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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귀신섬 위령비 “국적넘어 동고동락” 기만적 문구

등록 2010-02-03 08:29수정 2010-02-03 10:22

[경술국치 100년, 새로운 100년] 귀신섬에 끌려간 사람들




1. 다카시마, 2. 하시마, 3. 사키토. 일제 때 나가사키현의 탄광업계와 광부들 사이에 회자되던 말이다. 사키토는 지금은 다리가 놓여 나가사키시 중심부에서 차로 고속도로를 2시간 정도 달리면 갈 수 있지만, 그때는 모두 거친 파도로 외부와 격리된 섬이었다. 광부로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살아서 나오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귀신섬’이란 별명이 붙었다.

규슈의 최대 탄전지였던 지쿠호 일대에서 채탄작업을 했던 숙련자들조차 귀신섬에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순번은 일본어 발음의 운율상 붙은 것이고, 작업 환경의 열악한 정도는 비슷했다고 한다.

세 섬의 공통점으로는 우선 대규모 해저탄광이 있었다는 걸 꼽을 수 있다. 바다 밑으로 채굴을 해, 하시마는 해저 900m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둘째는 운영 관리의 주체가 미쓰비시재벌이었다. 해저탄광을 개발하려면 첨단 채탄기술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 이후 정권과 결탁해 승승장구하던 미쓰비시가 중소 탄광회사로부터 인수했다. 셋째는 모집이든 강제연행이든 외딴섬의 탄광에 끌려와 고초를 당한 조선인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중에는 일제 때 사할린의 탄광으로 강제연행됐다가 전쟁 말기 귀신섬으로 온 이른바 ‘이중징용’의 피해자들도 있다.

나가사키평화자료관 관계자들이 무연고 유골 묘소인 센닌즈카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석비 밑으로 납골당이 있었으나 현재는 완전히 밀폐됐다.
나가사키평화자료관 관계자들이 무연고 유골 묘소인 센닌즈카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석비 밑으로 납골당이 있었으나 현재는 완전히 밀폐됐다.

지난달 22일 나가사키항 터미널에서 약 14.5㎞ 떨어진 다카시마행 고속여객선을 탔다. 35분 정도 걸려 다카시마 부두에 도착하니 관광지임을 알리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여객선 정박지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 거대한 동상이 있다. 2004년 12월에 세워진 미쓰비시재벌의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1835~1885)의 동상이다. 미쓰비시가 다카시마탄광을 인수한 것은 1881년 3월이다. 이후 1986년 11월 폐광 때까지 운영을 했으니 무려 105년간 이 섬의 큰손으로 군림한 셈이다.

미쓰비시쪽 역사 비웃는 비문 분노한 누군가 망치로 부숴


섬 한가운데에는 해발 120m의 곤겐산이 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중턱에 신사가 있다. 신사 옆의 평평한 터 한쪽 구석에 위령비가 있다. 폐광 2년 뒤 미쓰비시석탄광업주식회사가 세운 것이다. 비 상단 오른쪽에 꽃무늬 부조가 있고 그 주변에 흠이 보인다. 동행한 다카자네 야스노리(71) 나가사키평화자료관 이사장은 부조 자리에 원래 비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누군가가 불만을 품고 큰 망치로 부쉈다고 말했다. 회사 쪽에서 떨어져 나간 것을 수리한 뒤 비문 자리를 부조로 가렸다고 한다.

비문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었기에 그렇게 원한을 품은 사람까지 나타났을까? 비문의 원문은 두 단락으로 돼 있었다. 첫 단락은 일본 경제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진흥에 다대한 공헌을 이뤄왔지만, 시대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100년여에 걸친 빛나는 역사의 막을 내렸다는 표현으로 끝났다. 두 번째 단락에는 강제연행에 대한 미쓰비시의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좀 길더라도 인용해보자.

