 연쇄 인터뷰를 통해 굴절된 역사를 되돌아본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강제동원의 현장을 찾아가 아물지 않은 상처의 흔적을 생생하게 전하려 합니다.

규슈 후쿠오카현 한가운데에 있는 지쿠호 지방은 19세기 말부터 탄광개발이 시작돼 수십년간 일본 최대의 석탄생산지로 군림했다. 1960년대 들어 탄광 산출량이 줄어들고 일본 정부가 기본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자 지역 경기는 크게 위축됐다. 유서 깊은 탄광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고 그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막장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갱부들도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이제 지쿠호에서 옛날 탄광의 흔적을 보기가 힘들다. 이곳의 3대 탄광 도시를 꼽는다면 이즈카, 노가타, 다가와다. 현재 갱구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다가와 가와사키마치의 호슈탄광 터가 유일하다. 폐광 때 안전 이유로 정부가 갱구를 메우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집이 들어서 주택가에 있는 호슈 탄광은 갱도가 비스듬히 내려가는 사광이다. 1000m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갱부가 걸어서 내려갈 때는 30분, 올라올 때는 1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 탄광은 1945년 탄이 고갈돼 문을 닫은 뒤 구조훈련용으로 명맥을 유지했다. 지난 19일 안내를 해준 강제연행 문제 전문가 요코가와 데루오(70)가 갱부들의 작업환경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자며 갱구 안으로 들어갔다. 고교 지리교사를 하다가 2001년 정년퇴직한 그는 강제동원진상규명 후쿠오카현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이르자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요코가와가 조그만 돌을 집어 앞으로 던지니 ‘첨벙’ 소리가 들린다. 칠흑처럼 캄캄한데다 물이 차올라 있어 더 이상 갈 수도 없다.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아소이즈카 골프장의 정문. 오른쪽에 그의 장인 스즈키 젠코 전 총리의 글씨가 새겨진 거대한 돌 문패가 보인다.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아소이즈카 골프장의 정문. 오른쪽에 그의 장인 스즈키 젠코 전 총리의 글씨가 새겨진 거대한 돌 문패가 보인다.

1936년 요시쿠마탄광 사고
29명 사망자중 25명 조선인

지쿠호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존용으로 남겨놓은 옛 탄광의 높은 굴뚝, 로프를 감아올리던 권양기(윈치) 터와 석탄박물관을 빼면 이전의 풍모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조선인, 중국인들을 무더기로 끌고 와 혹사시켰던 강제연행의 흔적은 더더욱 그렇다. 패전 직후 일본정부와 탄광기업이 관련 자료를 말소하거나 은닉하고 옛 탄광터가 공동주택단지나 공원 등지로 대부분 모습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탄광을 운영했던 기업이 아무리 시치미를 떼도 역사의 진실마저 감추지는 못한다. 구타와 학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의 사고사가 난무했던 옛 탄광터에서 나온 유골들이 당시를 증언하는 확고한 증거가 된다.

후쿠오카현 가호군 게이센마치에 있는 ‘아소이즈카 골프클럽’ 은 감추려하는 세력의 상징물이다. 이즈카 역에서 승용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골프장은 아소 가문이 운영했던 요시쿠마 탄광의 옛 터에 건설된 것이다. 석탄을 채굴할 때 나오는 폐광석 더미를 쌓아올리던 곳을 정비해서 1973년 10월 27홀 코스의 골프장을 열었다. 골프장 이사장은 지난해 8월 일본 총선에서 패배해 총리직에서 물러난 아소 다로 의원이다. 골프장 정문 옆에 세워진 석비는 스즈키 젠코의 이름으로 돼 있다. 스즈키는 아소의 장인으로 1980년부터 2년여 총리를 지냈다. 전후 일본 보수정치의 기틀을 잡았다는 요시다 시게루는 아소의 외할아버지다. 3대에 걸쳐 총리를 지낸 셈이니 일본 정계에 그만한 명문이 없다.

