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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웨루산서 목격한 일제의 무차별 공습 / 김자동

등록 2010-02-08 18:36수정 2010-02-08 21:40

1938년초부터 여름까지 임시정부가 피란간 중국 창사시의 김구 선생 가족이 살던 집 대문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앞줄 왼쪽이 안춘생과 필자, 가운데가 노태준과 엄항섭의 맏아들인 기동, 뒷줄 오른쪽 기둥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백범의 차남 김신씨다.
1938년초부터 여름까지 임시정부가 피란간 중국 창사시의 김구 선생 가족이 살던 집 대문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앞줄 왼쪽이 안춘생과 필자, 가운데가 노태준과 엄항섭의 맏아들인 기동, 뒷줄 오른쪽 기둥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백범의 차남 김신씨다.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27
중일전쟁 초기 국민정부와 공산당은 일제의 침략에 대한 공동 항쟁의식이 높아 서로 잘 협조해 나갔다. 소련 역시 중국에 대한 지원을 신속히 개시했다. 1938년초 중국과 소련은 군사 항공협정을 맺었으며, 항공기뿐만 아니라 조종사까지 파견해 우한 방어전에 투입했다. 난징이 함락당했으나 중국의 항일전은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38년 봄에 이르러 일본도 장기전 태세를 갖추지 않을 수 없어 그해 5월 국가동원법을 발포했다. 우리 겨레에 대한 허울 좋은 문화통치도 그것으로 끝이 났다. 일본의 강압 속에 한때 그래도 옳은 소식을 전하려고 노력했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도 이제는 일제의 전쟁선전도구로 전락해 갔다.

임시정부에서는 전쟁이 터지자 중국 정부와 합의해 난징에서 매일 우리말 방송을 했으나, 그곳에서 철수하면서 자연 중단되었다. 그리고 군사조직을 만들 계획을 추진했으나 중국 정부가 우리 뜻대로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 늦어지고 있었다. 우한에 있는 민족혁명당 계열에서는 자체 군사조직을 추진해 38년 10월 조선의용대가 창설되었다.

후난성에는 샹장(상강)강이라는 큰 강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데, 창사시는 샹장강의 동쪽에 있었으며, 건너편에는 웨루(악록)산이라는, 현재 중국의 국가중점풍경명승구에 들어 있는 명산이 있다. 그러나 피란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임정 가족들의 형편으로는 명산을 두고도 언감생심 구경 갈 기회를 내지 못했다. 창사를 떠날 일정이 잡힌 6월초로 기억되는 어느 일요일, 우리 가족은 일파 엄항섭, 석린 민필호네와 함께 웨루산으로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그날도 회의가 있었으나 미루고 세 가족 15명을 맡아 함께 산행을 했다. 그런데 점심식사를 한 뒤 얼마 안 되어 일본 군용기가 나타나 저공비행을 하며 등산객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이날 등산객이 많아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샹장강 서안에는 후난대학 등 문화시설이 있을 뿐 군사목표는 거의 없었으며, 대공포도 없어 일본군은 마음 놓고 살육을 한 셈이다. 그후 수십 번 겪었던 공습의 첫 경험이었다.

단오는 중국인들에게 설과 추석 다음가는 큰 명절이다. 중국에서 단오는 초나라 때 충신 굴원이 멱라수에 투신자살한 것을 기리는 명절이다. 멱라수는 샹장강의 지류로, 창사시 북쪽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 후난성, 특히 창사에서는 이날을 대단히 크게 경축한다. 위인이 죽은 날이지만 시일이 오래가니 이제는 축제의 날이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날 룽촨(용선) 경기대회가 도처에서 열리는데, 특히 창사에서는 샹장강에서 대규모 룽촨 경기와 강변 놀이가 성대하게 벌어진다. 중국인이 즐겨 먹는 간식으로 쭝쯔(종자)라는 것이 있다. 갈댓잎에 찹쌀과 양념을 넣고 삶아서 만든 먹거리다. 이 음식도 단오와 관련이 있는데, 창사에서는 이날 쭝쯔를 강에 던져 넣는데 일부러 멱라수까지 가서 강물에 넣기도 한다. 굴원에게 보내는 양식이라는 것이다. 창사를 떠나기 직전에 그곳에서 단오를 지냈으므로 우리 가족도 강가로 가서 룽촨 경기를 구경했다.

38년 7월 중순 임정 가족들은 기차 한 칸을 전세 내어 광저우를 향해 출발했다. 임시정부의 군사조직이 늦어지는 사이 우한에서는 조선의용대 창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창사에 있던 청년들 중에는 우리와 함께 떠나지 않고 우한으로 간 사람도 있다. 몇 달 동안 우리를 가르쳐 주던 이달과 김철, 두 선생도 이렇게 헤어지게 됐는데, 그들은 기차 위까지 올라와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두 분은 그뒤 다시 못 만났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이달 선생은 조선의용대가 광시성 구이린(계림)시에 있을 때 간호사로 있던 중국 여성과 결혼해 충칭시 난안의 조선의용대 본부에서 일했다. 전쟁 때 충칭에는 결핵환자가 많았는데, 이달 선생도 이 병으로 그곳에서 죽었다. 그에게는 충칭에서 태어난 남매가 있어 중국 사람으로 자랐으나, 근래는 다 한국 국적을 얻고 서울과 충칭을 오가며 살고 있다. 김철 선생은 47년께인가, 평양에서 공산당과 연안계 신민당이 합당하여 북조선노동당이 창설되었다는 기사와 함께 중앙위원 명단에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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