“그동안 중국과 한반도에서 오신 사람들을 포함한 다수의 일하는 사람 및 그 가족이 민족 국적을 넘어 마음을 함께해서 탄광의 등불을 지키고 고락을 함께한 날들을 그리워함과 동시에 중도에 순직하거나 혹은 이 땅에서 작고하신 모든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이 비를 건립해서 영원한 명복을 기원하는 바이다.”

천인총에 조선인 유골함 절로 옮기며 이름 사라져

나가사키해상의 귀신섬
나가사키해상의 귀신섬
비문 내용이 알려지자 일제 때 현장에서 혹사를 당했던 동포들이 분노의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선인·중국인이 자의에 반해 끌려왔다는 표현이 전혀 없다. 귀신섬에 온 이들은 중노동, 구타, 린치의 대상이 됐으며 사고나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일본 시민단체는 고락을 함께했다는 표현 등이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다고 항의했지만, 회사 쪽은 오히려 사전에 민단과 총련의 지역본부와 협의를 거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수정을 거부했다. 그런 와중에 비문이 파괴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신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다카시마묘지가 나온다. 섬 주민들의 공동묘지다. 일본에서 기독교 신앙이 가장 빨리 들어온 지역에 속하기 때문인지 고인의 세례명이 새겨진 비가 제법 눈에 띈다.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묘지가 끝나고 덤불이 나타난다. 덤불 사이로 나 있는 희미한 오솔길을 따라가면 공양탑이라고 쓰여 있는 아주 낡은 석비가 있다. 비의 정식 명칭은 없고 현지인들이 ‘센닌즈카’라고 일컫는 곳이다. 우리말로 하면 천인총(千人塚)이 된다. 원래 석비 하단에는 납골당이 있어 탄광에 일하러 왔다가 객지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의 유골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와 다카시마, 하시마에서 노역을 하다 죽은 조선인들의 유골도 여기에 들어갔다. 나가사키의 지역방송사 <엔비시>(NBC)가 1970년대 중반 만든 프로에는 센닌즈카에 안치된 유골 상자 가운데 조선이름이 쓰여진 것이 보이는 영상이 있다.

해저탄광 끌려온 조선인 1만명이상으로 추정돼

센닌즈카 납골당에 있을 때는 조선 이름이 있었으나(완쪽) 긴쇼지로 옮겨진 골호에는 번호만 이록돼 있다.(오른쪽)
센닌즈카 납골당에 있을 때는 조선 이름이 있었으나(완쪽) 긴쇼지로 옮겨진 골호에는 번호만 이록돼 있다.(오른쪽)
그러나 미쓰비시가 다카시마탄광의 문을 닫으면서 ‘영구공양’을 한다며 센닌즈카의 유골들을 인근 사찰로 옮기면서 기막힌 일이 발생했다. 회사 쪽은 컵 크기의 골호(뼈단지)에 분골을 옮겨 묘지 인근의 긴쇼지라는 절에 안치하고 지하에 있던 납골당은 밀폐를 했다. 이 절에는 당시 센닌즈카에서 옮긴 골호가 약 115개 있는데 10개 정도는 일본 이름이 쓰여 있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다. 정황으로 보아 무연고 유골은 조선인 희생자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현재로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하시마 한국인희생자유족회와 일본 시민단체는 10여년 전부터 미쓰비시석탄광업의 후계 회사인 미쓰비시머티리얼에 대해 밀폐된 납골당의 발굴을 요구하고 있으나 회사 쪽은 ‘영혼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 될 수 있다’며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다카자네 이사장은 “악질적이고 비열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항상 온화한 표정으로 얘기하던 그는 미쓰비시의 자세에 이르면서 어조가 거칠어졌다. 그는 일본 정부가 지금이라도 성의를 갖고 관련 사찰에 과거장(귀적) 등 관련 문서를 조사하라고 요구하면 신원 확인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3개의 귀신섬에 연행된 조선인 피해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통계가 없다. 일본 연구자들은 사키토에 6000명, 다카시마·하시마에 4000명 정도가 연행됐던 것으로 추정한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진상규명위’가 유족들의 신고를 토대로 조사한 바로는 59명이 현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실제 피해가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다카시마/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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