골프장 정문에서 수백m 떨어진 곳에 낡은 수퍼마킷이 있다. 요시쿠마 탄광의 공동목욕탕 자리에 세워진 곳이다. 근처에 갱구가 있었다고 한다. 아소 그룹의 영향 때문인지 ‘아소 야사카’ 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동네의 행정구역이 가호군 게이센마치 야사카다. 수퍼마킷 뒤로 야사카 공민관이 있고 그 옆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다. 겨울 햇볕이 포근하게 쏟아지는 아주 고즈넉한 곳이다. 한적한 시골동네의 어디선가 봤음직한 모습의 이곳은 평온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참혹한 역사가 드리워져 있다. 1982년 12월에서 83년 1월 사이에 마을 공민관을 새로 짓는다고 불도저로 땅을 고르는 작업을 하는데 유골 3구가 완전한 형태로 나왔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서 땅 소유주인 아소 쪽에 알렸다. 나중에 그 자리가 무연고 묘지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탄광이나 주변에서 죽은 사람 가운데 인수할 피붙이가 없는 사람들이 그곳에 묻혔다. 유골이 발견됐을 때 일본 언론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소광업이 내부용으로 작성한 요시쿠마 탄광 무연고 묘지 매장지도에는 유골이 나온 곳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무려 504개나 된다. 돌로 된 비가 있는 곳이 33개, 나무로 된 비가 있는 곳이 21개이고 나머지 450개는 아무 표시조차 없다. 이 매장지도는 일본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다. 이제 유골들의 신원을 밝히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단서가 될 만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탄광에서 육체노동을 한 일본인은 거의 하층민이었다. 가난한 농촌에서 상속받을 논밭이 없는 둘째, 셋째 아들이 마땅한 생계수단이 없으면 탄광에 들어왔다.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은 부락출신도 적지 않았다. 죽어서 인수자가 없는 사람은 그냥 땅에 묻었다. 화장을 하려 해도 석탄 값이 아깝다는 이유로 사실상 버려진 셈이다.

요시쿠마 무연고 유골의 일부는 일제 때 모집이나 강제연행으로 끌려온 조선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요시쿠마 탄광은 아소광업이 지쿠호 일대에서 운영해온 7개 탄광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강제연행이 시작되기 전인 1928년 1월 기준 통계를 보면 아소 탄광에서 일하는 조선인은 모두 705명이다. 요시쿠마 탄광에는 162명이 있었다. 이 수치는 연행이 본격화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영국 포로 등 강제노동 문제는
아소, 야당의원 추궁에 시인해

1936년 1월25일 밤 요시쿠마 탄광 갱내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 희생자 가운데 25명이 조선인이었다. 당시 회사가 갱내에 생존자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화재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입구를 봉쇄해버렸다는 증언도 있다. 참사를 보도한 <후쿠오카일일신문> 1월27일치에는 사망자·중상자 명단에 조선 이름이 많이 있다. 기사에는 “이 갱에는 선인(鮮人·조선인을 가리키는 멸칭) 노동자가 많아 현장은 대혼잡을 보였으며 갱구에는 아버지 남편 오빠의 안부를 걱정해 몰려와 울다 쓰러지는 선녀(鮮女)의 모습이 불쌍했다”는 표현도 보인다. 탄광에서 사고가 났을 때 조선인 희생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가스가 많아 위험한 막장에 조선인들을 주로 투입했기 때문이다.

요시쿠마 탄광 터는 이제 강제연행 문제를 현지에서 연구해온 전문가의 안내를 받지 않으면 외부인은 어디에 무엇이 있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요시쿠마가 2008년 12월 오랜 만에 일본 언론에 등장한 일이 있다. 조선인 희생자가 아니라 태평양전쟁 때 이곳에 끌려와 강제사역을 했던 연합군 포로 학대문제가 갑자기 불거졌기 때문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이 오스트레일리아·영국·네덜란드인 포로 3백명이 요시쿠마탄광 내 포로수용소에서 사역에 동원됐다며 아소 총리에게 따졌다. 오스트레일리아 병사 2명은 탄광에서 죽었다. 1940년생인 아소는 이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아주 어렸을 때여서 전혀 기억이 없다고 발을 뺐다. 그러나 후생노동성이 창고에 보관돼 있던 관련문서가 뒤늦게 발견됐다며 사실을 인정하자 마지못해 시인을 했다.

그러나 아소 그룹은 요시쿠마 묘지에서 발견된 504개의 유골에 대해서는 탄광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터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나온 유골을 거두어 납골당에 안치했다고만 설명한다. 물론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다. 3대에 걸쳐 총리를 배출한 가문에 어울리는 행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이즈카/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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