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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겨울이 추운 사람들 난방비에 두 번 운다

등록 2010-02-08 19:52수정 2010-02-08 22:27

기초생활수급자인 오아무개(76·왼쪽), 이아무개(77) 할머니가 8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 집에서 연탄보일러를 틀고 전기장판을 켰음에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 화로를 피워놓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초생활수급자인 오아무개(76·왼쪽), 이아무개(77) 할머니가 8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 집에서 연탄보일러를 틀고 전기장판을 켰음에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 화로를 피워놓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초생활보장 수급액 절반 가스·전기 난방료로

소득 중 연료비 비중 하위10%가 상위10%의 10배
지난 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 산5번지 일대. 1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달동네에 겨울 막바지 추위가 파고들었다. 이날 서울지역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7.9도까지 떨어져 동네에는 인적이 거의 끊겼다.

슬레이트 지붕의 한 무허가 주택 문을 두드렸다. 외풍을 막기 위해 얇은 유리로 된 미닫이문에는 반투명 비닐이 덧대어져 있고, 문 안에는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커튼을 들추고 들어서니 어두운 방에 누워 있던 이순자(77·가명) 할머니가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기장판을 깔고, 털양말을 신고, 겨울바지에 웃옷은 세 겹을 껴입었다. 이불도 두 겹으로 덮고 있었다. 아궁이 연탄불에 방바닥에선 온기가 느껴졌지만, 이불 위 방안 공기에는 냉기가 흘렀다.

이 할머니는 난방은 연탄으로 하고, 취사는 프로판가스를 쓴다. 상수도가 없어 지하수를 끌어다 물을 끓여 손발을 씻는다. 가스비와 전기료, 연탄값 등을 합하면 겨울 한 달에 20만원은 족히 들어간다. 기초생활 보장 대상자여서 한 달에 44만원을 받는데, 수입의 절반이 난방 등 ‘에너지 소비’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집 안에서 옷을 껴입고 살아야 한다.

옆 동네인 구로구 궁동의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 사는 김주영(32·가명)씨도 난방비가 큰 부담이다. 32평형 빌라에 여섯 식구랑 함께 사는데, 지난달에 도시가스비가 25만원, 전기료가 10만원 나왔다. 한 달 소득 300만원 중에서 난방비가 10%가 넘는다.

김씨는 가스비 걱정에 낮에는 보일러를 끄거나 낮게 켜놓고 온열기를 사용한다. 아기가 있어 항상 집을 따뜻하게 해놓아야 한다. 그는 “올겨울엔 유독 추워서 창문 틈으로 외풍이 들어와 벽에 서리가 꼈다”며 “집이 단열이 잘 되질 않아 난방비가 더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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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은 겨울이 특히 춥다. 돈이 없어 난방을 못하고, 난방을 해도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 고소득층보다 난방비를 더 써도 집에서 춥게 지내는 역설적 상황까지 벌어진다. 주택 단열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돈은 돈대로 쓰지만 열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 한 칸짜리 7평 무허가 주택에 홀로 사는 이상수(77·서울 관악구 삼성동)씨는 한 달 난방과 취사로 프로판가스 20㎏짜리 3통을 쓴다. 한 통에 3만6000원 정도여서, 한 달 기초생활 보장비 37만원 가운데 30% 정도가 가스비다. 그런데도 집은 썰렁
하다. 시멘트 벽돌로 돼 있는 그의 집은 벽 두께가 10㎝ 정도밖에 안 된다. 이씨는 “방바닥은 따뜻해도 벽에서 찬바람이 나온다”며 “집을 지을 때 스티로폼 하나만 넣었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소득층이 주로 사는 지역에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는 것도 저소득층의 ‘에너지 소외’ 현상을 부추긴다. 난방비가 비싼 기름보일러나 연탄, 프로판가스를 사용하고, 전기매트나 온풍기 등 전기난방기구를 따로 쓰니 덩달아 전기료도 올라간다.

<b>영등포 쪽방촌</b> ‘무거운 발걸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사는 한 주민이 지난해 겨울 난방용 연탄을 자신의 집으로 옮기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영등포 쪽방촌 ‘무거운 발걸음’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사는 한 주민이 지난해 겨울 난방용 연탄을 자신의 집으로 옮기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소득계층별 난방형태’ 자료를 보면, 기초생활 보장 대상자는 석유보일러(프로판가스 포함) 사용 비율이 42.0%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가스보일러(23.3%)다. 이런 상황은 소득이 올라가면 역전돼, 정부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을 뺀 일반가정의 경우 가스보일러 사용률(58.4%)이 석유보일러 사용률(23.2%)의 2배 이상이다. 연료별 열량당 가격(지난달 17일 기준)은 도시가스가 ㎉당 74.54원인 반면 등유는 119.44원으로, 가난한 이들이 더 비싼 연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계청 자료를 봐도, 하위 10% 계층의 연료비는 전체 소득 중에서 8.9%를 차지하지만, 상위 10%는 0.9%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 2006년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25개 에너지기업 및 기관과 함께 ‘에너지 복지 헌장’을 채택해 저소득층 ‘에너지 복지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현장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주로 전기료 할인이나 단전 유예, 전기담요 지급 등 일시적인 방편에 머물러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한쪽에서는 에너지를 펑펑 쓰고 다른 쪽에서는 추위에 시달리는 에너지 소비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며 “단순히 에너지 비용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열 손실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는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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